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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집에 안와요” 추적하니 기계서 숨진채 발견…아무도 몰랐다 [사건 속으로]

입력 : 2025-07-18 18:30:00 수정 : 2025-07-18 18:18:47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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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한달차 한솔제지 30대 근로자 추락사
동료도, 회사도 행방 찾지 않아…중대재해 조사
“반복되는 사고, 안전장치도 없어” 노동계 비판

대전 대덕구 한 제지 공장의 기계 안에서 신입 직원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조사에 착수했다. 회사의 누구도 갑자기 사라진 직원을 찾지 않았고, 결국 사고 발생 8시간이 지나 아내가 직접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나서야 주검으로 발견됐다. 노동계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30대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대전 대덕구의 한솔제지 신탄진공장 내부 모습. 대전소방본부 제공

 

18일 경찰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후 11시56분쯤 30대 남성 A씨의 아내가 “남편이 귀가하지 않았다”고 신고했다. 휴대폰 위치추적을 통해 A씨가 직장인 대전 대덕구 한솔제지 신탄진공장에 있는 것으로 파악한 경찰은 공장 내부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했다. 경찰이 공장을 수색한 결과 불량품이나 폐종이를 펄프 제조기 탱크에 옮겨 넣는 작업을 하던 A씨가 지난 16일 오후 3시30분쯤 개폐기 구멍을 통해 기계 내부로 추락한 사실을 확인했다.

 

회사에서는 갑자기 사라진 A씨를 아무도 찾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함께 근무한 동료가 있었지만 사고를 목격하지 못했다고 한다. 근무 교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동료들은 A씨가 먼저 퇴근한 줄 알았다는 취지로 경찰에서 진술했다. 결국 A씨는 추락 후 다음날인 17일 오전 2시쯤에야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이 현장에 갔을 때도 사고가 난 기계는 그대로 가동 중이었다.

30대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대전 대덕구의 한솔제지 신탄진공장 내부 모습. 대전소방본부 제공

 

A씨는 이 공장의 생산팀 가공파트 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것으로 파악됐다. A씨가 빠진 폭 30㎝의 파지 투입구에는 추락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도 없었다. 경찰은 A씨가 파지를 동료에게 전달하려 기계 위에서 옮기다가 중간의 30㎝ 투입구가 열려 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하고 사이로 빠져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현장 영상에는 가슴 높이 정도 크기의 파지를 들어 옮기던 A씨가 갑자기 빠지는 모습이 담겼다. 투입구의 개폐를 알리는 경고등이 설치돼 있었으나 사고 당시 정상 작동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공장 관계자 등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해 조사할 예정이다. 노동당국도 해당 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살펴보고 있다. 한솔제지와 신탄진공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이다. A씨가 한솔제지 소속 정규직이므로 안전보건책임자인 공장장뿐 아니라 한솔제지 대표도 입건될 수 있다.

김종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이 지난 17일 근로자가 사망한 한솔제지 신탄진공장 사고현장을 방문해 살펴보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김종윤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전날 사고 현장을 찾아 사고 경위 등을 점검하고 엄중 수사를 지시했다. 김 본부장은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조치 등이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했다”며 “사고 인지가 늦어진 원인, 이후 대응 과정상 문제 등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겠다.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노동계는 “현장 안전관리의 총체적 실패”라며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대전지역본부는 이날 한솔제지 신탄진공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고는 노동자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갖추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조차 사고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한솔제지의 안전관리 체계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안일하게 방치돼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한솔제지는 노동조합이 부재한 현실을 핑계 삼지 말고, 노동자의 안전과 권익 보호를 위해 한국노총 등 지역 노동단체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라”고 강조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대전지역본부가 18일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한솔제지 신탄진공장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제공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명백한 기업의 부실한 안전관리로 일어난 중대재해”라며 “추락방지 장치, 피해 노동자에 대한 주의, 교대시간 때 확인 등 한 가지 대책이라도 있었으면 노동자는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솔제지 장항공장에서는 2019년 노동자 끼임사고가 있었다. 2020년 신탄진공장에서도 매몰사고로 노동자가 숨졌다”며 “반복되는 산재사고는 안전불감증에 빠져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한솔제지 측은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유가족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 유가족의 고통과 상처가 덜어질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며 “관계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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