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원리/ 양재진/ 마름모/ 2만2000원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자유민주주의를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도 모두 동일한 형태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정치 문화와 기질이 다르고, 정치 제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대통령제 국가이고,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활용하는 국가도 있다. 정당 형태도 우리는 양당제 중심인 반면, 큰 규모의 여러 정당이 주도권을 나눠 갖기도 한다. 의회가 한국처럼 하나만 존재할 수도 있고, 상·하원으로 나뉜 국가도 많다.

행정학과 교수인 저자는 20여년간 비교정부론을 강의하며 이러한 제도 하나하나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연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 사례와 다른 나라 정부의 작동 방식을 함께 분석한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출발해 로마 공화정과 미국 헌정주의의 뿌리를 거쳐 한국 민주공화국 체제의 역사적 연원을 설명한다. 다양한 시대와 국가의 제도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정치, 정부, 민주주의가 어떤 상태인지 명확히 드러난다. 아울러 자연스럽게 우리 정치 시스템의 문제와 개선 방향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고찰부터 협치를 가능하게 하는 다수당 지배 구조의 개혁 방향,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의 정치화 문제 해법 등 다양한 쟁점을 짚어가며 한국 정치가 가야 할 방향을 조목조목 제시한다.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를 겪은 정치권은 다시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 주판알을 굴리며 권력 구조 개편에 골몰하는 정치권을 향해 저자는 정부 형태가 아닌 위정자와 국민에게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차만 바꾸면 난폭 운전이 사라질 것인가? 차도 중요하지만 운전자를 잘 만나야 한다. 세상에 난폭한 차는 없다. 난폭한 운전자가 있을 뿐이다. 차를 바꾸기에 앞서 난폭 운전자는 걸러내고, 운전 기술과 경력을 갖춘 운전자들이 차를 조심해서 몰게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 형태 개편보다는 정치인과 정당들의 행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331∼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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