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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의쉼표] 소금인형에게 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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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30 22:22:45 수정 : 2021-04-30 22: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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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 그거 무슨 노래야? 그러고 보니 내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던 것은 저 까마득한 대학 시절에 즐겨 듣던, 류시화의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인 ‘소금인형’이라는 노래였다. 아이가 가사 내용을 자세히 알려달라고 했다. 응, 옛날에 소금으로 만들어진 소금인형이 있었대. 어느 날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 싶었대. 그래서 바다에 들어갔다가 그만,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대.

순간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영문을 몰라 아이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이는 울면서 대답했다. 뉴스를 보면 되잖아. 아니면 책을 찾아보든가. 왜 바다에 들어가? 그러면 죽는다고, 그러지 말라고 엄마가 소금인형한테 말 좀 해줘.

나는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아이를 달랬다. 아이가 노랫말에 감정을 이입하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아이가 어느새 저쪽 세계에서 이쪽 세계로 건너왔다는 사실이었다. 직접 경험의 세계에서 간접 경험의 세계로, 그러니까 바다의 깊이를 알기 위해서는 바다에 직접 들어가는 방법 말고도 다른 방법들이 있음을 아는 세계로 말이다.

아이가 두세 살 때였을 것이다. 사탕을 먹을 때마다 사탕 한 입 먹고 그것을 입에서 꺼내 만져보고 그다음 다시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나는 아이에게 사탕을 만지지 말라고 했다. 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막대사탕을 사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사탕 한 입 먹고 입에서 그것을 꺼내 요리조리 돌려보고 또 한 입 먹고 다시 입에서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막대를 쥐고 있으니 사탕을 직접 만진 것은 아니지만 눈으로라도 그것을 확인해야겠다는 욕망 자체는 변함없었던 것이다. 사실 사탕만이 아니었다. 장난감이든 꽃이든 돌멩이든 뭐든 아이는 일단 만져보거나 먹어보아야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그 나이 아이들이 세상을 인식하고 감각하는 절대의 방식이니까.

그렇게 사탕을 알기 위해서는 사탕을 만져보아야 하고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서는 바다에 들어가야 하는 직접 경험의 세계에 속해 있던 아이가, 어느 틈에 뉴스와 책 같은 안전하고 편리한 다른 수단들이 존재하는 간접 경험의 세계로 진입한 것이다.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일 뿐임을 알면서도 놀랍고 신기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나는 이미 한 말을 일없이 반복했다. 그래, 알았어. 소금인형에게 꼭 말해줄게. 그러면 죽는다고, 그러지 말라고.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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