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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에게 ‘학폭 트라우마’는 현재 진행형”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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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2-21 20:53:05 수정 : 2021-02-21 20: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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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사건’ 전문 노윤호 변호사
체육계, 폭력의 ‘대물림’ 나타나
“‘미투’ 학폭방지에 효과적일 수도
폭력, ‘남의 일’로 방관해선 안돼
가해자부모 편협된 사고 개선 시급”
지난 18일 만난 노윤호 변호사가 최근 논란이 된 ‘학교폭력 미투’ 현상과 체육계 학교폭력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피해자에게 학교폭력의 상처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과거 학교폭력(학폭) 피해자였던 의뢰인의 상담을 마친 노윤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사월)의 말이다. 이 의뢰인은 중학생 때 겪은 집단따돌림(왕따)과 학폭으로 학교를 자퇴한 후 9년 동안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겪고 있다. 성인이 돼 노 변호사를 찾아온 그는 자신이 겪은 학폭 피해와 병원 치료 경험을 엮은 책을 건넸다. 노 변호사는 최근 유명 프로배구 선수의 과거 가해 사실이 드러나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른바 ‘학폭 미투’ 논란과 관련, “적용하는 죄명에 따라 다르지만 학폭에 적용되는 공소시효는 길어봤자 7년이라 시간이 지나면 입증도 처벌도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노 변호사는 다만 “학폭 미투가 마녀사냥식의 분위기도 없지 않지만 ‘언젠가 나의 행위로 내가 책임을 지게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가해 학생도 학교폭력을 멈추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2019년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학교폭력 전문변호사 1호’ 인증을 받은 노 변호사는 2016년부터 학폭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뤄왔다. 노 변호사는 최근 이재영·다영(25·이상 흥국생명) 자매를 비롯해 체육계 학교폭력 제보가 터져 나오는 것에 대해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폭 피해자가 변호사를 찾을 때는 극단적인 경우로 ‘(피해자·가해자) 둘 중 한명은 선수생활 끝낸다’는 수준”이라며 “학교서도 모르고 지나가는 사건이 많다”고 했다.

노 변호사는 체육계 학폭의 특징으로 폭력의 대물림과 피해자 부모의 사건 덮기를 꼽았다. 그는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가 폭행을 저질렀지만 지금은 감독·코치의 묵인 아래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 ‘군기잡기’ 명목으로 후배를 때린다”며 “가해 학생들이 ‘자신들도 과거에는 폭력의 피해자였다’는 말을 많이 한다. 폭력이 대물림된다”고 전했다. 피해 학생의 부모들이 사건을 덮는 데 적극 나서는 점도 체육계 학폭 사건에서 자주 발생한다고. 노 변호사는 “성적(실력)이 좋은 학생이 가해자, 주목받지 못하는 후배가 피해자이다 보니 피해자 부모들이 더 (피해 사실을) 숨기는 데 데 가담하기도 한다”며 “심지어 피해 학생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그 부모가 나서서 조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초·중·고·대학과 실업·프로팀까지 이어지는 폐쇄된 체육계 특성상 자녀가 ‘배신자’로 낙인찍힐 경우 더는 선수생활을 못하게 될까 봐 그런 것이다.

노 변호사는 최근 오래전 학폭 피해 내용을 폭로하는 게 잇따르는 데 대해, “과거의 사건이 문제되는 까닭은 당시에는 학폭의 개념이나 관련법 자체가 없었을 때라 자신이 겪은 피해가 학폭이란 것도 몰랐거나 알았어도 신고하거나 도움 받을 생각도 못했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지금은 가해자들이 학교 내에서 우위에 있지만 결국 사회에 나가면 언젠가는 책임을 묻게 돼 있다”며 “(비난여론이) 처벌보다 더 가혹한 측면도 있지만 결국 ‘부끄러운 건 가해자지 피해자가 아니다’는 인식이 자리 잡히면 학폭 문제도 훨씬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학폭 폭로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공분하지만 정작 자기 주변의 학폭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학교 내 폭력을 방관하는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 변호사는 조속한 피해자·가해자 분리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학폭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3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학폭 대응에 전문가의 참여가 늘고 학교장 자체 해결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조정·화해가 늘었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 보호는 법 개정 전후로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고 노 변호사는 지적했다. 그는 “학폭이 다른 폭력과 다른 점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학교는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하고, 피해자는 가해자 마주치는 게 겁나 화장실도 못 간다. 그런데 가해자는 잘 지내고, 미안해하는 모습도 없는 모습을 보면서 피해자는 더 상처만 안고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고 설명했다.

노 변호사는 학폭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건을 바라보는 가해자 부모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참석해보면 학생은 인정하는데 오히려 가해자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잘못이 없다’며 강하게 말하는 분들도 있다”며 “그런 부모의 편협한 사고가 선도의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자녀를 재범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잘못한 부분은 잘못했다고 인정하도록 하는 게 피해 학생의 회복과 가해 학생의 반성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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