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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둘러봐도 발 떨어지지 않는 대둔산 단풍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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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07 10:17:13 수정 : 2020-11-07 1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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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금강산’ 대둔산 단풍속으로
마음도 울긋불긋∼오매, 단풍들었네

케이블카로 금강구름다리까지 순식간 이동
오색단풍 기기묘묘한 산봉우리 수채화 같아
첫사랑 마주한때처럼 심장이 쿵쾅

한순간 ‘덜컹’하더니 케이블카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곧이어 눈앞에 펼쳐지는 믿기 힘든 풍경들. 수채화 붓으로 물감을 꾹꾹 찍어 누른 듯 울긋불긋한 단풍은 첫사랑을 마주한 때처럼 아주 빠르게 심장의 진자운동을 부른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기암괴석 봉우리들까지. 해발 879m ‘호남의 금강산’ 대둔산 단풍은 치명적이고 아찔하다.

 

#큰두메산 봉우리마다 단풍 들었네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원효대사는 곳곳에 드러난 화강암 암반이 기암괴석을 이루며 끝없이 펼쳐진 전라북도 완주 대둔산 풍경에 푹 빠져 좀처럼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고승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을까. 이른 아침 트레킹화 끈을 단단히 조이고 대둔산으로 떠나는 여행길은 첫 소풍에 나선 아이처럼 마냥 기대감이 부푼다.

 

오늘은 가파른 산을 올라야 하니 빈속을 먼저 채워야겠다. 대두산 인근 맛집 대둔산골에서 능이버섯전골을 주문했다. 주인장이 직접 채취한다는 자연산 능이버섯이 수북하게 담긴 냄비가 끓기 시작하자 비 그친 숲속에 서 있는 듯, 젖은 낙엽과 흙내음이 보글보글 올라온다. 참지 못하고 한숟갈 떠 넣자 속이 건강으로 가득 차는 기분이다. 오로지 버섯으로만 진한 국물을 우려내 자연의 향을 아주 잘 살렸다.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가는 길은 마을장터다. 할매들이 능이버섯, 둥치버섯, 영지버섯 등 온갖 버섯으로 좌판을 차렸다. 한 할매는 직접 만든 특제 고추장 소스에 찍어 먹어보라며 향긋한 더덕을 내민다. 넉넉한 시골인심이다. 단감, 대추, 옥수수 등 시식거리가 넘쳐나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케이블카 탑승장에서는 벌써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온다. 저 멀리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한 숲사이로 기암괴석 봉우리들이 보여서다. 하지만 놀랄 시간은 이제 시작이니 감탄은 아껴두시길. 케이블카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불과 30초만 지나면 왼쪽부터 형제봉, 마천대, 왕관바위, 장군바위가 빠르게 눈앞으로 다가오는데 마침 날이 맑고 투명해 푸른 하늘과 단풍, 봉우리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다.

 

성인 51명을 태울 수 있는 케이블카는 927m 거리를 6분 동안 날아 금강구름다리 바로 아래까지 여행자들을 모신다. 걸어서 오르는 길은 40분 정도 걸리지만 케이블카를 강추한다. 마치 드론처럼 자유롭게 비상하며 즐기는 대둔산 단풍은 걸어서는 절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한약 냄새가 진동한다. 대추, 생강, 당귀 등 온갖 약재를 넣은 쌍화탕이 커다란 솥에서 진하게 끓고 있다. 한잔 따라 마시니 몸이 따뜻해지며 활력이 온몸을 감싼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 두 갈래 길에서 왼쪽 금강구름다리 쪽으로 향한다. 가파른 계단을 헉헉대며 오르면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연결한 높이 81m의 아찔한 철제다리가 등장한다. 길이는 50m에 불과하지만 기암절벽의 단풍을 코앞에서 즐길 수 있으니 천천히 걸어보자. 다리를 건너 약수정을 지나 왼쪽으로 조금만 오르면 전망대다. 인생샷을 찍으려는 이들이 줄을 서 있다. 철제 전망대에 서자 눈앞에 단풍으로 물든 가을산이 가득하다. 오래오래 눈에 담고 싶지만 기다리는 이들이 많아 짧게 감상하고 아쉬움을 달랜다.

 

#127개 수직계단 올라 왕관봉 마주하다

 

전망대에 서면 눈앞에 믿지 못할 풍경이 펼쳐진다. 북한산 인수봉을 닮은 앞 봉우리 절벽에 꼭대기로 오르는 철제계단이 거의 수직으로 아찔하게 걸쳐 있다. 바로 삼선바위 중 가장 오른쪽 바위로 오르는 삼선계단. 경고문이 붙어 있다. 노약자, 임산부, 음주자는 위험하고 한 번에 60명까지 오를 수 있으며 다리를 흔드는 장난행위를 절대 금지하란다. 계단은 모두 127개로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용기를 내 천천히 올라본다. 중간쯤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다리가 풀리며 오금이 저려온다. 정말로 위험하니 난간을 꼭 잡고 헛디디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계단을 모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밑에서 본 것보다 더 가파르게 보여 정신이 혼미해진다. 전설이 전해진다. 고려말 한 재상이 나라가 망해가는 모습에 한탄하며 딸 셋과 함께 대둔산 자락으로 들어와 평생을 보냈다. 재상의 딸들은 어느날 신선이 돼 이곳에서 능선 아래를 내려다보는 바위로 굳어졌단다. 실제 마천대를 중심으로 양쪽에 선 바위는 마치 신선들이 놀다간 곳인 것처럼 신비롭다.

 

힘들게 삼선계단을 오르면 대둔산 풍경의 절정을 마주한다. 수직 기둥을 겹겹이 세운 듯한 왕관봉이 이름처럼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모습을 드러내는데 왼쪽 마천대와 어우러져 케이블카를 타면서 본 것보다 훨씬 장엄하다. 동남아 청년 4명이 한껏 포즈를 잡으며 사진 좀 찍어 달라고 청한다. 오랜만에 실력을 발휘해 근사한 사진 몇장 선물한다. 대둔산은 울창한 숲과 화강암 암반이 기암괴석 봉우리를 이루며 첩첩이 싸여 있는 산수화 같은 풍경을 지녀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체력이 좀 남았다면 30분 정도 더 올라 마천대 정상까지 가 보자. 발아래 펼쳐진 대둔산 단풍을 만끽할 수 있다.

대둔산은 한듬산을 한자로 만든 이름. 한은 크다, 듬은 두메, 더미, 덩이라는 의미로 큰두메산, 큰덩이의 산이란 뜻이다. 낙조대, 태고사, 금강폭포, 동심바위, 금강계곡, 삼선약수터, 옥계동 계곡 등 마치 신이 빚은 듯한 비경이 곳곳에 숨어 있어 사계절 매력을 발산한다. 미리 신청하면 천등산 하늘벽, 신선암벽, 옥계동 양지바위에서 암벽등반도 할 수 있다. 등산로도 다양하다. 1코스는 대둔산도립공원매표소∼동심바위∼구름다리∼마천대∼칠성봉∼장군봉 갈림길∼용문골 매표소로 이어지는 5.2㎞ 구간으로 3시간30분이 걸린다. 2코스는 용문골매표소∼장군봉갈림길∼칠성봉∼마천대 구간 2.2㎞로 1시간50분이 소요된다. 3코스는 운주면 완창리 안심사에서 출발해 서각봉∼마천대∼동심바위∼대둔산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5.3㎞ 구간으로 3시간50분 정도 잡아야 한다.

 

#억새와 단풍 같은 노을 함께 즐기는 비비정

 

‘화암사, 내 사랑/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 주지는 않으렵니다.’ 얼마나 반했으면 혼자만 즐기려 했을까. 시인 안도현은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라며 화암사의 매력을 그렸다. 대둔산 인근의 화암사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던 곳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고즈넉한 풍경을 선사한다. 대둔산 절경에 흠뻑 빠진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극락전이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됐고 1605년(선조 38년)에 다시 지은 건물로, 처마길이를 길게 뺄 수 있도록 고안한 건축 부재인 ‘하앙’을 사용한 우리나라의 유일한 건축물이다.

이제 곧 노을이 내릴 시간. 완주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삼례읍 만경강 비비정으로 향한다. 이곳은 조선시대 선조 때 정자로 소실됐다 1998년에 복원됐다. 옛 선비들은 비비정에 올라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떼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겼는데 이를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 불렀을 정도로 풍경이 빼어나다. 비비정예술열차는 요즘 완주여행의 핫플레이스. 열차에 오르니 만경강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억새군락이 은빛바다를 만들어 놓았다.

바람을 따라 이러저리 몸을 휘적이는 풍경은 잊지 못할 가을낭만이다. 강이나 물가에는 갈대, 산이나 들에는 억새가 자라는 법인데 이곳에는 독특하게 억새가 주인이고 갈대가 손님으로 드문드문 섞였다. 덕분에 은빛잎새가 단풍처럼 불타는 노을을 그대로 받아 파스텔톤으로 반짝인다. 여기에 만경강 폐철교와 비비정예술열차, 그리고 아름다운 정자 비비정까지 어우러지니 평생 잊지 못할 완벽한 낙조를 선물받는다. 

 

완주=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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