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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낙인의 거리 아닌 모두가 찾는 ‘기억 공간’ 만들어야” [이태원 참사 100일]

, 이태원 참사 , 세계뉴스룸

입력 : 2023-02-06 19:23:18 수정 : 2023-02-06 22: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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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우리가 원하는 이태원은

10월29일에 멈춘 이태원
시민들 계속 죄책감 느끼며 현장 기피
추모공간 설치·상권 회복 여전히 요원
일각선 유가족·상인 갈등 구도 묘사도

즐겨찾는 장소 한목소리
아이들 좋아한 곳 슬럼가 분위기 안돼
부정적 낙인 찍히면 피해자 역시 낙인
시민들이 사랑하는 공간으로 되돌려야

추모공간으로 거리 살려
참사 기억 묻은 채 이태원 부활 무의미
기억·추모 공간 있어야 무거운 짐 털어
함께 떠올리고 안전한 거리 거듭날 것
“우리 사회는 지난해 10월29일 이후의 이태원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세계일보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상인 그리고 시민들을 만나 이태원의 미래를 들어왔다. 이들은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되 여전히 시민들이 즐겨 찾는 장소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현실의 이태원은 유가족, 상인, 시민들 모두에게 불편한 장소로 바뀌고 있다. 추모공간 설치 논의는 진전이 없고, 정쟁으로 인한 사회 갈등만 부각되는 데다, 이태원을 찾는 사람들마저 급감하면서 상권 회복도 요원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대구 지하철 화재(2003년), 세월호 참사(2014년) 등 되풀이되는 대형 참사 속에서 우리 사회가 참사의 공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계일보가 6일 만난 시민들은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이제라도 참사의 공간을 사회적 통합과 추모의 디딤돌로 만들어 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째인 지난 5일 사고 현장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골목에 추모 메세지가 가득하다. 연합뉴스

◆“추모공간 조성을 통해 이태원을 회복해야”

 

시민들은 추모공간이 이태원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 장모(24)씨는 “참사를 묻어두고 즐거운 곳으로만 부활시키는 게 더 안 좋아 보일 것 같다”며 추모공간 조성을 지지했다. 장씨는 “대구 지하철 참사의 경우에도 역사 안에 추모공간이 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참사를 기억할 만한 조형물이나 공간을 만들어 달라진 이태원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A(29)씨는 “사람들이 이태원을 기피하는 이유는 죽음의 현장이라는 공포와 미안함 때문인데, 그게 잊히길 기다리기만 해서는 이태원의 이미지나 상권을 회복할 수 없다”며 “기억하고 추모할 공간을 갖출 때,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생각에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이태원을 자유롭고 해방감을 느끼는 공간으로 기억하는 김모(27)씨는 “지금은 참사가 벌어진 곳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됐다”며 “희생자를 기억할 공간이 있으면 오히려 죄책감을 덜고, 예전으로 더 빨리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어차피 그 공간을 지나가면 참사 기억이 떠오를 텐데, 공식적인 추모가 더 상처를 회복하는 방법”이라며 “앞으로는 ‘잊지 않겠다. 되풀이하지 않겠다’라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시간이 지나도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해야 그걸 본 아이들이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며 “근데 그 공간은 우울하기만 한 공간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는 문화공간 형태로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유가족 측과 이태원 상인들은 현재 머리를 맞대고 참사가 발생한 골목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를 논의하고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는 “유가족과 상인이 모여 참사가 발생한 골목을 ‘안전과 기억의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면서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하는 거리이고, 모두에게 안전한 거리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민·유가족 합동분향소 조문 6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시청 분향소 철거 예고 규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유가족과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추모 필요하다” 공감대 형성… 각론 놓고는 이견

 

시민들은 이태원 참사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추모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를 보였다. 그러나 각론을 놓고는 의견이 갈렸다. 구체적인 추모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에서부터 추모공간 설치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추모공간 설치가 이태원의 활력을 앗아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일부 상인도 상권 침해를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태원에서 20년 가까이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문모(65)씨는 “이태원에 추모공간을 설립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태원 분위기가 안 좋아지고 관광객이 오길 꺼려할 것 같다”고 말했다. 추모공간이 이태원의 활력을 앗아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상인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됐다. 참사 이후 이태원 상권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이태원을 찾았다는 김민주(28)씨는 “기존 이태원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생기 있는 공간이었다. 추모공간과는 대비되는 이미지”라며 “가시화한 조형물을 만들어 낙인을 찍기보다 개별적으로 자연스럽게 추모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지난 3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의 한 가게의 상인이 해밀톤호텔 가벽에 설치된 추모의벽 앞을 지나는 시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유가족들도 이태원이 이전처럼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장소로 기억되기를 바라기는 마찬가지다. 이태원이 죽음의 거리로 낙인이 찍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장소로 전락하는 것은 유가족도 원하지 않고 있다. 이 부대표는 “아이들이 좋아했던 곳이 슬럼가가 되고 무너지길 바라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이태원에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면 피해자에게도 낙인이 찍힌다”면서 “이태원이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상인들과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고 밝혔다. 상인과 유가족 모두 ‘이태원을 시민들이 사랑하는 공간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셈이다. 참사로 동생을 잃은 최모(27)씨도 “이태원을 너무 나쁘게 기억하진 않았으면 한다. 이태원에 몰린 인파도 이태원이 좋아서 갔던 것”이라며 “코로나19에 이태원 참사까지 겹쳐 상인들도 힘든 것 같다. 참사가 상인 잘못은 아니지 않냐”고 강조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사회부 경찰팀=김선영·정지혜·박유빈·조희연·김나현·안경준·유경민·윤솔·윤준호·이규희·이민경·이예림·채명준·최우석·김계범·이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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