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아삭한 상추·쫄깃한 돼지 불고기… 행복까지 한 쌈에 담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관련이슈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입력 : 2025-07-19 13:19:41 수정 : 2025-07-19 13:50:20

인쇄 메일 url 공유 - +

부천 나연이네 순대국곱창전골

팬데믹으로 잃은 단골집 대신 찾은
조용한 동네 ‘얼큰 돼지 불백’ 맛집
전골냄비 담겨 나온 불고기 한점에
밥·쌈장·나물 올려 한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히 푸짐한 감동이 밀려와
양념에 밥 볶으면 ‘한국식 파에야’
가끔은 한 끼가 하루를 위로한다. 부천의 학교 가는 길 언덕 아래,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나연이네 순대국곱창전골’에서 만난 얼큰 돼지 불고기 백반이 그렇다. 고기 냄새 자욱한 전골냄비, 아삭한 상추 그리고 마지막 셀프 볶음밥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흐름까지. 수업보다 이 ‘불백’이 기다려질 때가 있다는 것은 이미 내가 단골이라는 증거다.

 

◆부천의 불고기 백반집

돼지 불백 한 쌈

부천의 고등학교에 강의를 다니기 시작한 지 어느덧 7년이 넘어간다. 학교에 조리과가 생기고 나서 1기 때부터 가르쳤던 아이들이 어느덧 장성해 내 가게로 찾아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처음 학생들을 가르칠 때면 늘 그 순간을 나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다. 성인이 된 아이들에겐 선생님이 아닌 요리사 선배로서 이야기해줄 것 또한 많기 때문이다. 많은 걸 받아들여야 할 시기의 아이들에게 내가 아는 소박한 지식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서울에서 부천까지 한 시간 반을 운전해 학생들을 가르치러 학교에 오는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출강하는 학교는 성주산과 거마산 중간의 꽤 높은 고지에 있다. 날씨 좋은 날에 부천역에서 내려 학교로 슬슬 걸어 올라가 본 적이 있다. 중간쯤 올라오면 아파트 옆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그 벤치에 앉아 있자면 정말 등산을 하는 기분이 든다. 학교를 7년 가깝게 다니다 보니 동네에도 정이 들었다. 처음 자주 가던 단골 백반집에는 고수가 있었다. 떡볶이와 순대뿐만 아니라 제육볶음 부대찌개까지, 학교만 가면 찾아갔던 그 노련한 실력의 백반집 할머니는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을 이기지 못하고 강제 은퇴를 했다. 음식점 칼럼을 쓰고자 했을 때 이 식당이 아직 있었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기억에 오래 남는 식당이었다.

 

졸지에 단골집을 잃어버리고 나서 다시 찾게 된 곳은 바로 ‘나연이네 순대국곱창전골’이다. 단골 백반집에서 조금 더 아래에 있는 식당은 얼핏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정도로 조용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간판을 보고 순댓국을 주문하는 이도 꽤 있는데 오히려 점심시간이 지나면 혼밥을 하러 온 남자들이 많다. 이때부터가 진짜다. 내 생각엔 이곳의 대표 메뉴는 순댓국도, 김치찌개도 아닌 바로 ‘얼큰 돼지 불백’이 아닐까 싶다. 돼지 불백은 불고기에 밥과 반찬을 함께 내는 상을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1인분보다는 2인분부터 파는 곳이 많은데 이 식당은 혼자 와도 흔쾌히 불백 전골냄비를 올린다. 이곳에서 불백을 먹을 생각이 수업보다 더 기대될 때가 있을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가게 외관

◆얼큰 돼지 불백

오늘도 어김없이 수업이 끝나고 식당을 방문했다. 수업이 점심시간을 거쳐 끝나기에 시간은 조금 한가로운 오후, 그때에는 항상 혼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열에 아홉은 이 얼큰 돼지 불백을 먹고 있다. 주문하면 먼저 반찬이 차려진다. 많지는 않지만 직접 만든 4가지 정도의 반찬이 참 맛있어 보인다. 불고기와 함께 싸 먹을 상추가 가득 담긴 그릇이 나올 때면 군침이 돈다. 평소엔 잘 먹지도 않는 상추에 밥, 쌈장, 나물 조각을 올려 고기가 나오기도 전에 한 쌈을 먹어본다. 아삭거리는 상추의 식감이 훌륭한 애피타이저가 된다

돼지 불백 한상

이어 붉은 빛깔의 돼지 불고기가 가득 담긴 전골냄비가 나온다. 테이블의 버너를 틀어 이미 다 익은 돼지고기를 한 번 더 솎는다. 밥상 위에서 자글거리는 그 불고기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돋운다. 국물이 너무 졸아들지 않게 불을 조절한 뒤 먼저 고기와 밥을 한입 먹어본다. 부드럽고 쫄깃한 돼지고기가 갓 지은 따끈한 밥과 어우러져 작은 탄성을 내뱉게 만든다. 상추에 고기와 밥, 쌈장과 마늘을 넣고 한 쌈을 더 먹어본다. 아삭거림과 쫄깃함 그리고 따듯함이 그 한 쌈에 다 들어 있다. 고기양에 맞춘 듯한 푸짐한 상추가 사장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돼지 불백

쌈을 먹다 보면 어느덧 접시가 비워진다. 밥을 3분의 1 정도 남기는 걸 추천한다. 불이 꺼진 뒤 국물만 남은 전골냄비에 다시 시동을 걸어 밥을 넣고 끓인다. 차갑게 식은 밥알들이 진한 국물을 머금으며 ‘한국식 파에야’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반짝반짝하게 몽테가 된 밥을 한입 먹어 보면 쌈 싸 먹은 그 고기의 맛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감칠맛이 입안에 맴돈다. 8000원짜리 불백에 마무리로 밥까지 버무려 먹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얼큰 돼지 불백 코스요리다. 이 식당은 집이 멀지만 않다면 자주 찾아와 소주 한잔 걸치고 싶은 곳이다.

 

◆돼지 불백

돼지 불백은 고추장 양념에 재운 돼지고기를 볶아 밥과 반찬, 쌈 채소와 함께 내는 한식 정식이다. 1950∼1960년대 간장 불고기에서 출발해, 보다 저렴한 돼지고기를 활용하며 서민식당 중심으로 퍼졌다. 1970년대 기사식당과 공단 식당, 대학가 백반집에서 ‘불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얼큰한 양념, 푸짐한 쌈 채소, 마지막 볶음밥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완성도 높은 코스처럼 느껴진다. 특히 혼밥 문화가 확산되며 1인용 정식 메뉴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불백은 단순한 정식이 아닌, 한국인의 정서가 녹아든 한 끼 밥상이다. 맵기보다 얼큰한 맛, 자극보다 감칠맛을 중시하는 양념의 밸런스도 특징이다. 지역마다 고추장과 간장의 비율, 조리 방식에 따라 다채롭게 변형되며 살아 있다. 요즘엔 불백 전골, 도시락형 불백 등 현대적 해석도 활발하다.

돼지 불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장 현실적이고 따뜻한 ‘한식의 정답’ 중 하나다.

 

오징어 파에야

■오징어 파에야 만들기

<재료> 씻어놓은 쌀 100g, 치킨 스톡 500㎖, 올리브유 30㎖, 다진 마늘 15g, 다진 양파 30g, 오징어 1마리, 새우 5마리, 다진 닭고기 50g, 양송이버섯 30g, 그라나 파다노 치즈 15g, 다진 파슬리 약간, 토마토소스 100㎖.

<만들기> ①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양파를 볶는다. ② 향이 나면 닭고기와 버섯을 볶은 후 치킨 스톡을 넣는다. 오징어와 레몬은 그릴에 굽는다. ③ 토마토소스와 밥을 넣고 새우를 중간중간 올려 뚜껑을 덮은 뒤 천천히 쌀을 익힌다. ④ 그릴에 구운 오징어와 레몬을 올리고 그라나 파다노 치즈와 다진 파슬리를 뿌려 마무리한다.

 

김동기 다이닝 주연 오너셰프 Paychey@naver.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차주영 '완벽한 비율'
  • 차주영 '완벽한 비율'
  • 샤오팅 '완벽한 미모'
  • 이성경 '심쿵'
  • 전지현 '매력적인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