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와 경찰의 사과 그리고 법에 따라 향후 국가로부터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형사보상금….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20년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53)씨가 마주했거나 앞으로 마주하게 될 일들이지만, 과연 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는 17일 열린 이 사건의 재심 선고공판에서 “과거 수사기관의 부실 행위로 잘못된 판결이 나왔다”며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오랜 기간 옥고를 거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은 피고인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직접 수사하고 재심 재판을 이끈 수원지검 형사6부 소속 이상혁(사법연수원 36기), 송민주(42기) 검사도 검찰을 대표해 윤씨에게 사과했고, 경찰청도 무죄 판결이 나온 후 입장문을 통해 “무고한 청년에게 살인범이라는 낙인을 찍어 20년간 옥살이를 겪게 해 큰 상처를 드린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고개 숙였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당시 13세이던 중학생 박모양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다. 이듬해 검거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2·3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20년간 복역 후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이 지난 1월 받아들이면서 재심이 열리게 돼 사건 발생 32년 만에야 윤씨는 ‘살인 전과자’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떼게 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윤씨는 현행 형사보상법에 따라 향후 국가로부터 정당하게 형사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수감 후 무죄 확정 시 국가가 수감 기간에 대한 피해를 일정부분 보상하는 제도로, 윤씨의 옥살이에 대한 하루치 최대 보상금은 약 35만원이다. 올해 최저시급 8590원에 8시간을 곱한 뒤, 최대 5배까지 가능한 점을 감안해 나온 금액이다. 여기에 복역 기간(19년 6개월)으로 보상금을 추산하면 최고 18억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고문 등을 당한 사실도 인정됐으므로, 국가를 상대로 윤씨는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한편, 윤씨는 무죄판결을 받은 뒤 하고 싶은 일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살면서 생각해보겠다”며 “보상 문제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무죄를 선고받아 후련하고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앞으로는 공정한 재판만 이뤄지는 게 바람”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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