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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에서 즐기는 아름답고 장엄한 낙조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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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06 03:00:00 수정 : 2020-09-05 14: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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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붉은 빛…눈부신 태양보다 더 아름답구나/보문사 마애불 가는 길 가파른 계단 끝없어/힘들게 정상 오르니 서해바다 물들이는 노을 장엄 소원 하나 빌어본다/스님들 범종 공연 청아한 소리 마음 울려

 

석모도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노을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흘린 땀은 어느새 식었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자 기승을 부리던 늦은 폭염도 꼬리를 빼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귓불을 간지럽힌다. 계단을 따라 걸린 알록달록 연등에는 저마다의 소원이 걸렸고 낙가산 앞 서해바다가 붉은 노을로 물들기 시작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아버지처럼 환하게 웃던 얼굴은 지는 해를 따라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더니 이제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뒤에서 안아준다. 일몰 명소인 강화 석모도. 낙가산 꼭대기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에서 맞는 낙조는 아름답고 또 장엄하다.

 

#마음의 때를 씻는 범종의 깊은 울림

 

석모도에 들어가려면 배를 타야 했다. 외포항에서 끈질기게 쫓아오는 갈매기떼에게 새우깡을 던지며 한 10분 남짓 노닥거리다보면 석모도다. 짧은 거리지만 배를 타야 했기에 석모도는 늘 멀어 보였고 강화 여행지 중 선뜻 선택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주말에 집에만 있는 시간이 늘자 꽤 답답했나보다. 아내가 가까운 강화 석모도에 가 바람이나 쐬자고 재촉한다. 배 타고 언제 석모도까지 다녀오느냐며 싫은 척을 하자 타박이 쏟아진다. 석모도가 다리로 연결된 지가 언제인데 그것도 모르냐고. 석모도에 다리가 놓였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며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2017년 6월에 석모대교가 개통됐다. 3년이 넘었는데 모르고 있었다니 뒤처지는 정보력에 낯이 뜨겁다.

 

석모도 민머루 해변
석모도 민머루 해변 조형물

드립 커피를 내려 보온병에 가득 담아 집을 나선다. 강화대교와 석모대교를 거쳐 석모도의 유일한 해수욕장 민머루해변으로 달려간다. 아뿔싸. 모래사장은 출입을 통제하는 붉은 테이프로 봉쇄돼 들어갈 수 없다. 코로나19가 수도권에 확산된 탓이다. 그래도 여행자들은 아쉬운 마음에 떠나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다. 해변 전체가 통제된 것은 아니어서 일몰은 볼 수 있겠다.

 

석모도 수목원 입구

저녁 무렵 다시 찾기로 하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석모도 수목원으로 향한다. 20분을 달려 도착한 수목원에는 사람이 하나 없다. 코로나19로 수목원은 폐쇄 중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바람이 잘 통하는 수목원도 사람이 많이 몰리면 감염 우려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다시 통제된 것 같다. 입구에서 사진 한장 찍어 아쉬움을 달래고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진정돼 다시 문이 열리기를 빌어본다. 이제 강화의 대표 여행지 보문사로 다시 길을 잡는다. 

 

석모도 보문사 오르는 길

보문사는 아직 여행자들에게 길을 내어준다. 요즘 같은 폭염에는 생수 한 병이 필요하니 반드시 챙겨서 출발해야한다. 이유가 있다. 보문사에 닿는 오르막이 엄청 가파르다. 또 보문사에서 마애석불좌상을 만나려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 등산을 각오해야 한다. ‘낙가산 보문사’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가파른 경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힘들지만은 않다. 사랑하는 연인처럼 엇갈리며 서로를 품는 두 그루 소나무를 시작으로 파란 여름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간 소나무들이 산책로를 멋지게 꾸미고 있다.

 

보문사 오백나한
보문사 오백나한

쉬엄쉬엄 15분 정도 오르면 입구에서 오백나한이 여행자를 맞는다.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달라 개성을 드러내는 오백나한이 도열한 모습이 장관이다.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 천인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1000명이 앉을 정도로 넓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진신사리가 봉안된 33관음보탑을 중앙에 두고 앉은 오백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다.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해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아라한에 이른 이들을 말한다.

 

보문사 오백나한

심지어 황금색 똥 덩어리를 가슴 안고서도 무표정인 나한도 있다. 무슨 뜻을 담았는지 매우 궁금한데 가만 보니 나한마다 황금색 동물, 실패 등 다양한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있다. 아마도 인간이 쉽게 떨치지 못하는 속세의 연결 고리들인가 보다. 보문사는 635년(선덕여왕 4)에 회정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649년(진덕여왕 3)에 어부들이 바다에서 불상·나한 등 22구를 건져내 천연석굴에 봉안했다고 한다. 지금도 보문사 석실에는 석가모니불, 미륵보살,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보문사 법고
보문사 범종 타종

대웅보전 앞마당 법음루의 커다란 북(법고)을 사이에 두고 스님 두 분이 자세를 잡자 여행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오후 6시가 되자 스님들은 법고, 운판, 목어를 번갈아 두드리기 시작한다. 법고는 주로 아침저녁 예불과 법의식 때 친다.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하도록 돕기 위해 마치 대군이 북을 치며 진군해 적을 쳐부수는 것처럼 법고를 두드린다고 한다. 눈을 감고 들으니 심장을 두드리는 듯 웅장하고 강렬하다. 한 편의 멋진 공연을 공짜로 감상했다. 법음루 공연은 왼쪽 범종각으로 이어진다. 스님이 범종을 치자 장엄하고 청명한 소리가 오래 울려 퍼진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해지며 힐링되는 기분이다.

 

보문사 뜰에서 본 석모도 바다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오르는 길

#낙가산 노을 vs 민머루 해변 낙조

 

오백나한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와불전에 거대한 부처가 오른손으로 머리를 베고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있다. 열반하는 부처의 모습으로 길이 13.5m, 높이는 2m에 달하며 천인대 바위에 1980∼2009년에 걸쳐 조성됐다고 한다. 볼거리가 많은 곳이지만 해가 지기 전에 눈썹바위 밑에 자리 잡은 마애석불좌상을 찾아 낙가산 정상으로 간다.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가파른 계단이 끊임없이 이어지니 자신의 체력이 저절로 점검된다. 땀으로 샤워하면서 계단을 오르다 허벅지 고통으로 포기하고 싶을 때쯤 마애석불좌상이 나타난다. 둥근 빛에 둘러싸여 커다란 보관을 쓴 관음보살이 연꽃에 앉은 모습이 이색적이다.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노을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노을

이곳에 오르면 석모도의 아름다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니 오르는 수고를 충분히 보상한다. 해수관음의 성지 보문사 위로 서서히 해가 떨어진다. 관음보살 덕분인지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은 장엄하다.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암과 함께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기도를 잘 들어준다니 노을을 보며 작은 소원 하나 빌어본다.

 

석무도 한가라지카페
석모도 민머루 해변 노을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 다시 민머루 해변으로 달린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바다와 하늘은 핑크와 블루가 뒤섞이며 아름다운 파스텔톤으로 변해간다. 서해안 3대 일몰명소 답다. 코로나19로 해변이 통제된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민머루해변 일몰을 즐길 수 있다. 보문사 인근 한가라지 카페도 강추다. 온통 노란색으로 칠한 테라스에 서면 브라질이나 쿠바의 카페에 온 듯하다. 석모도 앞바다로 떨어지는 노을은 덤으로 즐길 수 있다. 

 

강화=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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