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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는 괴로움의 연속… 멈추진 않을 것” [2021 신년특집- 신춘문예(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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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1-01 06:00:00 수정 : 2020-12-31 19: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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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남현정

오랜 시간, 나는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써 왔다.

소설을 쓰는 시간은 소설만을 생각했던 시간이며 그래서 나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보다는 기쁨이 더 큰 시간이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무언가를 써 내는, 신비롭고 불가해한 시간.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러나 소설을 다 쓰고 나면 나는 무력해졌다.

왜 나는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계속 쓰고 있는가?

누구도 답을 주지 않았고 스스로 답을 찾지도 못했다.

포기라는 말을 몇 번이고 노트에 썼다. 그러나 그다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포기 이후. 그다음의 삶. 없는. 나에게는 없을 삶.

그러니 나는 계속 쓰는 수밖에 없었다.

무력감을 느낄 때마다 내가 했던 일은 읽기였다.

베케트의 신들린 듯한 중얼거림에 매혹되거나 프루스트의 숨막히게 아름다운 사유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플로베르의 끝 모를 유머를 흉내 내보거나 블랑쇼의 지독하게 정확한 문장들을 넋 놓고 따라 쓰거나 그러다보면 나는 어느 새 내 소설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를 붙들어 일으켜 세웠던 무수한 문장들!

그것들을 읽는 시간은 괴로움이 없고 순수한 즐거움만이 있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소설 쓰기의 괴로움을 내 곁에서 유일하게 알아주었던 남편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내가 소설을 쓰고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가 내게 준 열정적인 지지와 사랑은 너무 과분했고 그 덕분에 나는 다음 소설을 계속 고민할 수 있었다.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문학이, 소설이 불가능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라면, 그것이 시체 안치소에서 시트를 들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처럼 끔찍한 것이라 해도, 그럼에도 계속 쓰겠는가 누군가 나에게 물었을 때, 쓰겠다고 답하겠다는 내가 나는 두렵다.

그러나 나에게는 계속 쓰겠다는 말 이외에 할 수 있는 말이 지금으로선 없다.

-1983년 광주 출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서울대 협동과정 공연예술학과 석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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