김혜순(70·사진) 시인이 시집 ‘죽음의 자서전’ 독일어 번역본으로 독일 세계 문화의 집(HKW)이 수여하는 국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시아 작가로는 첫 수상이다.

HKW는 1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시상식을 열고 올해 국제문학상 최종 후보 6명 중 김 시인을 수상자로 발표했다. 지난 5월 발표된 나머지 후보는 튀르키예의 도안 아칸르, 캐나다의 세라 번스타인, 우크라이나의 안나 멜리코바, 프랑스의 네쥬 시노, 미국의 제스민 워드다.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김혜순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위원단은 “김혜순 시의 경이로움 속에서 의미는 종종 불가사의함 속에 명확히 드러난다”며 “그 시편들은 리듬을 따라 반복해서 읽을수록 열리고, 이미지는 이미 올바르게 선택한 뒤에야만 비로소 보이게 되는 방향처럼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김 시인은 화상으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는 “번역자 박술과 울리아나 볼프, 심사위원들, HKW, 출판사 피셔의 대표 포겔과 편집자 마들렌, 그리고 낭독 행사를 기획한 시 문학관의 마티아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9년 시작된 국제문학상은 그해 독일어로 번역된 뛰어난 현대문학에 수여하는 상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도 2017년 ‘채식주의자’ 독일어판으로 이 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아시아인 중 수상한 것은 김 시인이 처음이다.
상금은 총 3만5000유로(약 5600만 원)이며 작가에게 2만 유로, 번역가에게 1만5000유로가 주어진다.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 시집을 번역한 박술(39), 울리아나 볼프(46) 번역가도 함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독일 힐데스하임대 철학과 교수인 박술은 비트겐슈타인, 니체, 횔덜린, 트라클의 책을 한국어로 번역했고 시집 ‘오토파일럿’(아침달)을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시인이자 번역가인 울리아나 볼프는 재미교포 시인 최돈미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한 바 있다.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은 김 시인의 12번째 시집으로 국내에서 2016년 출간됐다. 시인이 2015년 지하철역에서 쓰러진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 불교의 49재에 빗대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죽음들을 떠올리며 49편의 연작시를 엮었다.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올해 2월 독일 출판사 피셔에서 번역본을 펴냈다.
이 시집은 앞서 영어로도 번역됐다. 김 시인은 2019년 한국인 최초로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을, 2021년 스웨덴 시카다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시집 ‘날개 환상통’ 영어판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고, 올해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AAAS) 외국 명예 회원으로 선정됐다.
‘죽음의 자서전’은 ‘날개 환상통’(2019),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2022) 등 죽음을 주제로 한 김혜순의 시집 3편을 묶은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문학과지성사)로 지난달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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