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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성 함께 쓰기’ 주창한 이이효재 명예교수 별세

입력 : 2020-10-04 18:09:38 수정 : 2020-10-04 18: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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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남아 선호 고정관념 깨뜨리자”며
여성운동가 171명이 부모 양성 쓰기 제안
이이효재(1924∼2020) 이화여대 명예교수. 세계일보 자료사진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주창한 것으로 유명한 여성운동가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4일 별세했다. 항년 96세.

 

통상 ‘이효재’라는 본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고인은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7년 3월 9일 동료 여성운동가 170명과 함께 ‘부모 성 함께 쓰기 선언’을 발표하며 자신의 이름도 ‘이이효재’로 바꿨다. 당시 조한혜정(연세대 명예교수), 고은광순(한의사), 김신명숙(여성학자) 등 운동가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요즘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임신한 여성이 태아 성감별을 받고 ‘딸’이란 얘기를 들으면 그만 낙태를 하는 일이 암암리에 자행되던 시절이다. 고인은 선언문에서 “태아 성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로 인간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통탄한다”며 “남아선호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부모 성 함께 쓰기 선언을 채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호주제와 동성동본 금혼을 명시한 가족법의 개정과 여성의 정치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운동을 지속하는 한 방편”이라고 덧붙였다. 호주제는 이후 노무현정부 들어 폐지됐고, 동성동본 금혼제는 그보다 먼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고인은 흔히 ‘1세대 여성운동의 기틀을 닦은 선구자’로 불린다. 1977년 고인이 교수로 있던 이화여대에 국내 최초의 여성학과 설치를 주도했고, 한국여성민우회 초대 회장과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등을 지냈기 때문이다. 

 

1994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관계자들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일본 측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 일본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는 방안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오른쪽 2번째가 당시 정대협 공동대표이던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여성운동가로서 고인의 발자취는 앞서 소개한 부모 성 같이 쓰기 선언 외에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운동, 비례대표 국회의원 여성 50% 할당제 주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결성 및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국제사회 공론화 시도 등이 대표적이다.

 

고인은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58년 모교 이화여대에 사회학과를 창설했다. 군사정권 시절 고인은 민주화운동에도 앞장서 1980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했다가 교수직에서 일시 해임되기도 했다.

 

사회학자로서는 ‘분단사회학’을 개척한 것으로 유명하다. 갈라진 한반도의 역사가 여성과 가족, 사회 구조에 끼친 영향에 천착한 것 등이 업적으로 꼽힌다. 한국사회학회 회장과 한국가족학회 초대 회장도 지냈다.

 

고인은 은퇴 이후인 1997년부터는 고향에서 지역 여성들과 함께 ‘기적의 도서관’을 운영했다.

 

유족으로는 딸 이희경씨, 동생 은화(전 이화여대 교수)·효숙·성숙씨, 올케 이부자씨가 있다. 빈소는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고인이 여성운동에 평생을 바친 점을 기리고자 ‘여성장(葬)’으로 치러진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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