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잠행 셋째날 제주도 방문
기자들 만나 “당무 거부 아니다”
‘윤핵관’ 작심 비판, 조치 요구도
李측 “당분간 상경할 계획 없다”
尹 서울서 빽빽한 공식일정 소화
“저도 노력해 왔다” 선대위 취소
당 원로들과 오찬서도 이견 대립
국힘 자중지란 한동안 이어질 듯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자당 이준석 대표의 ‘당무 보이콧’이 사흘째 이어진 2일, 빽빽한 공식 일정을 소화하며 ‘마이웨이’ 행보를 보였다. 휴대전화를 꺼놓은 채 측근들과 전국 곳곳을 순회 중인 이 대표는 전날 부산과 전남 여수·순천에 이어 이날 제주를 찾았다. 이번 사태가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두 사람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당 안팎의 자중지란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이날 아침 여수에서 배편으로 제주로 향했다. 그는 오전에 한 식당에서 4·3유족회와 간담회를 가졌다. 앞서 이 대표의 잠적을 놓고 선대위 인선이나 ‘당대표 패싱’ 논란 등을 둘러싼 갈등이 폭발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 바 있다. 이 대표는 오후에 제주 4·3평화공원 참배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격앙된 어조로 “(윤 후보의) ‘핵심 관계자’ 발로 언급되는 여러 가지 저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들이 지금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윤 후보를 향해서는 “후보가 배석한 자리에서 ‘이준석이 홍보비를 해 먹으려고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인사를 후보도 누군지 알 것”이라며 “모른다면 계속 가고, 안다면 인사 조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당연직 상임선대위원장인 이 대표는 자청해서 선대위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이번 잠행이 당무 거부라는 평가에 대해 “대선 후보가 선출된 이후 저는 당무를 한 적이 없다”며 당 사무총장과 2명의 부총장 교체에 관한 불만을 작심 성토했다. 그는 이번 지방 순회와 관련해서도 “딱히 잠행이라기보다는 김병준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이 공간을 (더) 가지는 게 옳겠다고 생각해서 지방에서 여러 일을 살피고 있다”고 답했다. 이번 잠행이 당무 거부가 아닌 선거운동의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이 대표와 동행 중인 한 당대표실 관계자는 “당분간 상경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저녁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당대표는 대통령(선거) 후보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말로 윤 후보를 직격하기도 했다. 이 대표의 잠적 후 첫 언론 인터뷰다. 그는 상경 ‘조건’에 대해 “서울에서 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언제든 갈 수 있다”면서도 “지금은 김병준 위원장을 ‘원톱’ 선대위원장으로 모시고 그렇게 하라고 했고, 지금 지방에서 업무 수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만 했다. 윤 후보 측 해 핵심 관계자의 준말인 ‘윤핵관’을 겨냥해선 “저는 제 선의로 당대표가 직접 본부장을 맡아가면서까지 이번 선거를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홍보비 해먹으려고 한다고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후보 주변에 있다는 건 선거 필패를 의미한다”며 “저는 실패한 대통령을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의 패싱 논란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이 대표는 “제가 밝힌 것처럼 당 대선 후보 선출 이후에 들은 내용은 딱 한 가지, 부총장 둘을 해임하고 싶다는 얘기 말고는 연락이 없었다”며 “여러 결정 사항이 선대위 구성 과정에서 있었겠지만 나중에 결정된 내용을 갖고 저를 설득하려고만 했다”고 역설했다. ‘이준석 패싱’의 한 근거로 자신의 반대에도 이수정 교수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한 일을 언급했다. 그는 자신의 잠행이 ‘태업’이란 지적에 대해선 “윤 후보 측 인사들은 제게 ‘후보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면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잠적하기 전 페이스북에 올린 ‘^_^p’란 이모티콘에 대해서는 “p는 ‘백기’의 의미”라며 “제가 그 안에서 더 이상 익명의 윤핵관들과 다투면서까지 제 의견을 개진할 의사가 없다는 걸 표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윤핵관에게 “파리떼”라는 표현을 동원해 맹비판하기도 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달 30일 돌연 모든 일정을 취소한 뒤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잠적했다. 그의 부산행은 뒤늦게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부산에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만나고 장제원 의원의 사상구 지역사무소를 방문한 이 대표는 전날 여수로 가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한 뒤 순천으로 이동해 지역구당협위원장인 천하람 변호사를 만났다. 천 변호사는 이날 MBC라디오에서 “이 대표가 ‘이대론 대선에 이길 수 없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첫째는 방향성, 둘째는 인선 관련 문제”라며 “위기감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이 대표가) 서울에 빈손으로 쉽사리 올라갈 생각은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윤 후보는 이날 오전 6시20분 서울 서대문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을 시작으로 오후까지 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했다. 윤 후보가 당 상임고문단과 함께한 오찬 자리에선 이 대표의 잠적 사태를 두고 당 원로들 간 이견이 표출되기도 했다. 대한민국헌정회장을 역임한 신경식 고문은 식사를 시작하기 전 윤 후보에게 “아무리 불쾌하고 불편하더라도 꾹 참고 당장 오늘 밤이라도 이 대표를 찾아가 ‘다시 같이 하자’고 하고 서울로 끌고오면 내일부터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에 권해옥 고문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신 고문은 “바다가 모든 개울물을 끌어안듯 윤 후보는 싫든, 좋든 전부 제 편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신 고문은 오찬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대부분 참석자가 윤 후보가 이 대표를 포용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한 뒤 “후보가 검찰에만 있어서 딱딱하고 포용력이 없다”고 쓴소리를 해 눈길을 끌었다. ‘원톱’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선대위 조기 합류가 불발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날 개인적 약속으로 같은 음식점에 나타나 윤 후보가 인사를 하러 찾아간 일도 있었다. 다만 별다른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윤 후보는 오후에 스타트업 정책 간담회를 마친 뒤 취재진에게 “이제 어느 정도 (이 대표) 본인도 리프레시를 했으면 저도 무리하게 압박하듯 할 생각은 없다”며 “정권교체를 위해 서로 조금 다른 생각이 있더라도 함께 가야 하는 건 분명하기 때문에 저도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윤 후보 측은 후보가 이날 오전으로 예정됐던 최고위원회와 선대위 회의를 열지 않은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부연했다. 이 대표가 불참한 자리에서 선대위 추가 인선 등 주요 의사 결정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 대표에게 예를 갖췄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 후보가 이 대표에게 직접 연락을 하거나 그를 만나러 가는 등 ‘저자세’를 취할 가능성엔 사실상 선을 긋고 나서면서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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