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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구도로 회귀하는 국제정세… 해법 못 찾는 한국외교

입력 : 2021-03-24 06:00:00 수정 : 2021-03-24 07: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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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中·러, 反美연대 가속

中, 중동국가 등 우군 확보 총력
북한문제 대미 지렛대 활용 의도
러와 “내정 간섭 안 돼” 공동성명

러 외무, 美 쿼드 확대도 강력비판
방한때 한국 참여 우려 표명할 듯

전문가 “韓, 냉정한 현실 인식 필요”
CSIS “한국의 모호한 대중전략은
미국에 중국 편 든다는 오해 낳아”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유럽, 아시아 동맹국들과 함께 압박에 나서자 중국도 북한, 러시아를 규합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제제와 압박이 본격화하자 중국 역시 연대 강화 등 세 과시를 통해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G2(주요2개국) 간 갈등 전선이 주변 국가들로 확대하면서 미국과 중국 각 진영 간 ‘신냉전’ 구도가 형성돼 한국 외교도 해법을 찾느라 고심하는 모습이다.

중국은 미·중 고위급 회담 이후 북한과 러시아 등 전통적인 우호국들과의 관계를 부각시키고, 미국과 관계가 불편한 중동 국가 포섭에 나서는 등 우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3일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구두 친서를 교환한 내용을 관영매체 등을 통해 바로 공개하는 등 북·중 우호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시 주석이 구두 친서에서 ‘중국이 한반도 문제와 지역의 평화 안정 및 발전 번영을 위해 새로운 적극적 공헌을 하고 싶다’고 밝힌 점은 북한 문제를 미·중 관계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 역시 ‘북·중 관계를 세계가 부러워하는 관계로 강화·발전시키겠다’고 화답했는데,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를 관철하려는 부분에서 중국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미·중 회담 직후 중국을 방문한 것도 중국의 세 과시 전략의 일환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독살 시도를 문제 삼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살인자’로 칭하면서 미·러 관계는 급랭하고 있다.

라브로프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회담 후 내놓은 공동 성명에서 “서방세계 등 다른 나라들이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거나 이를 통해 국내 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며 “주권국가가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택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다른 나라들이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가 더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의 인권 문제에 대해 운운하지 말라는 경고다.

中·러 외무회담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오른쪽)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3일 중국 구이린에서 양자회담과 성명서 서명을 마친 뒤 문서를 교환하고 있다. 구이린=AP연합뉴스

라브로프 장관은 특히 중국 포위망 성격으로 구성된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안보협의체 ‘쿼드’(Quad)에도 부정적 시각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한국 방문(23∼25일)을 앞두고 지난 19일 모스크바 주재 한국 특파원단과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방한 의제에 대해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러시아의 아주 중요하고 전망 있는 파트너”라며 “(그러나 현재) 이 지역을 재편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인도·태평양 지역’이라는 용어가 도입됐다. 이 과정의 의미는 아주 우려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주의 깊게 인도·태평양 전략의 틀 안에서 행해지는 조치들을 살펴보면 그것들은 진영화(블록화) 사고에 기반하고 있고, 어떤 긍정적 과정이 아니라 특정 국가들에 대한 반대를 위한 블록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국뿐 아니라 중국과 전략적 협력관계인 러시아까지 겨냥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미뤄 라브로프 장관은 오는 25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국의 쿼드 참여 가능성에 우려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북·중·러의 밀착이 공고해질수록 한국으로서는 난감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려는 문재인정부로서는 북한 문제에서 중·러와의 공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중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바이든 정부의 반중 연대 참여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 앞에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우리 외교의 입지는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중·러의 밀착으로 국제정세가 냉전구도로 회귀할 경우 한국은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된다”면서 “정부는 이제라도 국제정치 현실을 냉정히 인정하고 북한 눈치를 보는 데서 벗어나 할 말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2일(현지시간) 한국이 대중 관계에 있어서 보복을 우려해 ‘전략적 모호성’을 취해 미국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이런 전략은 중국에 대한 취약성만 키운다고 조언했다. CSIS는 ‘한·미동맹을 위한 제언’ 보고서에서 “한국의 대중전략은 미국에 중국 편을 들고 있다는 오해를 낳고 있다”며 “다른 동맹 현안 대처에 있어서도 불신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미 양국이 공동의 인식을 공유하지 않으면 중국에 대한 지렛대 효과도 사라진다면서 “중국은 한국을 미국의 전체 동맹관계에서 ‘약한 고리’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한·미동맹 관계를 중국에 대처하는 개념에서 벗어나 ‘아시아 복원력’을 증진하는 전략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미가 안정적인 공급망, 클린 네트워크, 강한 민주주의, 항행의 자유, 인권 등 분야에서 아시아 복원력 증진을 위해 미래지향적이고 원칙에 기반한 틀을 가지고 ‘반중 동맹’이란 옛 서사를 새로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美·英·EU·캐나다 공동 중국 제재 中도 유럽 인사 10명 입국금지 맞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정부가 미 동맹국과 연대해 국제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강력히 견제하는 전략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미국은 22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영국, 캐나다와 공동으로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 이슬람교도 탄압에 연루된 중국 당국자들을 제재 대상 명단에 올렸다.

 

이에 맞서 중국도 즉각 보복성 제재 조치를 내놓았다. 미·중 알래스카 고위급 접촉이 아무 소득 없이 끝난 뒤 G2(주요 2개국) 갈등이 더욱 첨예화하는 모양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이날 미국, 캐나다, 영국의 중국 제재를 환영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5개국은 동맹국 간 정보를 공유하는 ‘파이브아이스’(Five Eyes) 국가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중국과 고위급 회담을 한 뒤 곧바로 유럽을 방문해 22일부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 및 EU 회원국 외교장관들과 연쇄 접촉을 가졌다.

 

EU는 이날 왕쥔정 신장생산건설병단 당위원회 서기, 천밍거우 신장공안국장, 주하이룬 전 신장당위원회 부서기, 왕밍산 신장정치법률위원회 서기 등 신장 지역 인권 탄압 관련자 4명과 신장생산건설병단 공안국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미국은 주하이룬과 왕밍산은 이미 제재 대상에 올라 있었기에 왕쥔정과 천밍거우를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미국은 심각한 인권 탄압이나 부패에 연루된 인사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비자 발급을 불허하며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중단하는 내용을 담은 ‘글로벌 마그니츠키 인권책임법’을 적용키로 했다. 유럽 국가들은 그동안 중국과의 무역 및 투자 교류를 확대하면서 중국 인권 문제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으나, 바이든 정부 출범 후 미국과 연대해 중국 제재에 동참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대서양 양안의 공동 대응은 국제적인 인권 침해 당사자들에게 중요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중국이 신장 지역에서 위구르족을 탄압하고 있는 것이 ‘집단학살’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중국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제재에 즉각 보복 조치를 내놓았다. 중국 외교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중국의 주권과 이익을 심각히 침해하고, 악의적으로 거짓말과 가짜정보를 퍼뜨린 유럽 측 인사 10명과 단체 4곳을 제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은 중국 당국이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독일인 학자 아드리안 첸츠(중국명 정궈언)를 비롯해 유럽의회 및 네덜란드·벨기에·리투아니아 의회 의원 등과 EU 이사회 정치안전위원회 등이다. 제재 조치로 해당 인사와 가족, 관련 기업 및 기구는 중국 본토 및 홍콩·마카오 입국이 금지된다. 또 중국은 니콜라 샤퓌 주중 EU 대사를 초치해 EU의 중국 제재 결정에 항의했다. 이 자리에서 친강 외교부 부부장은 “EU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잘못을 시정해 중국과의 관계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U와 중국은 지난해 말 투자협정 체결 합의 등을 통해 우호적인 관계를 보였지만 이번 제재 조치로 파열음이 예상된다. 대립이 격화할 경우 투자협정의 EU 의회 통과가 어려워질 수 있다.

 

베이징·워싱턴=이귀전·정재영 특파원, 원재연 선임기자,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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