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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鄕約). 권선징악을 내건 자치 규약이다. 주자학이 번성한 송나라에서 시작됐다. 섬서성 남전현에 살던 여씨 4형제가 만든 ‘여씨향약’이 시초다. 큰 반향을 불렀다. 이후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조선 고종 때 의정부에서 올린 글, “태조 고황제께서 함흥에 머무르실 때 향헌목(鄕憲目) 41조를 직접 지으셨고… 헌목을 500년 동안 지켜왔으니 더욱 각별하다.”

태조 고황제는 이성계다. 향약은 이미 조선 초에 들어왔다. 전국적으로 실시된 것은 중종 때다. 개혁적인 유학자 조광조가 주도했다. 덕업상권(德業相勸)·과실상규(過失相規)·예속상교(禮俗相交)·환난상휼(患難相恤). 향약의 4대 강목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과실상규다. 큰 잘못을 저지른 자는 고을에서 자체적으로 벌했다. 어떤 벌을 내렸을까. 대개 멍석말이를 하고 추방했다. 멍석말이를 당하면 골병이 들고, 쫓겨나면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는 떠돌이 신세가 된다.

왜 추방했을까. 선량한 이웃이 범죄자 눈치를 보며 두려워하고, ‘멀쩡한 범죄자’로 인해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범죄자가 두려움을 갖는 사회. 그것이 정상이다.

지금은? 범죄자가 활개 치고 피해자는 눈치를 본다. 조두순. 2008년 어린 초등학생을 납치해 잔혹한 성폭행을 한 범죄자다. 감옥살이 12년. 오는 12월 출소한다. 이런 말을 했다. “출소 후 살던 안산으로 돌아가겠다”고. 안산에는 벌써 ‘조두순 스트레스’가 번진다. “내 딸이 당할까, 조두순을 만날까 두렵다.” 피해자 가족은 어떨까. 피해자 아버지의 말, “피해자가 집 옆에 와서 살겠다니… 영구 격리를 약속했는데 12년 동안 뭘 했나.” 그는 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안산 시민을 달래는 것은 법이 아니라 AFC 이종격투기 명현만 선수다. 수개월 전 “조두순이 내 눈에 띄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왜 피해자가 벌벌 떨며 도망쳐야 할까. 법이 제구실을 못 하기 때문이다. 이웃에 온 범죄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 아마 복수심을 품고 ‘사형’(私刑)을 준비하는 피해자 정도일 게다. 향약의 폐해를 비판하는가. 지금의 법은 어떤가.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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