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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에 쓴 조상묘…대법 “토지 주인이 땅 사용료 청구하면 지급해야”

입력 : 2021-04-29 23:00:00 수정 : 2021-04-29 18: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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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주인, 분묘기지권자에 지료 청구…1심은 “의무 없어”, 2심은 “청구 때부터는 지급 의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연합뉴스

 

소유자의 승낙 없이 타인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했어도 20년간 평온·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했을 때 취득 가능한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과 관련, 토지 소유자가 분묘기지에 관한 지료(地料)를 청구했다면 해당 시점부터 이를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분묘기지권’이란 타인의 토지에 설치된 분묘 소유를 위해 그 분묘기지에 해당하는 토지를 사용하는 권리를 말하며, 민법이 아닌 관습법으로 인정하는 물권(物權)에 해당한다.

 

우리 민족의 조상숭배사상과 매장 중심의 장묘 문화 등 역사적·사회적 배경과도 얽혀있으며, 이 사건은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이의 지료 지급 의무가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9일 땅 주인 A씨가 자신의 땅에 조상 묘를 쓰고 관리해온 B씨를 상대로 낸 토지사용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B씨는 경기도 이천시 일대 토지에 1940년 사망한 조부와 1961년 사망한 부친의 묘를 쓰고 현재까지 관리하면서 분묘기지권을 취득했다.

 

2014년 B씨의 조상 묘가 포함된 토지를 경매로 사들인 A씨는 조상묘 사용에 따른 대금을 청구했으며, B씨는 분묘기지권을 확보해 토지사용료를 지급할 수 없다고 맞섰다.

 

1심은 “분묘기지권을 시효 취득하는 경우 지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2심은 “분묘기지권을 시효 취득하는 경우에도 적어도 토지소유자가 지료 지급을 청구한 때부터는 지료 지급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성립한 분묘기지권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토지 소유자라면, 일정 범위에서 토지 사용 대가를 지급받게 해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는 취지는 어디까지나 분묘 수호와 봉제사를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타인의 토지를 사용하게 하는 것이지, 양측 중 어느 한 편의 이익만을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그럼에도 분묘 설치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 지료를 지급하게 하는 것은 분묘기지권 자체의 소멸 우려가 있어, 시효취득을 인정해온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타인의 토지에 건물 등이나 수목(樹木) 소유를 위해 그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물권을 의미하는 ‘지상권’과 다르므로 해당 사안을 다루는 민법 규정이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분묘기지권자의 토지사용료 지급 의무가 분묘기지권 성립과 동시에 발생한다는 취지 판례와 토지사용료 지급 의무가 없다는 취지 판례를 모두 변경했다.

 

한편, 당사자 사이에 무상 합의 등 사정이 없다면 대가를 지급하는 관계로 보아야 한다며 분묘 설치 시부터 지료가 발생한다는 별개의견, 관습법이어서 법 해석으로 내용을 정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반대의견도 있었다.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인정해온 관습법 취지와 토지 소유자의 사유재산권을 동시에 존중, 전체 법질서에 부합한 해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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