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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도 채용 취소·연기… “이력서 낼 기회조차 없어요” [연중기획 - 피로사회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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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0-11 10:00:00 수정 : 2020-10-11 1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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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절반 “신규채용 계획 못 세워”
일부는 정기적인 대규모 공채 폐지
올 취업자 작년보다 27만여명 감소
학원 등 출입 어려워 시험준비도 애로
대학 졸업생 55% “연내 취직 못할 것”

기업들 속속 상시채용으로 전환
준비생들, 시기 불확실성에 난감
#1. “올해는 취업을 포기했어요.”

항공사 취업을 원했던 김모(28)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준비하던 직군을 바꿨다.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가 최악의 위기를 맞으면서 채용을 중단한 것은 물론 실업 사태까지 직면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항공사 취업을 3년 가까이 준비했는데, 코로나19로 더 이상 꿈꿀 수 없게 됐다”며 “올해는 사실상 취업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 내년도 다른 직군 채용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2.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이모(31)씨도 올해 코로나19로 차질을 빚었다. 당초 5월로 예정됐던 1차 시험이 연기를 거듭하다 8월에야 치러졌고, 이씨를 비롯한 대다수 수험생이 시험 준비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험이 연기되면서 이씨는 평소 다니던 학원이나 도서관에도 가지 못했다. 그는 “시험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혹시나 확진자와 접촉해 자가격리를 하게 될까 봐 집에서도 방 안에만 처박혀 있었다”며 “내년에도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으면 시험에 변동이 생길 것 같아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쇼크로 취업시장의 빙하기가 지속되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가뜩이나 경직된 취업시장이 코로나19라는 악재를 맞닥뜨리면서 취업준비생들이 이력서를 낼 기회조차 줄었다. 기업들도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해 채용 규모와 방식을 바꾸고 있어 최악의 취업난을 겪는 ‘코로나 세대’가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취업문, 더 높고 좁아졌다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한 채용시장은 경기가 불황이던 지난해보다 위축됐다. 기업들은 채용을 줄이는 것을 넘어 공채를 폐지하거나 구조조정까지 고민하고 있다.

7일 통계청의 ‘2020년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전체 취업자 수는 2708만5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27만4000명 줄었다. 이 가운데 15~29세 취업자는 지난해 8월 398만3000명에서 올해 8월 381만1000명으로 17만2000명 감소했다. 30~39세 취업자 역시 551만8000명에서 528만8000명으로 23만명이 줄어들었다. 취업준비생 정모(29)씨는 “지난해에도 취업이 어려웠는데 올해는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며 “내년에도 나아질 것이란 기약이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전국 4년제 대학 재학생과 졸업생 4158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취업인식도 조사’를 진행한 결과 졸업생의 55.5%가 ‘올해 취업을 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중 취업이 가능할 것으로 본 학생 비중은 44.5%에 그쳤다. 2014년 이후 5년간 졸업생의 실제 취업률이 62.6∼64.5%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올해 대졸 신규 채용이 지난해보다 어려워졌다는 응답은 75.5%로 지난해 조사보다 29.4%포인트나 급증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인 56.8%는 ‘하반기 취업 환경이 상반기보다 더 악화됐다’고 답했다. 일부 대기업이 하반기 들어 채용에 나선 상황에서도 취준생들의 체감경기는 오히려 나빠졌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취준생들이 겪는 어려움으로는 ‘채용 기회 감소로 인한 입사 경쟁 심화’라는 응답이 38.1%로 가장 많았다. 이어 ‘체험형 인턴 등 실무경험 기회 확보 어려움’(25.4%), ‘단기 일자리 감소 등 취업준비의 경제적 부담 증가’(18.2%) 등이 뒤를 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채용시장의 경직은 청년층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청년 고용의 현황 및 정책 제언’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청년층의 취업난 충격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두드러질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다수의 기업이 신규 채용을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층의 취업자수는 연평균 10만명 정도가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노동시장 진입단계에 있는 청년들의 경우 이번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가 회복되고 경제가 정상적으로 활성화하더라도 승진 지연과 경력 상실 등으로 인한 임금 손실이 향후 10년간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현재 청년층 고용상황의 급격한 악화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국내통제로 인해 대면업종의 서비스 소비가 급격히 감소하고 경기가 위축되며 나타난 현상”이라며 “향후 청년층 고용은 해외의 코로나19 위기와 이에 따른 전 세계적 경기침체로 인해 제조업을 포함한 전 산업에서 더욱 위축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기업들도 버티기에 급급

기업들도 코로나19로 채용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한경연이 지난달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0년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의 74.2%는 ‘올해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한명도 채용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이 중 ‘신규채용 계획 미수립’ 기업은 50.0%, ‘신규채용’ 계획이 ‘0’인 기업은 24.2%였다.

일부 기업은 채용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돌연 취소하거나 연기하기도 했다. 채용정보 사이트 사람인이 구직자 20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0.7%는 ‘코로나19로 채용 취소 또는 연기를 통보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채용 연기’를 경험한 경우도 58.7%에 달했다.

채용을 진행하는 기업들도 전형을 바꾸거나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상반기와 하반기에 정기적으로 진행하던 공채마저 폐지했다.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해마다 정기적으로 대규모 채용을 진행하는 것보다 소수의 필요한 인재만 뽑겠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변화가 취준생 입장에서는 기업의 채용이 불규칙해지고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경연은 “청년 고용시장은 기업들의 경영실적 악화에 따른 고용여력 위축과 고용경직성으로 인한 신규채용 유인 부족이 겹치면서, 사상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산업 활력 제고와 고용유연성 확보에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여, 청년들의 실업난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 비대면 채용 확산… 취준생들, 새 전형 적응 ‘이중고’ 

 

코로나19로 취업문이 갈수록 높고 좁아지고 있다. 정례화된 채용방식마저 무너지면서 취업준비생들은 새로운 채용전형에 적응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7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하반기 채용시장의 가장 큰 변화로는 ‘언택트(비대면) 채용의 증가’와 ‘수시채용 확대’가 꼽힌다. 달라진 채용방식은 코로나19 사태 속에 기업들이 불가피한 대안이기는 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변화라는 해석도 있다.

 

언택트 채용은 서류심사부터 실제 근무까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상반기 정기 공채를 폐지한 LG그룹은 채용 연계형 인턴십으로 인재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기존의 정기 채용이 필기시험이나 면접 등 비교적 정형화된 방식과 절차로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개개인의 직무역량이나 적성 등을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이 과정은 언택트로 이뤄진다. 직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인턴십 대상자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화상으로 멘토의 피드백을 받고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출퇴근에 필요한 시간이나 비용이 절감되고, 실력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평균 4주 정도의 인턴십 전형을 정규직 채용 과정으로 생각하면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지난 상반기 온라인 직무적성검사(GSAT)를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감독관들이 실시간으로 원격 감독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삼성그룹은 코로나19 여파로 상반기 직무적성검사(GSAT)를 온라인으로 진행한 데 이어 하반기 시험도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온라인으로 치러진다. 삼성은 대규모 오프라인 시험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온라인 GSAT 정례화를 검토하고 있다. 지금까지 온라인 GSAT에서 부정행위나 오류가 발견되지 않은 만큼, 온라인 채용 전환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다만 온라인 필기시험은 오프라인으로 시험을 치르는 것보다 난도가 낮아지는 등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장기적으로는 온라인 시험의 평가 방식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역시 기존의 정례화된 방식의 채용시험을 준비하던 취준생들에겐 적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언택트 채용과 함께 상시채용 전환에도 적극적이다. 기존에는 취준생들이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뉜 공채시즌을 공략해 취업을 준비했다면, 이제는 기업의 상황에 따른 유동적인 채용 일정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원하는 시기’에 필요한 인재를 뽑을 수 있지만, 취준생들에게는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상반기에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대안으로 여겨진 언택트 채용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이나 구직자 모두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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