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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이 가져온 건축·디자인의 변화상

입력 : 2021-01-21 19:44:10 수정 : 2021-01-21 19: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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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올림픽 이펙트’
당시의 스케치·사진·영상자료 등 통해
새 유형의 건축물·바뀐 도시풍경 조명
미술감독 이만익 아카이브 최초 공개
김수근 올림픽주경기장 모형도 눈길
구본창 ‘긴 오후의 미행’(1988)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등장한 건축과 디자인은 30년 넘게 흐른 지금도 우리 일상에 깊게 스며있다. 강변북로를 달리다보면 세월의 무게 만큼 빛바랬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올림픽 마크가 보인다. 여의도를 바라보면 고작 63층밖에 되지 않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는 여전히 서울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남아있는 63빌딩이 반짝인다. 88올림픽은 한국 건축·디자인사에서 중대한 사건이었다.

 

경기도 광명시 과천로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건축이라는 예술 분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제가 한창이다. 바로 미술관 1전시실 및 중앙홀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 전시다. 88올림픽을 계기로 벌어진 한국 건축과 디자인의 격변을 고찰하는 전시인데, 관람객 누구라도 추억에 잠길 작품들로 풍성하다. 건축과 디자인은 사람이 있는 공간 어디에나 영향을 미치는 예술 분야임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전시는 방대한 아카이브를 꼼꼼하게 챙겨 선보인다. 작가와 전시를 준비한 학예사들이 한마음이 돼 들인 정성이 눈에 선하다.

선우훈 ‘모듈러라이즈드’(2020) 1988부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작가 게리 허스트윗, 구본창, 권민호, 다이아거날 써츠(김사라), 서울과학사, 서울스테이지, 선우훈, 이만익, 진달래&박우혁, 최용준, 텍스처 온 텍스처 등의 작품과 자료가 300여 점에 달한다. 작품 및 자료 협조처도 디자인회사 212 컴퍼니, 컴퓨터 건축 설계 시스템 ‘캐드’를 한국에서 처음 도입한 정림건축 등 20여 곳에 이른다. 정다영 학예연구사는 “올림픽이라는 사건 이면에 있던 토대, 이를 계획한 이들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고 말했다.

이 아카이브 중에 놓쳐선 안 될 것이 있다. 88올림픽 개·폐회식 미술감독이었던 화가 고 이만익의 아카이브다.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개회식의 하이라이트를 구상하며 색연필로 그린 그림, 출연자들의 의상 스케치와 메모 등이다. 한국적 서양화의 거장으로 존경받던 그가, 전쟁을 딛고 일어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국제행사의 중책을 맡으며 했던 고민, 책임감의 무게, 꿈꾸고 바랐던 구상이 30여년이 지난 지금 관람객과 만난다.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작품 ‘다다익선’의 설계도와 모형, 김수근의 올림픽주경기장 모형 등도 눈길을 잡는다.

물론 자본의 집중적 투입, 화려한 스펙터클을 회고하기만 하는 전시는 아니다. 사진작가 구본창이 남긴 작품들은 올림픽이라는 국가행사를 계기로 전면에 부상한 국가주의 이면의 소외된 사람, 장소를 담았다.

진달래&박우혁 ‘마스터플랜 화합과 전진’(2020)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진달래&박우혁의 설치작품도 올림픽이라는 사건을 중층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로비는 달리기 경기장처럼 트랙이 그려져 있고 곳곳에 설치된 LED화면에서는 규칙적으로 도형들의 움직임이 일사분란하게 반복되고 있다. 이들은 기자간담회에서 “88올림픽은 한국디자인 선진화의 시작이었고, 그 내용에는 ‘좋지 않은 것을 가리기’, ‘규칙을 지키는 ‘모범시민’되기’가 있었다”며 “시각적인 측면에서 그리드(격자) 패턴, 규격화돼 있고 규칙이 있는 경기장과 공통점이 있다는 데에서 착안해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선우훈의 디지털드로잉 ‘캐릭터라이즈드’는 그 시대에 나서 자라고 성장해 지금은 예술가가 된 작가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아기자기함으로 전시를 한층 즐겁게 한다.

전시 후반부에 놓인 권민호의 설치작품 ‘일하는 손’은 이 전시의 훌륭한 마무리다. 전시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한 데 모아 건축가들을 향해 헌사하는 듯한 작품이다.

캐드가 도입되기 전에 사용됐던 제도판을 사람 키보다도 크게 확대한 모형이 은은한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 작업대 앞에서 1㎜의 오차도 없도록 선을 긋고 지우며, 건축가들이 하얗게 지새운 밤이 떠오르는 듯하다. 4월11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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