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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맨’된 성악가·공사판 뛰는 스태프… “관객 만날 날 올까요?” [심층기획-코로나 직격탄 맞은 예술계]

입력 : 2020-09-19 16:00:00 수정 : 2020-09-19 15: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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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2020년 보내는 공연계
올 8월 매출액 170억… 2019년비 37%↓
대학로 연극 배우들, 알바마저 끊겨
“일 구하러 다닐 차비조차 없어” 한숨

정부, 랜선 중계 등 지원 방안 마련
공연계 “근본적이고 장기적 대책 필요
극장 거리두기 일률 적용 재검토를”

“코로나 대책요? 프랑스처럼 예술인을 위한 실업보험제도가 있으면 좋을 텐데, 돈도 돈이지만 ‘당신들은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예술가인 만큼 우리가 보호해줘야 한다’는 공동체 합의와 인식이 가장 아쉽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다른 어느 분야보다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공연예술계 실태를 묻자 한 공연기획자는 “코로나19 때문에 예술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 던져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극장 문이 닫히면서 가난한 무대예술계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은 더 커졌지만 그보다도 힘든 건 “왜 극장 문을 열고 무대를 이어가야 하느냐”에 대한 사회 일부의 차가운 시선이 더 가슴 아프다는 토로다. 완치가 힘든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는 ‘코로나 일상’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배우와 관객이 시선을 마주쳐야 하는 대면 공연이 본질인 무대예술의 앞날이 어두워졌다는 얘기다.

코로나19로 공연예술계가 겪는 어려움은 지난달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강화되면서 임계점을 넘어섰다. ‘몇개월만 참으면 다시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면서 공연계는 중단된 작품의 공연을 재개하거나 차기작을 준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이 많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 8월 공연 매출액은 169억9355만원(14일 기준)으로 전년 동기(270억7148만원) 대비 37.2% 급감했다. 연극·뮤지컬·클래식·오페라·무용·국악 등 국내 모든 공연 입장권 판매수익이 1년 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이는 한 달 전(171억6083만원)과 비교해도 12억원 이상 줄어든 수치다.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는 이들은 연극배우들이다. 가뜩이나 ‘대학로 배우 80%는 알바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실태조사가 나왔던 이들이다. 코로나 일상에 무대가 사라지고 경기가 나빠지면서 부업 전선에서도 실업 상태에 내몰리고 있다. 주연급 배우 A씨는 “공연이 잡혔다가 취소되면서 예정된 페이를 다 받을 수 없게 되거나 아예 못 받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사실 배우가 프리랜서가 많다 보니 코로나19가 아니어도 어려운데 수입이 더 줄었다. 조연급은 저보다도 형편이 어렵고 전망이 안 좋으니 배우로서 가지고 있던 비전과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공연예술계가 처한 상황은 일시적 위축이 아닌 생태계 존립을 걱정해야 할 수준이다. 극단을 운영하는 B 연출가는 “공연계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초토화될 지경이다. 배우들은 물론, 무대 스태프, 조명 스태프 등 전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공연계 전 구성원이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설령 이 위기가 어떻게 지나가더라도 그 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아는 후배는 유능한 조명디자이너인데 가장이다 보니 지금 상황을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공사판 일용직으로 돈을 벌고 있어요. 너무 가슴 아프죠. 배우들이 얼마나 어려우냐고요? 일을 구하러 다닐 차비조차 없을 정도랍니다.”

클래식계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한 문화정책 당국자는 “성악가가 ‘쿠팡맨’으로 일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공연계 위기에 정부는 나름대로 발 빠르게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작품 제작 지원은 물론 현장 목소리를 듣고 공연계 종사자 직접지원 방안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공연계는 보다 근본적이며 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특히 비대면 시대에 공연을 지속하기 위한 방안으로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는 ‘랜선중계’방식의 무대예술 온라인 콘텐츠화 활성화 정책에 무대예술인들은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B 연출가는 “이미 공연을 온라인으로 송출할 수 있는 공간은 많고 장비는 충분한데 정부 사업이 온라인 스튜디오 신설 등 보여주기에 좋은 쪽으로 집중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며 “지금은 신작 구상은커녕 예정했던 작품을 무대에 올릴 엄두도 못 내는 지경인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극장에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최선인지 재검토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무대예술의 영상화가 비대면 관람을 위한 일시적 방안인 것은 분명하나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는 만큼 다시 어떤 형식으로든지 관객에게 무대를 직접 보여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공연계는 띄어앉기 등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률적으로 극장에 적용하는 것이 꼭 필요한지 철저히 검토할 때가 됐다는 분위기다. 다른 다중이용시설과 달리 정숙한 상태에서 철저히 마스크를 쓰고 모두가 무대를 바라보는 극장 환경의 방역 위험도를 과학적으로 평가해서 적절한 수준의 방역 조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A배우는 “많은 연극이 영상중계로 공연을 대체하거나 이를 고민하는데 잠시 대안은 될 수 있어도 길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연극은 대면을 전제로 한 예술인데 대면 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오니 배우들이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라고 혼란스러워한다. 매체예술과 무대예술은 확실히 종류가 다르고 ‘나는 무대예술이 좋아’서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런 정체성이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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