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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무너진 일상… 위로·긍정의 에너지를 얻다

입력 : 2020-08-13 19:56:09 수정 : 2020-08-13 19: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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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 ‘새로운 연대’ 전
코로나 주제 사진·영상·설치작품 등 선봬
대구지역 예술가 100명의 릴레이 드로잉
힘들고 지친 시민 모두에게 희망 메시지
김성수 ‘사람을 만나다’

예술가는 가장 예민한 시대의 목격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가장 치열한 사투를 벌였던 대구의 ‘목격자’들은 이 시대를 ‘새로운 연대의 시대’로 정의했다. 대구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새로운 연대(뉴코뮤니온·New Communion)’ 전시에서다.

13일 기준 6946명으로 누적확진자 국내 최다 지역. 국내 최초, 최악의 집단감염 발생지. 대구는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가장 상처받았던 곳이자 바이러스와의 사투 최전선에 선 곳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3일 찾은 대구미술관에서는 코로나19와 지난 반년을 기록하며 상처를 보듬고 위기 극복을 응원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었다. 전시된 작품은 대구 출신이거나 대구에서 활동 중인 작가 12명의 신작들과 작가 100명의 희망드로잉프로젝트의 결과물 등 총 410여점에 달했다.

대구미술관 측은 코로나19 집단감염 발생 한 달 후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던 3월 초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치열한 시대의 기록을 전시로 남기자며 휴관으로 문이 굳게 닫힌 미술관 안에서 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새로운 연대’라는 전시 제목은 통상 연대로 번역되는 기존의 ‘솔리더리티(solidarity)’가 ‘결속’의 차원임을 전제하고, 이제는 결속을 넘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자연이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공존하고 교감해야 하는 새로운 연대의 시대가 열렸다는 의미를 담아 붙여졌다. ‘코뮨(commune)’의 어원처럼 ‘함께(com)’ ‘나눈다(mun)’는 차원의 연대다.

장용근 작가는 사진작품 ‘간호사’ 연작에서 대구동산병원 음압병실을 출입하는 의료진의 모습을 담았다. 작품은 그야말로 코로나19와 싸우는 시대의 초상 그 자체다. 뉴스나 신문 지상에서 수없이 접했던 의료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현장성과 묵직함이 전해진다.

장용근 ‘간호사’

오정향 작가의 설치작품은 ‘거리두기’ 속에서도 마음을 잇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듯하다. 오정향은 대학생이나 회사원, 육아 중인 아빠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그들이 지나온 코로나19와의 시간을 기록했다. 전시장에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나오는 이들 인터뷰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데, 모니터로부터 2미터 거리에 놓인 의자에 관람객이 다가가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앉으면 비로소 영상 속 인터뷰 음향이 켜지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마스크를 쓴 채로 대화하기 위해 더 귀 기울여야 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오정향 ‘완전히 새로운 일상’ 설치 전경

열감지기 화면 속 빨주노초파남보의 강렬한 원색으로 그려지는 우리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서로 다른 작품들을 비교 대조해 보는 재미도 크다.

정재범 작가는 그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열의 존재를 열감지기를 통해 가시화한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관람객들이 대형 열감지기 화면 속에서 직업도 이름도 생김새도 제거된 채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자신의 고유한 동작과 열기만으로 각자 개개인을 확인하게 한다. 생명력이 주는 묘한 희망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장용근 ‘37.5℃’

반면 장용근 작가는 거점병원 현장의 열감지기 화면을 담은 사진작품들을 선보인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현장에서 오직 열감으로만 표현된 익명의 사람들을 포착했다. 열감지기라는 기계만으로 인간을 구분해내는 비정하고 차가운 현장을 고스란히 전한 기록물로 다가온다.

이지영 ‘Space(스페이스)’

전시에서는 희망과 긍정에너지를 선사하려는 작가들의 작품들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지영 작가는 만개한 꽃들을 대형 사진작품 속에 생생하게 담았다. 꽃도 보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2020년 대구의 봄, 그 봄을 되찾아주려는 노력처럼 읽힌다.

5미터 높이의 한지에 그려진 대형 트로피 작품은 권세진 작가가 전쟁 같은 재난을 통과한 인간에게 선사하는 승리의 상징이다.

미국 뉴욕과 코네티컷에서 활동하는 황인숙 작가는 15년 만에 국내에서 선보인 이번 작품에서 끊임없이 확장되는 그물망 구조로 무한하게 증식될 것만 같은 긍정에너지를 표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고립이 우리 곁에 더 가까이 있어서일까, 거대한 그림책을 펼친 듯한 장미 작가의 작품들에 담긴 고독감과 섬세함은 유난히 진하게 느껴진다.

장미 ‘마음의 겨울은 어떻게 해야 끝날까요’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이 가장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희망 드로잉 프로젝트’는 전시의 백미다. 대구의 예술가 100명이 릴레이 드로잉을 했고, 그 결과물들이 마치 책장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처럼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웠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감사하다’는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진 한 작품이 도드라진다. 이 ‘빽빽한 응원’이 역설적으로 대구가 얼마나 심각한 고립감과 공포에 휩싸인 험난한 시간을 겪었는지 가장 열렬하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현장이 됐다. 우리는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현장. 전시는 9월 13일까지 계속된다.

 

대구=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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