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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곳에 더 두텁게?… ‘누더기’ 된 추경 어쩌나

입력 : 2020-09-23 06:00:00 수정 : 2020-09-23 07: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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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비 지출 많은 중장년층 제외… 맞춤형 지원과는 거리
선별 → 전국민 → 선별… 혼란 부추겨
돌봄비 지원도 초등생 이하서 확대
고등학생만 빠져 되레 차별 논란
“사회 통념상 지원 불가” 밝혔던
유흥주점·콜라텍도 200만원 지급
추석 전 지급 위해 野의견 대폭 수용
합의문 발표하는 여야 여야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2020년도 제4차 추가경정예산안’ 합의사항 발표에서 합의문에 서명한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국회 예결위원장, 김태년 원내대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예산결산위원회 간사 추경호 의원. 하상윤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정부의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그야말로 ‘누더기’가 됐다.

 

4차 추경의 기본 원칙인 ‘선별적·맞춤형 지원’ 방침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은 ‘13세 이상 통신비 2만원 지원안’은 16∼34세, 만 65세 이상으로 지원 대상이 조정됐다. 그러나 통신비 지출이 많은 30∼50대 중장년층에 대해 지원 방침을 취소하면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초등학생까지 지급하기로 했던 특별돌봄비는 중학생까지 확대해 논란이 인다. 애초 정부가 사회 통념상 지원이 불가하다고 밝혔던 유흥주점과 콜라텍에도 ‘새희망자금’ 200만원이 지급된다. 정부와 정치권이 ‘적자 국채’를 발행해가며 편성하는 추경 사업을 일정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각 당의 이해관계와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2일 여야의 추경 통과는 정부·여당이 목표한 ‘추석 전 지급’을 위해 야당과 이해단체의 의견을 대폭 수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추석 전 지급을 위해서는 이날 국회 본회의 통과가 절실했던 만큼 야당과 이해단체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신속한 처리’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야당을 중심으로 전액 삭감 요구가 이어진 통신비 2만원 지원은 애초 9200억원 수준에서 5200억원을 대폭 삭감하기로 했다. 13세 이상 전 국민 지원 기준을 16∼34세, 65세 이상으로 축소하기로 하면서다. 고교생과 대학생을 포함한 청년층과 고령층은 통신비를 지원하되, 이번 여야 합의에서 돌봄비 지원이 추가된 중학생(13∼15세)과 35∼64세 중장년층은 제외했다. 35세 이상 중장년층의 경우 상대적으로 수입이 고정돼 있어 통신비 지원에서 제외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비대면 업무 비중이 늘며 관련 비용이 증가한 근로자들에게 통신비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도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중장년층이 빠지면서 빛이 바랬다. 정부와 여당이 애초 선별 지원 방침에서 13세 이상 전 국민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등 지원 대상을 두고 갈팡질팡하면서 혼란을 부추긴 셈이다.

 

중학교 학령기 아동인 13∼15세에 비대면 학습지원금 15만원을 지급하는 사업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애초 미취학 아동 1인 기준으로 20만원의 돌봄쿠폰을 지원하던 것을 4차 추경안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구까지 확대키로 했다가 이번 여야 합의에서 중학생도 포함됐다. 코로나19 여파로 학교와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가중된 돌봄부담 완화가 목적이라면 고등학생은 왜 해당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고교까지 돌봄비 지원을 확대하기엔 기존의 돌봄 영역이 확장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고, 중학생의 경우 돌봄비를 15만원으로 차등을 두었다는 것이 여야 설명이지만 역시 선별·맞춤형 지원 방침과는 거리가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중학생 대상 돌봄비는 스쿨뱅킹 계좌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학부모들에게 안내할 것이다. 이후 계좌 정보 수집과 계좌 확인 등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추석 전 지급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매출액 규모나 감소 여부와 상관없이 일괄 200만원을 주는 집합금지업종 중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던 룸살롱 등 유흥주점과 콜라텍 등 무도장 운영업도 이번 합의문에 지원 대상으로 포함됐다. 정부는 애초 단란주점, 감성주점, 헌팅포차, 노래연습장, 실내 스탠딩 공연장, 실내집단운동(격렬한 GX류), 뷔페, PC방, 방문판매 등 직접판매홍보관(다단계가 아닌 경우), 10인 이상 학원까지 10개 시설만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단란주점은 되고, 유흥주점은 안 되느냐’는 지적이 일었다. 여야는 합의문에서 ‘정부 방역방침에 적극 협조한 집합금지업종’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나 ‘고무줄 잣대’라는 비판은 면할 수 없다.

22일 서울 동대문구 한 콜라텍의 출입문이 집합금지명령으로 굳게 닫혀 있다. 여야는 4차 추가경정예산안에서 유흥주점·콜라텍 등 정부 방역방침에 협조한 집합금지업종에 대해서도 소상공인 새희망자금 2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연합뉴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신비 지원 정책 자체가 경제적 효과도 없고 선별 지원 방침에도 어긋나는 사업이며 집합금지업종 중 일부 업종에 차등을 주는 것도 형평성에 맞지 않았다”면서 “경제 논리는 뒷전이고 정치 논리나 목소리가 큰 사람의 주장이 경제 정책에 반영된 결과”라고 꼬집었다.

사진=뉴시스

이날 통과된 추경안에는 돌봄 사각지대에서 화재로 중화상을 입은 인천 초등학생 형제 사건을 계기로 사각지대 위기 아동 보호 강화를 위한 상담시설 보강과 심리치료 인프라 확충 등에 47억원을 편성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법인택시 기사도 100만원… 퍼주기 논란

 

‘사업자’인 개인택시 기사뿐 아니라 ‘근로자’인 법인택시 기사도 100만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애초 정부는 “지위가 다르다”며 법인택시 기사에 대한 지원금 지급에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지만 22일 여야 합의 과정에서 뒤집혀 ‘원칙 없는 퍼주기’라는 논란이 예상된다.

사진=뉴스1

정부는 지난 10일 코로나19 재확산 피해계층 지원을 위한 4차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소상공인 새희망자금’을 통해 일반 업종에 100만원, 집합제한업종에 150만원, 집합금지업종에 2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영업을 하기 때문에 일종의 ‘자영업자’로 구분되는 개인택시 기사도 100만원을 지원받게 됐다. 같은 일을 하지만 회사에 소속해 있는 법인택시 기사는 근로자로 구분돼 새희망자금 지원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와 프리랜서 등을 대상으로 하는 ‘긴급고용안정지원금’ 대상자도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승객이 끊겨도 사납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피해와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같은 수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법인택시 기사와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이에 대한 정부의 반대 입장은 그동안 단호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법인택시 기사는 택시회사 소속 근로자로서 소상공인인 개인택시 기사와 지위가 다르므로 소상공인을 위한 새희망자금을 중복해서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4차 추경이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피해가 가장 많은 부분, 특히 사각지대에 계신 분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임금노동자의 경우 대상으로 삼을 수 없었다”며 “임금노동자인 법인택시 기사를 추가하게 되면,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외근 사원들과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1명 반대·9명 기권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2020년도 제4차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재석 282명 중 272명이 찬성하고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혼자서 반대했다. 정의당 심상정·강은미·류호정·이은주·장혜영·배진교 의원과 국민의힘 강기윤·윤한홍,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등 9명이 기권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여야가 합의를 통해 정부의 입장과 다른 결론을 내림에 따라 정부는 ‘더 필요한 곳에 더 두텁게’라는 원칙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법인택시 기사 약 10만명에게 100만원씩 지급하려면 1000억원이 든다.

 

세종=박영준·우상규 기자, 김승환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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