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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치우치지 않은 시선과 풍성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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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25 22:06:48 수정 : 2020-09-25 22: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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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

인상주의에 가담했던 폴 세잔은 곧 회의를 느꼈다. 인상주의자들이 눈으로만 파악한 감각세계를 혼란스럽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지적인 질서와 구성을 부여하려 했다. 대상 표면의 색이 변한다 하더라도, 입체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관점에서 세잔은 “모든 자연 속의 대상은 원통, 원추, 구로 환원하여 나타내야 한다”고 말했다.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은 인상주의 그림에 비해 무겁고 단단해 보인다. 잘게 쪼갠 색 점들이 없어졌고, 넓게 바른 색 면으로 입체적인 형태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화면이 꽉 찬 느낌도 준다. 세잔이 사과, 오렌지, 꽃병, 식탁보 등의 물체를 구, 원통, 원뿔 같은 기하학적 형태를 염두에 두고 충실하게 그리면서 공간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 안에서 이상하게 왜곡된 모습들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꽃병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고, 꽃병 왼쪽의 오렌지를 담은 접시는 꽃병이나 식탁보와 관계에서 볼 때 홀로 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밑에 사과를 담은 접시는 가파르게 세워져 금방이라도 사과들이 굴러떨어질 것만 같다. 식탁보 밑 왼쪽 테이블 면이 반대편의 오른쪽 테이블 면과 높이가 맞지 않아 마치 두 개의 테이블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점들은 모두 종전의 원근법적 그림의 규칙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세잔은 원근법적 그림처럼 어떤 하나의 대상에 중심을 두고 다른 대상들을 통일시켜 나타내지 않았다. 대신 각각의 물체를 충실하게 묘사해서 하나의 물체가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전체적으로 꽉 찬 느낌을 주게 했다. 원근법이 한쪽 눈을 감고 고정시킨 시점과 시선을 중심으로 통일성을 나타내는 방법이라면, 세잔의 방법은 물체들 각각에 중심을 두면서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곧 추석 연휴가 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예전 같은 만남은 많지 않을 듯하다. 세잔 그림을 떠올리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주변을 두루두루 살피고, 빨갛게 익은 사과나 오렌지처럼 풍성한 마음이었으면 싶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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