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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탑’ 마크 와인을 아십니까...아시아와인트로피 전세계에 대전 홍보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관련이슈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입력 : 2020-10-31 05:00:00 수정 : 2020-11-02 18: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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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인트로피 박찬준 아시아디렉터 단독 인터뷰
판·검사 꿈꾸던 형사법 전공 법학도
獨 유학중 선물로 받은 와인에 끌려 입문
한국 돌아와 와인용품 제조사 창업
獨 슈미트 모젤와인협회 명예회장
獨 와인마케팅사 페터 안토니 회장과
1993년 아시아와인트로피 결성
박찬준 대표

대전광역시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가 한빛탑이다. 199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린 세계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높이 93m의 독특한 상징물로 빛·과학·우주와 경주 첨성대를 모티브로 삼았다. 한빛탑은 지금도 대전엑스포과학공원 한가운데 대전의 랜드마크로 우뚝 서 있다. 이런 한빛탑이 8년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주요 산지에서 생산되는 와인 1000여종의 병에 부착돼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와인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다. 일명 ‘탑 마크’ 와인으로 불리며 대전을 전 세계에 알리고 와인을 고르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소비자들에게 품질을 보장하는 선택 기준으로 인정받았다.

한빛탑과 대전이 담긴 아시아와인트로피 로고

어떻게 한빛탑이 와인 품질의 상징이 됐을까. 바로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와인기구(OIV)가 공인한 유일한 아시아 지역 국제와인품평대회로 매년 대전에서 열리는 ‘아시아와인트로피(Asia Wine Trophy)’ 덕분이다. 전 세계에서 모인 와인전문가들은 OIV의 기준에 따라 까다롭고 엄정한 심사를 통해 가성비 뛰어난 보물 같은 와인들을 발굴한다. 상을 받은 와인들만 한빛탑이 새겨진 아시아와인트로피 스티커를 와인 병에 부착하는 영광을 누린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행사 규모가 대폭 축소됐지만 완벽한 ‘K방역’ 덕에 지난 11∼14일 무사히 치러졌다. 대전시, 대전마케팅공사와 함께 8년째 성공적으로 행사를 이끌고 있는 인물은 아시아와인트로피와 베를린와인트로피(Berlin Wine Trophy)의 아시아 디렉터를 맡고 있는 박찬준(58) 대표. 그를 만나 아시아와인산업의 허브 도시로 성장하는 대전의 미래를 함께 그려봤다.

박찬준 아시아와인트로피 아시아디렉터

#형사법 전공한 법학도 와인의 향기에 빠지다

 

와인 지식이 많지 않은 소비자들은 와인샵이나 마트에서 와인을 고를 때 한참을 망설인다. 이럴 때 국제와인품평대회에서 메달을 수상한 와인들이 큰 도움이 된다. 매년 와인 1만5000종이 출품되고 심사위원 400여명이 참가하는 OIV 최대 규모 와인품평회인 베를린와인트로피, 프랑스 양조학자 연맹이 파리에서 여는 비날리 인터내셔널(Vinalies Internationals), 벨기에 브뤼셀에서 처음 시작해 매년 유럽의 도시를 돌면서 열리는 콩쿠르 몽디알 드 브뤼셀(CMB), 영국의 디캔터 와인 어워드(Decanter Wine Awards)와 인터내셔널 와인 앤 스피릿 컴피티션(IWSC), 독일의 문두스 비니(Mundus Vini) 등이 대표적이다. 양조학자, 와인메이커, 마스터 오브 와인(MW), 와인전문기자 등 내로라하는 ‘와인의 신’들이 모여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점수를 매긴 뒤 그랑골드, 골드, 실버 메달을 수여한 와인이라 소비자들은 수상 와인을 고르면 실패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런 세계적인 와인품평대회로 성장하는 행사가 바로 2013년부터 시작된 아시아와인트로피다.

 

박 대표는 어떤 인연으로 와인에 빠져 이런 국제 행사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유치하게 됐을까. 사실 박 대표는 와인과 거리가 아주 멀었다. 연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형사법을 전공한 법학도이니 말이다. 대학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해 부모는 박 대표가 판·검사가 될 줄 알았단다. 그의 인생은 독일 유학이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독일 쾰른대학교 법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대학 범죄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화가이던 독일인 친구가 와인을 선물하더군요. 독일 화이트 품종 쇼이레베(Scheurebe)로 만든 와인인데 처음 경험하는 황홀한 세상에 깜짝 놀랐어요. 며칠 뒤 3시간을 운전해 그 와이너리를 직접 찾아가 구경하고 30병을 구입해 매일 마셨죠. 그때부터 법 공부를 접고 와인의 길로 나섰답니다.”

아돌프 슈미트 독일 모젤와인협회 회장

#극적인 아시아와인트로피의 출범

 

한국에 돌아와 와인용품 만드는 회사부터 차렸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한때 와인러버들의 필수품이던 와인병에서 레이블만 쏙 떼어내는 테이프 앨범이 그의 작품이다. 와인 아티스트를 사귀고 싶어 매년 독일 출장을 다녔고 2010년 서울에서 코르크로 예술작품을 만들고 레드와인으로 그림을 그리는 독일 아티스트들과 와인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한국작가 작품으로 ‘와인 아트 저머니 앤 코리아’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독일 아르 지역 와인협회 지원으로 부르고뉴 피노누아 품종의 독일 버전인 슈페트부르군더 와인 시음행사를 국내 최초로 진행했답니다. 주한독일 대사, 한독상공회의소 소장 등이 방문했고 그들을 통해 알게 된 독일 모젤와인협회 지원으로 세 차례 모젤와인들을 소개하는 행사를 개최해 큰 호평을 받았죠.”

 

아돌프 슈미트 회장과 박찬준 대표

이때 박 대표는 ‘독일 와인의 거장’으로 스파클링 와인 젝트의 선구자인 아돌프 슈미트 모젤와인협회 명예회장과 운명적으로 만나 두터운 친분을 쌓아갔다. 대전시는 2012년 가을에 1회 ‘대전국제푸드앤와인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해 봄 서울국제주류박람회에서 만난 대전시 관계자가 독일어권 와이너리 유치를 의뢰했고 박 대표가 모젤와인협회와 오스트리아와인협회를 섭외했다. “당시 슈미트 회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베를린와인트로피를 주최하는 독일와인마케팅사(DWM) 페터 안토니 회장의 한국 방문을 성사시켰고 안토니 회장은 수상 와인들을 한국에 대거 보내 대전의 첫 와인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집니다.” 결국 이 행사에서 안토니 회장과 대전시, 대전마케팅공사가 의기투합해 2013년 아시아와인트로피가 극적으로 출범했다.

박찬준 대표와 페터 안토니 회장

#전 세계에 대전 알리는 홍보 효과 톡톡

 

첫해 출품와인 2000여종과 심사위원 70명으로 시작한 아시아와인트로피는 지난해 4300여종, 심사위원 127명이 참여한 대규모 국제와인품평대회로 성장했다. 공정성을 위해 OIV 규정에 따라 외국 심사위원이 더 많으며 보통 55∼60%를 차지한다. 국내외 심사위원들이 6명 정도로 한 팀을 이뤄 그랑골드(92점 이상), 골드(85점 이상), 실버(82점 이상)로 점수를 매기며 최고·최저 점수는 평가에서 제외해 객관성을 최대한 확보한다. “유럽에는 출품와인의 70%까지 상을 남발하는 품평회도 많은데 그러면 권위가 떨어져요. 아시아와인트로피는 수상 와인을 전체 출품 와인의 30%로 제한합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심사위원들이 자국 와인들을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시아와인트로피는 한국 와인이 아주 적어 다른 품평회보다 더욱 공정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답니다.”

 

행사 기간에 아시아와인콘퍼런스도 열려 국내외 저명한 인사들이 다양한 주제로 콘퍼런스를 진행한다. 일반 소비자에게도 무료 개방하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세미나를 경청하는 소비자도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덕분에 아시아와인콘퍼런스는 2018년 한국관광공사의 콘퍼런스 평가에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함께 진행되는 대전국제와인페스티벌에서는 해외 와이너리 관계자들이 직접 방한해 바이어와 일반 소비자들에게 와인을 홍보하며 트로피 수상 와인 시음행사도 곁들여진다. 입장료가 1만원이지만 지난해 전국에서 1만2000여명이나 찾는 가장 유명한 와인축제로 성장해 와인 대중화에 기여하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효과가 상당하다는 평가다. 또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KISA)가 주최하는 한국 국가대표 소믈리에 경기대회도 매년 개최된다. 3년마다 열리는 ‘왕중왕전’ 최종우승자는 세계소믈리에협회(ASI)가 주최하는 아시아·오세아니아 베스트 소믈리에 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박찬준 대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와인 생산자와 국내수입사들의 즉석 비즈니스가 이뤄지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이벤트가 동시에 진행되는 와인행사는 전 세계에서 아시아와인트로피가 유일합니다. 예전에 대전 시장이 ‘아시아도시정상회담’을 대전에 유치하기 위해 호주로 출장을 갔을 때 일입니다. 호주 관계자가 ‘대전은 아시아와인트로피를 여는 와인 도시’라고 말해 대전 시장이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로 해외에 대전을 알리는 효과도 매우 큽니다. 광고업계 분석에 따르면 아시아와인트로피를 통한 대전 홍보 효과가 연간 30억원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와인과 인문학의 만남

 

올해 아시아와인트로피 일정은 애초 8월이었지만 코로나19로 행사가 10월로 연기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매년 독일와인마케팅사에서 전문가 7∼8명이 파견돼 행사 진행과 태블릿PC 등 기술적 지원, 출품 와인 분류 등을 돕는데 올해는 단 한 명도 오지 못했다. 입국 뒤 36시간만 자가격리하는 특별비자를 받기로 대사관 등과 협의를 끝내 독일에서 4명이 파견될 예정이었지만 대회를 불과 열흘 앞두고 서류 미비로 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됐다. 부랴부랴 플랜B를 가동해 한국 스태프들로만 대회를 치렀다. “대전국제와인페스티벌은 이미 취소가 결정됐고 코로나19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트로피 개최 여부도 불투명해져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매우 컸어요. 더구나 독일 관계자들까지 못 오게 되니까 ‘멘붕’이 오더군요. 다행히 독일에서 이미 와인 스캐너 등 장비를 보내온 터라 베를린의 관계자들과 매일 화상회의를 해가며 직접 전산 시스템을 깔아 대회 준비를 마쳤답니다. 하지만 소득도 커요. 이번에 대회 진행 노하우가 생긴 만큼 앞으로는 독일 파견 인원을 최대한 줄이고 국내 스태프를 더 많이 활용하게 될 겁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외국에서 심사위원들이 오지 못해 국내 거주 외국인 심사위원을 포함 7개국 83명이 29개국 3493종을 심사해 1048종 와인에 메달을 수여했다.

아시아와인트로피 2020 심사현장

앞으로 그가 걸어갈 와인의 길에서는 어떤 향기가 피어날까. “대학과 기업 등에서 와인과 인문학을 엮어 강의를 진행하는데 5년 동안 와인인문학관련 책을 10권쯤 집필하는 것이 목표랍니다. 유럽 와인여행 중 인상 깊었던 몰도바 와인을 정리해 최근 책으로 냈는데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펴낸 몰도바 와인 관련 책이라네요. 덕분에 매년 10월 첫주 주말에 열리는 몰도바와인데이 오프닝 세리머니에 초대받았는데 가지는 못했고 몰도바 정부로부터 공로 메달을 받았답니다.” 박 대표는 독일 대표 품종 리슬링 와인을 가장 좋아한단다. “리슬링은 드라이한 맛에서 스위트한 맛까지 낼 수 있는 다양성이 있어서 좋아요. 삶을 질리지 않는 다양한 향기로 가득 채울 수 있으니 리슬링 와인을 꼭 한번 마셔보세요.”

 

대전=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박 대표 아시아와인트로피 대표는…

●1962년 충북 제천 출생 ●배재고·연세대학교 법학과·연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졸업 ●독일 쾰른대학교 법과대학 박사과정 수료 ●독일 쾰른대학교 부설 범죄학연구소 연구원 역임 ●(주)디렉스인터내셔날 대표 ●프랑스 브레이크 이벤츠(Break Events) 고문 겸 한국 대표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부회장(국제협력) ●온라인 와인 매거진 더 센트(THE SCENT) Executive Editor ●아시아와인콘퍼런스 디렉터 ●베를린와인트로피, 그르나슈 드 몽드(Grenaches du Monde) 등 다수 유럽 국제와인품평회 심사위원 ●강사(독일 가이젠하임대학교·경희대학교 관광대학원·한국문화예술재단·기업 등) ●2014년 포르투갈 형제애 와인 기사 작위 ●2019년 루시옹 와인 기사 작위 ●독일 모젤와인 명예대사 ●슬로베니아 토착품종 아시아 명예 대사 ●저서 ‘몰도바 와인’, ‘와인은’ ●2010년 와인아트 인 저머니 앤 코리아, 2011년 모젤 와인 앤 아트 등 다수 와인 관련 전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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