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습으로 살지 고민을” 책 건네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대구지법 서부지원 김정일 부장판사는 20일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글썽이며 법정에 앉아 있는 10대 형제에게 책 두 권을 건네며 말했다. 잔소리를 심하게 한다는 이유로 10년 가까이 자신들을 키워준 친할머니를 흉기로 잔혹하게 찔러 숨지게 하고 친할아버지까지 살해하려 한 10대 손자에게 1심에서 중형을 선고한 뒤다. 김 판사가 이들 형제에게 선물한 책은 고(故) 박완서 작가의 ‘자전거 도둑’이다. 자전거 도둑은 박 작가가 쓴 6개 단편을 모은 소설로, 자전거 도둑은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어른들 속에서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담겼다. 형 A(19)군에게는 “편지도 함께 넣어 뒀으니 한번 읽어보세요”라고 했다.
이날 김 판사는 살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형 A군에게 징역 장기 12년, 단기 7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또 A군의 범행을 도운 혐의(존속살해 방조)로 구속기소된 동생 B(17)군에게는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폭력 및 정신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앞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A군에게 무기징역을, B군에게는 장기 12년, 단기 6년 형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피해자(친할머니)가 비록 잔소리를 했지만 비가 오면 장애가 있는 몸임에도 우산을 들고 피고인을 데리러 가거나 피고인의 음식을 사기 위해 밤늦게 편의점에 간 점 등을 고려하면 죄책이 무겁다”며 두 형제를 꾸짖었다. 이어 김 판사는 ‘우발적 범행’인 점과 ‘교화 가능성’도 강조했다. 재판부는 “평소 부정적 정서에 억눌리던 중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정서 표출 양상을 보였다는 심리분석 결과를 보면 우발적 범행의 성격이 더 크다"고 밝혔다. 또 “범행을 인정하며 수차례 반성문을 제출했고 동생은 잘못이 없다고 일관되게 말하는 점 등을 보면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있고 충분히 교화개선 여지도 있어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A군은 지난해 8월 30일 0시 10분쯤 대구 서구 비산동 집에서 친할머니가 꾸중하거나 잔소리를 하는 것에 화가 나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동생 B군은 A군이 범행을 저지를 때 할머니의 비명이 밖에 들리지 않도록 창문을 닫는 등 범행을 도운 혐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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