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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왕의 조카 가웨인 영웅담 그린 ‘중세 판타지’

입력 : 2021-08-05 19:54:16 수정 : 2021-08-05 19: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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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영화 ‘그린 나이트’

작자 미상의 영국 작품 ‘녹색의 기사’ 원작
흥미진진한 스토리·신비한 영상미 압권

녹색은 생명과 자연의 대표적인 색깔이지만, 동시에 침체와 부패를 의미한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에 이끼가 잔뜩 끼거나 음식에 곰팡이가 핀 경우를 상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생명은 태동과 함께 죽음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순환의 모형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녹색이 가진 양면적인 속성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 ‘그린 나이트’(포스터)는 이 같은 녹색의 상징성을 바탕으로 한다. 인류의 구원자라고 불리는 이가 태어난 크리스마스. 충만한 탄생의 에너지는 이날 녹색 기사가 제안하는 게임의 약속된 죽음과 충돌한다. 위대한 아서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모한 용기를 낸 주인공 가웨인(데브 파텔)은 녹색 기사의 목을 베고, 1년 뒤 똑같이 그에게 자신의 목을 바친다는 계약을 하고 만다.

가웨인은 1년 후 약속을 지키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산 자와 죽은 자, 초현실적인 존재들과 뒤엉키며 가웨인은 자아를 성찰할 기회를 얻는다. 목 베기 게임을 시작으로 여인의 유혹, 획득물 교환 게임을 거쳐 다시 목 베기 게임에 도달한 가웨인은 모험을 어떤 식으로 마무리할지 고민에 빠진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는 영웅적 서사의 주인공이 될 수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원작인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는 14세기 영국에서 집필된 것으로 알려진 작자 미상의 작품이다. 아서왕 전설을 다뤘지만, 우리에게 흔히 알려지지 않은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작품은 ‘반지의 제왕’ 작가 J. R. R. 톨킨이 1925년 처음으로 현대어 번역판을 내놓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기사도와 마법, 유혹, 변신, 자아 발견이 담긴 상징과 비유 그리고 수수께끼가 겹겹이 쌓인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이후 수십 년간 중세 문학 최고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혀왔다.

영화는 판타지의 상상력에 철학적 사유를 더 했다. 상징과 은유가 가득해 보는 이에 따라서는 난해하다고 느낄 만하다. 하지만 영웅, 전쟁, 종족을 초월한 사랑 등 진부한 판타지에 한 번이라도 질려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얼마나 풍부하고 탁월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놨는지 알아볼 테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뉴스룸’ 등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바 있는 가웨인 역의 파텔은 미숙한 인물이 영웅적 자질을 깨닫기까지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대니쉬 걸’, ‘툼레이더’ 등으로 스웨덴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한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가웨인의 연인 에셀과 여정 중에 가웨인을 유혹하는 귀부인까지 1인 2역을 소화했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둘이 같은 배우인지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탁월한 연기를 보여줬다.


조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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