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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사살 예상 못해”… 생존 포착 후 6시간 동안 대처 미흡

입력 : 2020-09-25 06:00:00 수정 : 2020-09-25 08: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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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만 본 군 당국에 비판 고조
사태 알고도 이렇다 할 대응책 없어

서욱 장관 “9·19 군사합의정신 위배”
靑, 초기엔 “9·19 위반 아니다” 판단
안일 논란에 “합의 정신 훼손은 맞아”
피격 사망 실종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뉴시스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 어업지도선에 탑승했다가 지난 21일 실종된 공무원 A씨가 22일 북한군에 피격·사망했다는 국방부의 24일 발표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비무장 민간인인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졌지만 군 당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사건 공개 시점도 늦었다는 비판이 높다.

◆초동대처 미흡… “5, 6시간 살릴 수 없었나”

군 당국에 따르면 A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북한 황해남도 등산곶 인근 해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군 당국이 포착한 시점은 22일 오후 3시30분이다. 북한군이 A씨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면서 발생한 불꽃이 포착된 것은 오후 10시11분쯤이다. A씨가 6시간 이상 북방한계선(NLL) 북쪽 3∼4㎞ 해역에 있었는데도 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군은 실제로 당시 A씨를 구조하기 위한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못했다. 군은 북한군이 A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울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고, NLL 북쪽 해역에서 사건이 발생해 군사작전을 진행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우리 국민을 몇 시간 뒤 사살할 거라 판단했다면 가만 있지 않았다. 예상치 못하게 일어났다”며 “북한 지역에 대해선 즉각 대응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연평도 인근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서욱 국방부 장관도 이날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실종)신고를 접수하자마자 탐색 전력을 동원해 찾는 노력을 했다”며 “(해당 공무원이) 북한에서 구조돼 이런저런 절차를 밟을 것으로 생각했었다”고 해명했다. 군은 북한군이 A씨에게 사격하기 전까지는 인도주의적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동 대처 과정에서 군과 해경의 공조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정황도 나왔다. 군 당국이 A씨가 피살된 22일 밤부터 이날 오전 공식 발표를 할 때까지 그 사실을 해경에 통보하지 않았다. 이미 A씨 시신까지 불태워진 뒤에도 해경은 A씨 수색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국방부도 제대로 된 지시를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군 관계자는 “(국방)장관은 실종 당일(21일)부터 관련 사항을 알고 있었고, 다음 날 불빛이 보이는 상황도 (장관이)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와대에도 그 시간에 보고됐다. 장관에게 보고하면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도 (보고)됐다”고 덧붙였다. 군과 국방부, 청와대가 사고 대처에 미흡했다는 비판이 커지는 이유다.

심각한 정부 현안 점검회의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지난 22일 북한 황해남도 장산곶 해상에서 북한군 피격으로 사망한 가운데 최창원 국무조정실 1차장(왼쪽)과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늑장공개 논란… 군 “정보 분석 덜돼”, 청 “연설은 15일 녹화”

실종된 A씨가 북한군 총격을 받아 숨진 시점은 22일. 국방부가 언론에 A씨의 실종 사실과 북한 해역 출현 정황을 알린 것은 23일 오후다. 이날 밤부터 A씨가 사망했다는 관측이 잇따랐지만, 국방부는 “관련 첩보를 정밀분석 중”이라며 침묵을 지키다가 24일 오전에서야 A씨 피격 사실을 공개했다. 사건을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군은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군 관계자는 “10개의 정보가 들어오면 그걸 다 분석해야 한다. 마지막 남은 1개의 정보 분석 결과에 따라 나머지 정보에 대한 가치 판단 등이 모두 뒤집어질 수 있다. 끝까지 분석해서 결과를 종합해 발표하다보니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서 장관도 “사실 여부를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며 “유엔 연설과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23일 새벽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에 정전협정을 제안한 것과 관련해 “해당 연설은 15일 녹화해 18일에 유엔에 이미 발송된 것”이라며 “정보의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 연설을 수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종전선언과 관련해 “남북관계는 지속되고 앞으로도 견지돼야 하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군사합의 위반 논란… 서 장관 “위반” vs 靑 “위반 아냐” 했다가 “합의 정신 훼손”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A씨는 어업지도선에서 바다로 뛰어든 후 북한 선박에 발견됐다가 북한군에 의해 사망할 때까지 30여시간 동안 군 감시장비에 포착되지 않았다. 해경과 해군 함정, 해양수산부 등 선박 20척과 항공기 2대가 수색에 투입됐지만 A씨를 찾지 못했다. 서북도서 일대에 운용 중인 신호정보(SIGINT) 수집체계가 아니었다면 사건의 전모는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서 장관은 “우리 감시장비의 능력으로는 (사람을 포착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연평도 인근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9·19 군사합의 위반 여부도 쟁점이다. A씨가 총격을 받고 사망한 장소는 9·19 군사합의에 명시된 해상 완충구역으로 적대행위가 금지돼 있다. 서 장관은 “9·19군사합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는 우리 민간인이 사살됐는데도 “이 수역은 완충구역으로 돼있다. 9·19 군사합의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고위관계자는 “9·19군사합의는 해상 완충구역에서 해상 훈련 사격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라며 “그런 부분 하나하나에 대한 위반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체적으로 남북 간 적대행위나 앞으로 군사적 신뢰 구축에 장애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이런 입장이 안일하다는 논란이 일자 “접경지역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9·19 군사합의의 정신을 훼손한 것은 맞다”고 한발짝 물러섰다.

 

◆ 북한군 방호복 차림… “방역 위해 과잉 대응”

 

군 당국은 24일 실종 공무원 A씨가 지난 22일 북한군 단속정에 의해 피격됐고 시신은 곧바로 해상에서 불태워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입에 담기 힘든 끔찍한 만행을 가한 배경에 의문이 일고 있다.

 

북한이 최근 코로나19 유입 차단을 위해 중국과의 국경은 물론 해상 경계를 강화하면서 불과 6시간 만에 민간인 사살을 감행하는 ‘과잉 대응’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군 단속정은 구명조끼를 착용한 채 기진맥진한 A씨에게 총을 쐈고,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한 북한군이 시신에 다가가 기름을 붓고는 해상에서 바로 불태웠다.

 

통상 북한은 남한 주민의 월북 사실을 확인하면 신원과 배경을 조사한 후 송환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현장 확인 절차를 거치고는 이례적으로 즉석에서 사살 후 시신을 태웠다.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어업지도선에 타고 있다가 실종된 공무원이 지난 22일 북측 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사진은 북한군이 사격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배경으로 북한 내부의 강화된 코로나19 방역 지침 때문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군은 시신을 불태울 당시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한 것에 주목했다. 군 관계자는 이날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무조건적 사격이 이뤄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이날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북한이 코로나19에 대해 절치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 방역 차원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10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화상토론회에서 북한이 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중국 접경에 1∼2㎞의 완충지대를 추가로 설정해 특수부대(SOF)를 배치했고 이들에게 (불법 월경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전했다. 사실상 밀수와 탈북이 불가능할 정도로 국경 감시를 강화하며 코로나19 방역에 신경을 쓰는 만큼 북한 해상에 접근하는 민간인 사살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지난 7월에는 탈북민이 군사분계선(MDL)을 뚫고 월북한 사건을 계기로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비상체제로 전환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코로나19 ‘청정구역’임을 과시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감염병 확산 수위가 매우 높은 수준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대목이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탈북민의 월북과 관련해 접경지역 경계 실패에 대한 문책 가능성을 거론했다. 김 위원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관련 부대에 대한 집중 조사가 이뤄지고 엄중한 처벌 적용을 논의한 만큼 이후 접경지역 군부대의 경계 태세가 더욱 강화됐을 것으로 보인다.

 

박수찬·박병진 기자, 인천=강승훈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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