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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창덕궁 후원의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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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1-22 22:29:32 수정 : 2021-01-22 22: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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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의 정자들.

올해는 유난히도 눈이 많다. 코로나로 지친 심신을 하얀 눈으로 포근히 덮고 싶은 심정이다. 가까이에서 설경의 진수를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창덕궁 후원이 있다. 창덕궁 후원은 세조 때 현재의 규모로 확장한 이래 인조, 숙종, 정조, 순조 등 역대 왕들이 필요에 따라 각 영역을 조성한 것으로 나타난다. 옛 기록에 따르면 창덕궁 후원은 북원(北苑), 금원(禁苑,) 상림(上林)이라고 불렀다. 1980년대까지는 비원(秘苑)이라는 용어로 지칭되었지만, 비원이란 명칭은 1904년 이후 일제가 주로 사용하여 현재는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창덕궁 후원에는 조선 초기부터 100여 채 이상의 누각과 정자들이 세워진 것으로 나타나지만 현재는 40여 채 정도가 남아 있다.

후원이 시작되는 가장 중심 공간에는 1776년 정조가 건립한 규장각과 그 앞에 연못 부용지가 있다. 규장각 2층 누각인 주합루 동쪽의 영화당 앞 넓은 마당에서는 과거 합격자들에 대한 시상이 있었다. 규장각을 지나 후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자, 연못, 돌담, 장식물 등이 자연과 어우러진, 존덕정, 관람정, 취규정, 소요정, 태극정 등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정자들을 만날 수 있다. 창덕궁 후원 북쪽 깊숙한 곳에 널찍한 바위, 폭포와 정자들이 비경을 연출하는 곳은 옥류천과 소요암 지역이다. 옥류천은 백악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응봉 기슭으로부터 흐르는 물과 인조가 친히 파서 일군 어정(御井)에서 넘치는 물이 합류하는 작은 개천이다. 이곳에 있는 태극정, 취규정 등의 정자들은 대부분 인조 때 조성되었다. 인조는 옥류천 위의 넓은 바위(소요암) 하단에 ‘玉流川(옥류천)’이라는 세 글자를 새겨 넣었다. 소요암에 ‘흩날리는 물 삼백척 높이/멀리 구천에서 내리네’로 시작하는 숙종이 지은 시가 새겨져 있는 것도 주목된다. 초가로 지붕을 덮은 청의정을 비롯하여, 농산정, 취한정 등 개성을 지닌 정자들도 풍류와 멋을 더해 주고 있다. 눈으로 덮여 있는 시점에 창덕궁 후원을 찾아보면 더욱 좋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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