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연장 때마다 ‘금빛 화살’… 마지막 10점 한발로 끝냈다

관련이슈 2020 도쿄올림픽

입력 : 2021-07-30 23:00:00 수정 : 2021-07-30 21:21:4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안산, 양궁 사상 첫 3관왕

러 오시포바와 5세트 동점 접전
“쫄지 말고 대충 쏘자” 주문 외워

첫 대회 중압감과 페미 논란에도
강심장·침착함으로 정상에 ‘우뚝’

시상식 애국가 울려퍼질 땐 눈물
“엄마가 해준 음식 너무 먹고 싶어”
과녁에 사인하는 안산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이 30일 일본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여자 개인전 시상식을 마친 뒤 과녁에 사인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전이 열린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 안산(20)과 옐레나 오시포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5세트까지 5-5 동점을 이루며 딱 한 발로 금메달 주인을 가리는 슛오프에 돌입했다.

보는 사람들마저 떨리는 순간, 오히려 안산의 ‘강철멘털’은 흔들림 없었다. 안산은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채 먼저 발사대에서 과녁을 조준했다. 이윽고 시위를 떠난 안산의 화살은 10점과 9점의 경계에 꽂혔다. 가까스로 선에 걸친 운명의 10점. 금메달에 한층 더 다가간 결정적인 한 발이었다.

오시포바의 차례. 슛오프는 동점일 경우 과녁 중앙에서 더 가까운 곳에 쏜 선수가 승자가 된다. 하지만 안산의 10점에 흔들렸을까. 오시포바의 활을 떠난 화살은 8점에 꽂혔다. 안산이 한국 선수로는 하계 올림픽 역사상 첫 단일 대회 3관왕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날 안산은 결승뿐만 아니라 준결승전에서도 슛오프 접전을 펼쳤다. 매켄지 브라운과 5세트까지 5-5로 맞섰고, 안산은 여기에서도 10점을 쏘며 9점을 쏜 브라운을 제쳤다. 생애 처음 올림픽에 나서는 스무살 선수답지 않은 강심장과 침착함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함께 다같이… 여자 양궁대표팀 안산이 30일 열린 도쿄올림픽에서 여자 개인전 우승으로 한국 선수 최초로 하계올림픽 3관왕에 올랐다. 안산이 지난 24일 김제덕과 짝을 이뤄 혼성 단체전에서 첫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밑에 사진은 두 번째 금메달을 딴 25일 여자 단체전 시상식 모습. 도쿄=연합뉴스

안산은 경기 외적으로도 흔들릴 요인이 많았다. 안산이 24~25일 혼성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에 오르자 그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네티즌들은 과거 그가 SNS에 ‘웅앵웅’, ‘오조오억’ 등 여성 우월주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찾아냈고,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안산이 쇼트커트 머리를 한 것도, 광주여대에 다니는 것도 페미니스트기 때문이 아니냐는 억지 주장이 나왔고, 안산이 ‘페미니스트’이기에 금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황당무계한 말도 있었다.

대한양궁협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안산 선수를 보호해 주세요’, ‘악플러들을 처벌해 주세요’ 등의 글이 이틀간 수천 건 올라왔고, 양궁협회 사무실에 ‘안산이 사과하게 만들지 말라’고 촉구하는 운동도 벌어져 전화선은 불통이 됐다. 안산을 두고 젠더 갈등이 번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안산은 자신의 이름인 산(山)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이번 도쿄올림픽 양궁 중계에는 선수들의 심박수도 표시됐다. 활을 쏘는 순간 다른 선수들은 분당 130~150회를 오가기도 했지만, 안산은 100회 안팎, 두 자릿수로 내려갈 정도로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 마지막 슛오프 때도 안산의 심박수는 분당 118회, 오시포바는 167회였다. 심장 크기의 차이가 메달 색깔을 가른 셈이다.

안산이 30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자신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무덤덤한 표정으로 슛오프에서 10점을 꽂던 강심장의 소유자도 3관왕에 오르고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다소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안산은 “저 원래 되게 많이 울어요”라면서 “심장이 터질 것같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슛오프의 승리 비결에 대해 묻자 “속으로 ‘쫄지 말고 그냥 대충 쏴’라고 계속 되뇌었다”는 안산은 “지도자 선생님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이번 시합 때 잘할 수 있었다. 관중석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해준 대표팀 동료 등 모두에게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특히 안산은 혼성 단체전에서 금메달 파트너로 관중석에서 목이 터져라 ‘파이팅’을 외쳐 준 김제덕에 대해 “목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올림픽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떨렸다는 안산은 심장박동수가 유독 낮은 것을 두고 ‘혹시 저혈압이 있는 게 아니냐’는 취재진의 농담 섞인 질문에 “아니에요. 저 건강해요”라고 답했다. 이로써 이번 올림픽 일정을 마친 안산은 “엄마가 해준 애호박 고추장찌개가 너무 먹고 싶다”며 웃었다.


도쿄=남정훈 기자 ch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