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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움직임 자체를 그림에 담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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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19 22:38:51 수정 : 2022-08-19 22:3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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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발라, ‘가죽끈에 매인 개’(1912)

한 여인이 개를 데리고 어딘가로 서둘러 가고 있다. 펄럭이는 치맛자락의 흔적만 보일 뿐 여인의 얼굴이나 몸은 생략됐다. 개도 마찬가지다. 어떤 종류, 어떤 형태의 개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바삐 움직이는 다리와 꼬리, 끄덕이는 머리만 복잡하게 그려 놓았다.

도대체 무엇을 그리려 한 걸까? 미래주의 화가 자코모 발라가 움직임 자체를 나타내려 한 작품이다. 그림 속 여인이 누구인지, 어떤 개인지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순간의 동작 자체만을 나타내려 했다.

미래주의는 1909년 이탈리아에서 미술, 문학, 연극, 음악 등에 걸쳐 나타났고,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계속됐다. 특히 미술에서는 과학 기계나 자동차 등의 발달로 사람들의 감각세계도 변한 만큼 예술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 시대의 미술은 기계나 자동차의 활력적인 힘이나 속도, 그리고 운동성 자체를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칭도 전통과 현재에 도전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미래주의라고 했다. 기존의 주관적인 표현이나 전통적인 공간 구성법을 피하고, 형태들이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나타내는 새로운 표현 형식을 찾으려 했다. 2차원의 평면 위에 3차원의 물체가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나타내는 형식이 필요했다.

‘가죽끈에 매인 개’에서 발라가 그 예를 보여 주었다. 멋쟁이 여인이 개를 끌고 가는 모습을 나타냈는데, 걸어가는 여인의 옷자락의 움직임이나 개와 가죽끈의 움직임을 연상시키기 위해서 수십 개 형태를 이어서 붙여 놓았다. 형태들을 해체한 후 재구성하는 입체파 방식을 사용했고, 당시 발명된 연속동작사진 기법에도 의존해서 공간적 형태와 시간의 흐름이 결합된 이미지를 한 화면에 그렸다.

이렇듯 미래주의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방법이었고,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비판과 부정이라는 성격을 나타냈다. 예술에서의 무정부주의적이며 혁명적인 양식이라 했는데, 점과 색선들을 전통적 이미지의 분해 수단으로 생각했고, 캔버스에 나타나는 고정된 이미지를 해체한다는 의미에서였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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