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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정신 빛난 조각가 최충웅의 작품세계

입력 : 2020-09-10 20:09:07 수정 : 2020-09-10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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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기 맞아 ‘우리 눈으로 조각하다’전
스티로폼 이용 재료혁신 작품 선보여
최충웅 작가 작품 전시중인 김종영 미술관 전경.

우리 정신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는 예술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우리말로 처음 교육받은 해방둥이로 태어나 4·19혁명에 앞장선 뒤, 서구에서 밀려온 현대미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에 분노했던 조각가가 있다. 지난해 작고한 조각가 최충웅이다.

김종영미술관은 올해 초대전으로 최충웅 화백 1주기를 기리는 전시 ‘연우(然愚) 최충웅, 우리 눈으로 조각하다’를 열고 있다.

최충웅은 1939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해방과 함께 우리 말과 글로 교육받은 ‘교육 해방둥이’다.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때 동족상잔의 트라우마를 겪고, 전후 복구가 한창이던 195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 입학해 대학 재학 중 4·19혁명에 나섰다. 이후 격랑의 시대를 살며 황무지인 한국미술을 개척했다. 김종영미술관의 최종태 명예관장은 최충웅이 갖고 있던 시대적 책임감이 그의 평생 작품활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최 명예관장은 이번 전시에 바치는 글에서 “정의의 광장을 달렸던 최충웅을 잊을 수 없다. 그 정신으로 추호의 양보 없이 살아간 최충웅이라는 한 인간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최충웅의 예술은 거기에서 나왔다”고 회고했다. 그점이 바로 최충웅 작품이 순수 추상조각임에도, 조형의 미(美) 외에 무언가 깊은 뜻을 갖고 있는 이유라면서 “더 높은 세계에 대한 갈증, 우리가 다 같이 희구해 마지않는 이상의 세계, 그런 꿈이 형태 안에 있다”고 했다.

생전 시류에 영합하지 않으려고 작품 발표를 극도로 절제했다는 최충웅 작품 45점이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다. 조각 재료로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스티로폼을 이용해 재료 혁신을 이룬 작품들이다. ‘전설’ 연작을 보면 재료에는 실험정신을 빛내면서도 민족성을 추구했던 그의 정신이 담겨 있다. 서구 예술이 유행해도 그는 꿋꿋이 전국을 돌며 각 마을에서 민초를 지키던 장승을 조사했다. 스티로폼으로 먼저 작품을 만들고 스티로폼 작품으로 거푸집을 만든 후 청동 주물을 떴다. 스티로폼이 녹아 예상하지 못한 형태를 만들어 우연적 요소가 가미됐다. 그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나 스스로 작품에 대한 만족은 충분하지가 않아. 단 하나 자신 있는 것은 거짓 없는 작품을 했다는 거야.”

전시장 곳곳에서는 유독 가족에 대한 사랑이 배어나 작가의 인간미가 더해진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긴 투병생활 중 병상에서 남긴 말들이 따뜻하다. 추상조각 외에 ‘여인상’을 만든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물 만드는 작가들이 가족을 자주 만들더라고. 명색이 남편이 조각가인데 집사람이 서운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좋아하는 집사람을 만들기 시작했지.” 전시장에서 조우한 최충웅 셋째 딸은 “아버지 회고전을 열게 돼 드디어 숙제를 마친 느낌”이라고 말했다. 29일까지.

 

김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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