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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협의 실종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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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1-26 22:18:43 수정 : 2023-01-27 07:3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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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법관에게 ‘현 사법부의 가장 큰 문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는 “사법부의 독립”이라고 답했다. 사법부의 독립을 위협하는 요인으로는 ‘정치의 양극화’를 가장 먼저 꼽았다.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타협과 협의가 실종하고, 정치권 내에서 해결해야 할 사건이 사법부로 넘어오는 최근의 흐름을 지적한 것이다. 정치의 양극화는 양 세력 지지자들 간의 반목을 넘어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얼 워런 연방대법원장은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을 미친 대법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공화당 소속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방대법원장에 올랐지만, 대법원의 개혁을 이끌며 여러 진보적 판결을 내렸다.

 

1954년 흑인 학생들이 백인 학생들과 같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 ‘브라운 대 교육위’ 판결이 대표적이다. 워런은 ‘분리하되 평등’(separate but equal) 원칙으로 불리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만장일치의 평결을 원했다.

 

사회부 장혜진 기자

워런은 부분적으로 주 및 연방 법원이 다양한 속도로 학교의 인종 차별 철폐를 추구할 수 있는 유연성을 허용하며 반대 의견의 대법관들을 설득해나갔다. 자신의 반대 의견이 자칫 일부 세력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복 움직임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더해지며 결국 모든 대법관이 만장일치 평결에 동참하기로 입장을 바꾼다.

 

오는 9월 임기 종료를 앞둔 김명수 코트의 특이점 중 하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판결)에서의 전원일치 판결 숫자가 크게 줄어든 점이다. 최근 법률신문이 양승태 코트가 6년간 선고한 전합 판결 116건과 김명수 코트가 지난 5년간 선고한 104건을 분석한 결과 양승태 코트는 39건(34%), 김명수 코트는 17건(16%)으로 집계됐다. 2011~2016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전원일치 판결 비율이 51.3%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더욱 큰 격차다.

 

법원 내부에서는 정권 교체에 따른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와 함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당시 제기된 ‘재판 거래’ 의혹을 기점으로 대법관 간 적극적인 토론과 의사소통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별개의견 등을 통해 대법관들의 다양한 의견이 표출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를 “합의의 실종”이라고 지적한 한 중견 법관의 우려 역시 고민해볼 만한 지점이다. 대법원 전합이 존재하는 본질적 이유는 대법관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의견 사이에서 치열한 토론과 설득, 타협을 통해 분쟁을 최종적으로 종국시키기 위한 것이란 이유에서다. 과거 한 퇴임 대법관은 “전원일치로 나간 전합 판결 가운데서도 처음에는 의견이 너무 엇갈려서 다수의견이 형성되지 않아 ‘판결 못한다’는 얘기까지도 나왔었다”면서 “국민들이 전원합의 과정을 CCTV로 볼 수 있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서로 얼굴이 벌게져서 고성이 오가는 경우도 많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협의 실종의 시대, 대법관들의 치열한 토론을 기대해본다.


사회부 장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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