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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역설… 2030 ‘영끌 빚투’ 열풍 [심층기획]

입력 : 2020-11-24 06:00:00 수정 : 2020-11-23 23: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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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변동장서 위험한 ‘영끌’… 내 집 마련 꿈이 악몽될라
2020년 초 증시 급락에 “집값 종잣돈 마련”
무리하게 빚내 투자… 부작용 우려

젊은층의 ‘욜로(YOLO)’가 ‘빚투’로 바뀌었다. 최근 몇년 새 2030세대는 재테크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욜로에 몰두했다. 올해는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빚투(빚을 내서 투자)’ 대열에 나서고 있다. 정반대의 행태인 욜로와 빚투이지만 근원은 모두 주택이다. 욜로가 너무 비싼 집값에 구매를 아예 포기한 결과인 데 비해 빚투는 주택을 구입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향한 몸부림이다.

 

23일 서울에 사는 직장인 박모(38)씨는 올해 은행에서 신용담보 대출과 증권사 신용공여로 1억원 넘는 자금을 확보해 주식에 ‘올인’했다. 지난해까지 재테크에 별로 관심도 없이 버는 족족 화려한 생활을 해온 그다. 어차피 일해 벌어봤자 ‘평생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하다고 여긴 탓이다. 올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국내 증시가 급락하면서 기회가 찾아온 듯했다. 박씨는 바이오·제약주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주식투자에 나섰다. 구입한 종목이 급등할 때도 있었으나 하락한 날도 빈번했다. 박씨는 하락장이 되면 홀린 듯 증권사에서 추가 대출을 받아 주식을 더 구매했다. 지난달 코스피가 급락하면서 박씨의 신용공여 담보비율이 140% 이상으로 올라버렸다. 증권사가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위해 주식을 강제 처분해 버리는 반대매매를 당할 위기였다. 박씨는 반대매매를 피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별다른 수익 없이 매달 30만원 상당의 이자만 지불하는 처지가 됐다.

 

올해 2030세대의 재테크 화두는 빚투다. 너무 높아져 버린 집값에 절망하던 젊은 세대에게 코로나19 충격으로 급락한 증시는 주택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빛’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무리하게 빚내 투자하는 ‘빚투’가 늘어나면서 부채에 짓눌리는 젊은이들 고통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최근 3년여간 5대 시중은행 신규 신용대출 141조9000억원의 33.3%인 47조2000억원을 30대가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0대의 신규 대출은 최근 2년새 급등했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14.0% 증가했으나 올 들어 8개월 만에 2019년 동기 대비 72.3%나 급증했다.

 

올해 빚 내 투자하기 열풍은 남녀노소를 불문하지만, 유독 2030세대의 ‘빚투’가 두드러졌다. 기성세대보다 가진 자산도 적은 젊은 세대들이 무리하게 빚을 내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식 등에 투자하는 것은 ‘내 집 마련’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풀이된다.

 

◆“그저 몸 누일 집 하나만 있었으면…”

23일 미래에셋자산운용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국 만 25∼39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1%가 재무 목표를 주택 구입비 마련이라고 답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욜로’로 대표되는 ‘소비 재원 마련’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에 불과했다.

서울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박모(33)씨는 올해 개인 신용대출을 포함해 무려 2억원 가까이 대출을 받아 주식 투자에 ‘올인’했다. 박씨는 추후 주식을 처분할 때 양도소득세 22%를 낼 각오까지 하면서 수익률이 높지만 위험도 큰 미국 증시에 빌린 돈 대부분을 넣었다. 지난달 글로벌 증시가 한 차례 크게 휘청였을 때는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아파트 전세 가격이 오르는 데다 전세 물건은 거의 없어 전세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22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공인중개업소에 표시된 매물정보를 시민들이 보고 있다. 뉴시스

박씨가 무리해서 주식에 투자한 이유는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내 집 마련의 꿈’ 때문이었다. 근로소득으로는 서울 시내 변변한 아파트조차 마련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증시 위기를 기회 삼아 ‘대박’을 노린다는 생각이었다.

박씨는 “두 살배기 아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커가는데 가족을 위한 안정된 보금자리가 없다는 게 너무나 크게 와닿았다”며 “비록 주식 투자가 실패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지금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신모(30)씨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최소 수도권에 거주할 만한 전세금이라도 마련해야 하는데, 최근 전세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신씨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신씨도 은행 신용담보 대출과 증권사 신용공여 등을 통해 5000만원을 빌려 주식투자에 나섰다. 주식투자로 단기간에 집값을 벌 생각은 하지 않지만, 집을 마련할 때 기반이 될 수 있는 정도는 모으자는 생각이다.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대출 창구의 모습. 연합뉴스

빚투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게다가 20대는 대출이 까다로운 은행과 달리 보유 주식만 있으면 증권사로부터 쉽게 대출받을 수 있는 신용공여에 쏠리고 있다. 지난 9월 기준 20대의 신규 신용대출은 14조2000억원으로 전체의 10%를 차지했다. 아울러 9월 기준 20대가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린 신용융자는 전년보다 162.5%나 증가했다. 전체 신용융자 16조4000억원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4200억원(2.4%)으로 미미하지만, 증가율은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50세 이상 60세 미만 장년층의 신용융자 잔고는 지난해보다 88.9% 늘어나면서 20대의 절반 수준으로 나타났다.

◆부메랑이 된 ‘빚투’… 바이오 종목에 집중

빚투는 항상 큰 리스크를 동반한다. 상승장에서는 가진 자본금보다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지만, 하락장에서는 손실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최근 국내 증시가 하락하다가도 갑자기 상승세로 이어지는 등 변동성이 커지면서 개인투자자들의 영혼을 끌어모은 빚투가 그대로 부메랑이 돼 돌아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에 낸 ‘개인투자자의 신용거래 동향’ 자료에 따르면 신용공여 계좌에 대한 반대매매 위험성이 높은 금액은 9월 말 기준 약 9조원으로 집계됐다.

증권사의 신용공여는 증권사에서 주식 매수자금을 빌리는 신용융자와 보유 증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예탁증권 담보대출로 나뉜다. 두 가지 모두 증시가 과열될 때 발생하는 빚투의 전형이고, 대부분 ‘단타(단기투자)’에 활용된다. 게다가 증권사에서 빚을 내기 쉬운 점도 신용공여가 늘어나는 요인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신용공여로 사들인 종목을 보면 주로 제약·바이오 종목에 집중됐다. 제약·바이오 종목은 다른 종목에 비해 변동성이 큰 데다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신약 개발 기대감 등으로 변동성이 더 커지면서 이를 노리고 저점에 들어가 고점에 처분하려는 투자 심리로 풀이된다.

지난 9월에 반대매매가 가장 많은 종목 1∼3위는 신풍제약, 씨젠, 셀트리온으로 나타났다. 또 상위 10개 종목을 보면 이 중 6개, 상위 20개 종목 중 12개가 바이오 종목이었다.

 

빚투는 국경도 없다. 이달 13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 보관잔액은 373억8402만달러로, 지난달 말 351억156만달러보다 6.50% 늘어났다. 특히 이달 들어 국내투자자들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기대되는 제약회사 화이자와 미국 전기차 업종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최재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올해 지속해서 유입된 유동성이 낙관적인 증시 전망을 유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신용잔고 등 빚투는 추후 하락장으로 인해 증시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대량의 반대매매를 발생시켜 손실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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