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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 만에 발굴 유해 옮길 때마다 “상여 나갑니다”… 현장 봉사자 묵념 [밀착취재]

입력 : 2021-06-21 06:05:00 수정 : 2024-01-30 16: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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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집단학살 비극’ 대전 골령골 유해발굴 르포

4·3 등 6·25 전후 정치범 처형지
1999년 美문서 통해 세상 알려져
7000명 매장 추정… 300구 발굴
27일 희생자 합동 위령제 개최
“상여(喪輿) 나갑니다.”

 

지난 18일 오후 대전 동구 낭월동 13번지(산내 골령골).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6·25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 학살지인 대전 골령골에서 유해발굴에 한창이던 손들이 멈춘다.

 

대전 동구 낭월동 13번지 ‘한국전쟁민간인희생사건 2021산내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에서 유해발굴조사단과 자원봉사자들이 지난 18일 유해 발굴에 나서고 있다.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제공

세심하고 꼼꼼하게 발굴된 유해가 한 데 담긴 못판, ‘상여’가 임시저장소로 향하자 현장 분위기는 일순간 숙연해진다. 현장에서 흙을 퍼 나르던 기자도 마음이 묵직해졌다.

 

‘상여’를 든 자원봉사자 조성규(64·청주)씨는 “억울하게 돌아간 분들에 대한 예의로 현장에서 유해를 담은 못판을 상여라 한다”며 “70년 넘게 차디찬 곳에 묻혀있다가 이제야 안식처로 옮겨지게 된 이들에 대한 도리”라고 말했다. 이 날 ‘상여’는 10여 차례 나갔다.

 

골령골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린다.

 

1학살지에서 8학살지까지 희생자를 묻은 구덩이를 보면 작은 건 20~30m, 긴 건 200m에 이르고 있는데, 이들 학살지를 연결해보면 무려 1㎞에 이른다. 가장 큰 학살지인 1지점은 9㎡(3평)에서만 300구의 시신이 쏟아져나왔다.

 

골령골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대전형무소에 수감돼있던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 재소자 등 정치범과 대전·충남지역 인근 민간인들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끌려와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처형돼 묻힌 비극의 현장이다. 1999년 12월 말, 해제된 미국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참혹한 역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20~30대에 속하지만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도 여러 명 있던 것으로 가늠된다.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희생자 수는 7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이 발발된 지 올해로 71년이 됐지만 발굴된 유해는 아직까지 300여 점에 이르고 있다.

 

발굴되는 유해는 대부분 정강이뼈, 골반뼈, 대퇴부, 치아 등이다. 두개골도 나오지만 뼈가 이어져있는 탓에 온전히 발굴되는 경우는 드물다. 총탄, 단추 등도 발견된다.

 

민간 중심이었던 골령골 유해발굴조사단은 올해 정부가 참여하면서 3개팀이 활동한다. 

 

유해발굴은 단순한 ‘발굴’이 아니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이들의 슬픔과 억울함을 듣는 일이다. 통째로 전달되는 참혹한 역사에, 심리적으로 불편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발굴단은 그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는 건 우리네 도리라 한다.

 

자원봉사자 한재현(32·대전) 씨는 “2015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자원봉사인데, 후손의 도리인 것 같다”며 ”꼼꼼하게 하는 게 어렵지만 훼손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동구 낭월동 13번지 ‘한국전쟁민간인희생사건 2021산내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에서 유해발굴조사단과 자원봉사자들이 지난 18일 유해 발굴에 나서고 있다.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제공

기자도 올해 유해발굴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유해 발굴과 지원 업무로 분담돼있는데 기자는 지원업무를 맡았다. 유해발굴 시 나오는 흙을 치우는 업무다.

 

처음 기자에게 호미를 쥐어주며 유해를 발굴하라던 조사단원은 기자의 서투름을 봤는 지, 이내 흙을 구덩이에 옮기는 업무로 배치했다. 흙통을 나르는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인간 컨베이어벨트’ 속에 자리잡고 연신 흙통을 주고 빈통을 받았다. 단순 업무지만 하다보니 흙통을 재빠르게 치우고 빈통을 옆에 놔 유해발굴팀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하는 요령도 생겼다.

 

뻐근한 허리가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건지, 흙통 무게에 짓눌린 건지 헷갈릴 때 쯤 누군가 자원봉사자에게 노래 한 소절 하라는 농담을 던진다. 그 한 마디에 가라앉은 현장 분위기가 살아난다.

 

조사단은 되도록 현장을 유쾌하게 유지하려한다.

 

박꽃님(36) 조사원은 “70년 넘게 억울하게 땅 속에 묻힌 분들을 만날 때면 심리적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다”며 “되도록 현장 분위기를 밝게 가져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골령골엔 2024년까지 전국평화위령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조사단은 유해가 묻혀있던 발굴현장의 원형 보존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사단은 올해 진실을 향한 속도를 더 내려고 한다. 

 

박선주 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공동조사단장(충북대 명예교수)은 “올해는 미군의 골령골 학살 사진 기록을 바탕으로 지난 해에 이어 1~3차 학살지를 명확히 찾고 어떻게 이뤄졌는지 사실을 밝히려고 한다”며 “그러면 희생자들의 수치도 더 정확히 기록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제71주기 22차 대전산내학살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오는 27일 오후 2시에 골령골 임시추모공원에서 열린다.


대전=강은선 기자 groo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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