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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北… 해명·사과 없을 땐 남북관계 최악 상황 우려

입력 : 2020-09-25 06:00:00 수정 : 2020-09-24 22: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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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 월북’ 때와 달리 침묵 지켜
북한 매체도 아무런 반응 없어
국민들 반북감정 고조 불 보듯
‘민간인 사살’ 남북당국 충돌 땐
박왕자 사건처럼 출구 없을 듯
무궁화 10호 선미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북한군의 총을 맞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24일 조사에 나선 인천해양경찰서가 공무원이 탑승했던 무궁화 10호의 선미 사진을 공개했다. 인천해양경찰서 제공

북한이 지난 22일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 A(47)씨를 피격하고 시신을 불태운 사건에 대해 아직껏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정부가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은 남북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침묵하는 북… 남북관계 악영향 우려

24일 통일부는 이번 피격사건과 관련해 북측에서 연락을 받은 것도 없고 연락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6월 북한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남북한 간 연락선을 차단했다. 이후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폭파하면서 통일부 차원에서 북측과 연락할 채널은 모두 끊겼다. 북한 매체도 이번 사건을 이날까지 언급하지 않은 채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지난 7월 탈북민 김모씨의 ‘헤엄 월북’ 사건 때와 대조적이다. 당시 북한은 탈북민의 재입북 사실을 매체를 통해 공개하면서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된다며 국가비상방역체계를 높이고 개성시를 봉쇄하는 등 대대적인 조치를 취했다.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연평도 인근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뉴스1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당시에는 북한이 코로나19 등과 관련해 남측에 큰소리치고 불만을 표시할 수 있는 명분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국제사회 규범이나 도덕적으로 명분이 취약하다”며 “북한이 내부적으로 보고하고 대응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향후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하거나 적절한 해명과 사과를 내놓지 않는다면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북한이 코로나19로 국경을 봉쇄하는 상황은 알려져 있지만 민간인을 사살하고 불에 태운 잔인한 대응을 한 것과 관련해 국민의 반북 감정도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건은 정부의 남북교류·협력 노력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향후 정부의 대북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코로나19와 태풍 피해 지원 등을 제안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영상 기조연설에서 국제사회에 한반도 종전선언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75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홍 실장은 “북한이 잘못을 시인하고 적절하고 설득력 있는 행동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 정부의 여러 행동 자체가 힘들어진다”며 “당분간은 남북관계가 굉장히 경색된 상태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고 힘겨루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왕자씨 사건처럼 출구 못 찾을 수도

북한이 그동안 남북의 관례에 따라 월북한 민간인의 신변 처리를 인도주의적으로 처리한 사례는 많다. 북한은 지난 2017년 10월 북한 수역을 넘어가 조업하던 남측 어선을 나포해 선원 7명을 조사한 후 다음 달 선박과 함께 돌려보냈다. 2014년에도 밀입북한 김모씨를 조사 후 남쪽에 송환했고 2013년에는 월북했던 한국민 6명을 단체로 송환했다.

이번 사안도 관례에 따르면 북한이 A씨의 조사를 거쳐 우리 측과의 송환 협의에 나섰어야 했다. 하지만 남한 민간인을 일방적으로 사살했다는 점에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과 비슷하게 출구 없는 상황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시 금강산 관광 중이던 박씨는 산책을 하다가 북측 초병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박씨가 관광객 통제구역을 지나 군 경계지역에 진입하자 초병이 정지를 요구했고 박씨가 그에 불응한 채 도주하자 발포했다”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진상 규명 및 사과,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요구했지만 북한이 응하지 않았다. 이후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되는 등 남북관계 경색이 장기간 이어졌다.

특히 박씨 피살사건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씨의 사망 사실을 보고 받고도 과거 남북 합의 사항에 대한 이행 방안을 협의할 용의가 있다며 남북 간 전면적인 대화를 제의한 국회 개원 연설을 강행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2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연평도 공무원 피격 사망 관련 문재인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첩보 10시간 만에 文대통령에 첫 대면 보고

 

청와대는 24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사망 사건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보고받은 시각과 지시한 사항 등을 상세히 공개했다. 그러면서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해 여론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긴장된 분위기였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오후 6시36분 ‘서해어업관리단 직원이 해상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해 수색에 들어갔다. 북한이 실종자를 해상에서 발견했다’는 첩보를 서면을 통해 처음으로 보고받았다.

 

같은 날 오후 10시30분 군은 ‘북한이 월북의사를 밝힌 실종자를 사살 후 시신을 불에 태웠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때부터 청와대와 정부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23일 새벽 1시∼2시30분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당시 회의에는 청와대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노영민 비서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서욱 국방부 장관이 참석했다. 회의 끝에 첩보의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자 서 실장과 노 실장이 23일 오전 8시30분 문 대통령에게 첫 대면보고를 했다. 군이 피격 첩보를 입수한 지 10시간 만에야 문 대통령이 얼굴을 맞대고 상황을 보고받은 것이다.

 

야권은 23일 새벽 1시26분부터 16분간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이 송출되는 시점에 우리 국민이 사망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청와대 대응의 적절성에 의구심을 표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사건 관련 첫 대면보고를 받은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진급 및 보직신고식에서 신임 군 수뇌부와 함께 “평화의 시기는 일직선이 아니다”라며 ‘평화’를 강조했다. 야권에서 “북한군 만행을 안 뒤에도 문 대통령이 평화만 주문했다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반발이 나올 만하다. 청와대는 그러나 23일 새벽에는 관계장관 회의를 통해 첩보의 신빙성을 분석하는 단계였다고 설명했다. 사실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4일 두 번째 대면보고를 받았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8시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해 국방부의 분석결과를 통보받고 이후 오전 9시 서 실장과 노 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분석 결과를 대면으로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이때 ‘첩보의 신빙성이 높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소집해서 정부 입장을 정리하고,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을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도 북한을 성토하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24일 국방부 청사에서 연평도 인근 해상 실종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국방부는 이날 북한이 실종된 공무원을 북측 해상에서 사격 후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며 강력히 규탄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이날 발표한 ‘국방부 입장문’에서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만행에 따른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도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코로나 방역조치를 위해 무단접근 인원에 무조건적인 사격을 가하는 반인륜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북한군이 비무장한 우리 국민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운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로 강력히 규탄한다”며 “북한군의 이러한 행위는 남북 간 화해와 평화를 위한 우리의 일관된 인내와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리 국민의 열망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엄중히 항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통일부는 북한이 이번 사건이 누구에 의해 자행된 것인지 명명백백히 밝히고 재발 방지 등의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통일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북측과 연락할 수단이 지금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밧줄 속의 슬리퍼 북한군에게 사살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무궁화 10호에서 신었던 슬리퍼. 인천해양경찰서 제공

◆40세 늦깎이 임용… 불법조업 단속업무

 

연평도 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A(47)씨는 해양수산서기 8급 공무원으로 2012년부터 전남 목포 소재 서해어업관리단에서 일했다. 어선의 월선·나포 예방이나 불법 어업 지도 업무를 해온 그는 평소 동료들과 관계가 원만하고 평판도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해양수산부 등 관계기관 취재를 종합하면 A씨가 탔던 499t의 무궁화10호는 선장을 포함해 16명의 직원을 태우고 25일 입항하는 9박10일 일정으로 지난 16일 목포를 출항했다. A씨는 같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무궁화13호에 근무하다 지난 14일 무궁화10호로 발령이 났다. 서해어업관리단의 업무에는 연평도 어장도 포함돼 1년에도 수차례 목포와 연평도를 오갔다고 한다. 수산고등학교를 나온 것으로 알려진 A씨는 민간에서 항해 관련 업무를 하다 2012년 40세에 늦깎이 공무원이 됐다. 해수부는 이날 온라인 브리핑에서 A씨에 대해 “직접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들리는 얘기로는 직원들끼리 큰 무리 없이 잘 지냈고 근무도 잘해서 평판이 괜찮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수부는 A씨가 평소 동료들에게 월북 의사를 밝힌 적이 있는지와 관련해 “그런 얘기를 나눴던 사람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A씨의 가정사와 채무 등에 대해선 “확인할 방법도 없고, 개인 신상에 관한 것이라 아는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A씨의 형 B씨는 이날 한 언론과 통화에서 “동생은 절대 월북을 하지 않았고 사고에 의한 사망”이라고 주장하면서 “제가 증거자료로 (월북설을) 반박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동생이 실종된 해상은)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조류가 상당히 세고 하루 4번씩 물때가 바뀐다”며 “헤엄을 쳐서 갔다니(월북했다니) 어떻게 이런 보도가 나가는지 미치겠다”고 참담함을 표시했다.

 

한편, 섬 주변 상황에 밝은 일부 연평도 어민은 A씨의 이동 경로를 두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연평도 주민 황모(60)씨는 “대연평도보다 남쪽에 위치한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사람이 어떻게 북한(해상)까지 갈 수 있었는지 정말 의아하다”고 말했다. 이어 “연평도 인근 바다의 흐름을 보면 섬을 기점으로 물길이 도는데 아무리 (A씨가) 어업지도선에서 일하며 바다 상황에 밝았더라도 그렇게 먼 거리를 이동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른 50대 어민도 “첨단 장비를 착용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구명조끼와 부유물만 가지고 40㎞에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건 수영 선수라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백소용·박현준·박수찬 기자, 세종·목포·인천=박영준·한승하·강승훈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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