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아파도 맘놓고 쉬게… 상병수당 도입 되나 [이슈 속으로]

입력 : 2020-07-18 17:51:43 수정 : 2020-07-18 17:52:2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정치·노동권, 사회안전망 도입 촉구
코로나로 제도 부재 드러내…정부, 2022년부터 시범사업
#1 서울 구로콜센터 직원인 A씨는 기침, 오한 등 증상이 있었지만 정상 근무를 한 뒤에야 퇴근했다. 당일에 연차를 신청하면 감점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증상이 계속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 양성 판정이 나왔다. 구로콜센터 관련해 직원과 가족 등 169명이 확진됐다.

#2 광주에서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잠적하는 일이 발생했다. 일용직이었던 B씨는 보건 당국에 “며칠 안으로 갚아야 할 100만원의 빚이 있어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하소연한 뒤 사라졌다. 격리 기간에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낙담한 것이다. 그는 10시간 뒤 전남 영광에서 찾을 수 있었다.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한 개인방역 제1수칙은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부가 국민 874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가장 지키기 어려운 수칙으로 1수칙을 꼽았다. 아파도 출근을 해 직장 내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아프면 쉴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가 ‘상병수당’이다. 상병수당이란 업무상 질병 외 일반적인 질병으로 일정기간 치료를 받는 동안 기존 소득의 일정 부분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정치권과 노동계를 중심으로 논의가 본격화하고 하고 있으나 재원조달이나 운영 방식 등 과제가 적지 않다.

 

◆내년 상병수당 연구용역·2022년 시범사업

17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현재 업무와 관련해 발생하는 질병·부상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을 통해 보상이 이뤄진다. 반면 업무와 관계없는 질병·부상은 개인의 책임이다. 병가를 낸 기간에도 일정금액 월급이 나오는 유급병가제를 운영하는 기업이 일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무급병가다. 일용직, 비정규직에게는 ‘병가=해고’다. 코로나19로 의심되는 열, 기침 등 감기 증상에도 근로자들이 출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3월16일 직원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콜센터가 입주한 서울 구로구 코리아빌딩 입구에 폐쇄명령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이에 코로나19 위기대응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서 노동계는 상병수당 도입을 요구했다.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 정의당 배진교 의원 등이 상병수당 법제화를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했다.

법 개정을 하지 않더라도 도입을 위한 법적인 근거는 이미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는 ‘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 상병수당, 그 밖의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령에서 구체적 임의급여를 장제비와 본인부담금만으로 한정해 상병수당은 제외됐다.

정부는 검토에 들어갔다. 지난 14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고용·사회 안전망 강화 방안 중 하나로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이 포함됐다. 내년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2022년 저소득층 등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근로자 건강권 보장… 재원은 ‘난제’

상병수당은 근로자에게 충분히 치료받을 기회를 보장한다. 질병 재발의 위험을 줄이고, 회복 후 정상적으로 일터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한다. 일하지 못하는 동안 소득을 보장해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 역할도 한다. 상병수당의 긍정적 효과는 임시직, 일용직, 자영업자 등 불안정 근로자나 저임금근로자들에게서 더 크게 나타난다.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자의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직원을 고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된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상황에서는 직장 내 집단감염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근로자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수당을 받기 위해 허위로 꾸미는 것이다. 뉴욕시의 사례이긴 하지만, 기업 대상 설문결과 유급병가가 도입된 뒤 병가 신청이 11% 늘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상병수당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에서는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한 뒤 수당이 지급되는 시점까지 대기기간을 두고 있다. 대기기간이 5일이면 질병 발생 6일째부터 지급하는 식이다.

임승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보험제도연구센터장은 “상병수당제도는 근로자의 상병에 의한 소득상실보장제도이므로, 소득증명 인증, 근로능력상실에 의한 의료적 인증, 고용주의 고용인증이 필수”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건강보험에서 해결하든, 별도의 수당을 신설하든, 누군가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진행된 ‘상병수당 및 유급병가 휴가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임 센터장이 공개한 소요재정 추계를 보면 모델설계에 따라 최저 8055억원에서 최대 1조7718억원으로 분석됐다. 근로자가 아픈 뒤 7일부터 180일까지 소득의 50%를 보장하는 경우 8055억원, 360일까지 소득의 66.7%를 보장할 경우 9209억원이 필요하다. 대기기간 3일, 180일 보장, 소득의 50% 보장 조건이면 1조1172억이 드는 것으로 계산됐다. 근로자의 3세 이하 자녀 1인당 10일까지 보장하는 경우 1조7718억원으로 늘어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슈&포커스 ‘한국의 상병수당 부재 현황과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제언’ 보고서는 과거 상병수당 도입에 따른 소요재정 연구자료를 종합한 결과 연간 최소 450억원, 최대 1조5387억원이었다고 밝혔다.

김기태 보사연 포용복지연구단 부연구위원은 “상병수당은 노동자의 쉴 권리에 대한 법적인 보장, 병가 기간의 소득 보장 2단계 절차를 거쳐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할 것”이라며 “건강보험료를 인상해 그 안에서 상병수당이 지급되는 방식으로 갈지, 사회보험을 신설해 별도의 보험료가 부과되는 형식으로 갈지 검토 및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건강과대안, 민주노총, 보건의료단체연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여연대, 한국노총 관계자들이 지난 5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병수당 및 유급병가휴가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 등 160여개국, 기존 소득의 50∼100% 지급

 

해외 상당수 국가는 다양한 형태로 상병수당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7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조사대상 182개국 중 상병수당제도가 없는 나라는 19개국이다. 유럽 45개국은 모두 상병수당제도가 있다. 상병수당이 없는 나라에는 한국, 미국, 시리아, 부르키나파소, 잠비아 등이 포함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공적재원을 통해 상병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 이스라엘, 스위스 4개국뿐이다. 한국을 제외한 3개국은 직간접적으로 근로자가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스위스는 기업 재원으로 근로자에게 유급병가를 주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은 무급이지만 병가를 보장한다. 유급병가도 확대되고 있다.

 

ISSA 182개 회원국의 상병수당 운영 형태를 보면 사회보험방식이 96개국, 조세방식 4개국, 혼용 5개국, 고용주 부담 58개국이다. 사회보험방식은 건강보험에 속해 있거나 건강보험과 함께 관리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고용보험이나 연금보험과 함께 운영하는 국가들도 있다. 슬로바키아, 스웨덴, 터키는 상병수당과 출산수당만 보장하는 사회보험이, 이탈리아는 상병수당만을 보장하는 사회보험이 따로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직전 일정기간 평균 소득의 일정 비율을 보장하는 정률 방식으로 운영한다. 비율은 50∼100%, 지급기간은 70일∼제한 없음으로 다 다르다. 일본은 정률로 66.67%를 18개월 동안 지급한다. 스웨덴은 80%, 직장가입자는 최대 364일, 지역가입자는 90일이 상병수당 지급기간이다. 슬로바키아는 소득의 90%로, 지급기간 제한이 없다.

 

정액으로 상병수당을 지급하기도 한다. 덴마크의 경우 원화로 환산했을 때 월 최대 290만원가량이며, 호주는 91만원이다. 핀란드는 저소득층은 월 124만원 정액으로, 일반 직장·지역 건강보험 가입자는 70% 정률로 구분해 운영한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