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공조 회복, 미국의 최우선 과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들어 한·일관계를 개선하라는 미국의 요구가 한층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3각 공조를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 하에서 한·일관계가 계속 나쁘면 한·미관계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각수(66) 전 주일 대사는 11일 오전 서울대 총동창회 주최로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조찬 포럼에 참석해 ‘바이든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과 한·일관계 전망’이란 제목의 강의를 했다. 신 전 대사는 외무고시 9회에 합격한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주일 대사관 1등서기관, 일본을 담당한 외무부(현 외교부) 동북아1과장 등을 거쳐 주일 대사(2011∼2013)를 지낸 국내 최고의 일본 전문가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2차관과 1차관을 내리 맡는 등 한국 현대 외교사의 산증인이라 할 만하다.
신 전 대사는 “미국이 일본을 동아시아 전략의 기본으로 간주한다”는 말로 운을 뗐다. 미국 조야에서 한·미 동맹을 일컬어 ‘핵심축’(린치핀·linchipin), 미·일 동맹은 ‘주춧돌’(코너스톤·conerstone)이라고 각각 부르는 것을 두고 국내에선 린치핀이 더 요긴한 관계인지, 아니면 코너스톤이 더 가까운 사이인지 논란이 일곤 하는데 신 전 대사는 “둘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고 단언했다. ‘린치핀>코너스톤’이라고 여기는 일부 한국인의 사고와 달리 미국은 한국보다 일본을 훨씬 더 중시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얘기다.
“미국은 일본이란 프리즘을 통해 동아시아를 들여다본다”고 단언한 신 전 대사는 “미국이 동아시아에 군사력을 투사할 때 일본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남쪽으로는 오키나와부터 북쪽으로는 홋카이도까지 길쭉하게 늘어서 있는 일본 열도야말로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가로막는 데 꼭 필요한 최적의 요새라는 뜻이다.

신 전 대사는 “바이든 정부는 한·미·일 3각 협력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며 “한·일관계 회복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2019년 7월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당시 중·러는 정례 합동군사훈련의 일부일 뿐이라고 했으나 신 전 대사는 이를 “한·미·일 3각의 약한 고리(한국)를 노린 도발”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북방의 북·중·러 3각은 갈수록 결속력이 강해지고 있는 반면 남방의 한·미·일 3각은 서로 틀어져 있는 현 정세를 지적한 뒤 한국이 먼저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토대로 한·미·일 공조를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조찬 포럼에는 정세균 국무총리도 참석해 혹시 한·일관계 개선과 관련해 뭔가 진전된 입장을 내놓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모았으나, 정 총리는 축사에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 해결과 한·일 간 미래지향적 협력 과제를 분리하려는 문재인정부 대일 외교정책의 ‘투트랙’ 기조에 관한 원론적 언급만 내놓았다. 더욱이 정 총리는 코로나19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 회의 주재를 이유로 신 전 대사 강의가 시작되기 전 행사장을 떠났다. 이에 서울대 총동창회 관계자들 사이에선 “정 총리가 신 전 대사의 강의를 꼭 들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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