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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 에너지원’ 화석연료 산업… ‘좌초자산’ 천문학적 [기후위기 도미노를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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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7-13 06:00:00 수정 : 2020-08-05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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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석유업체 기업가치 하락 / 코로나·저유가 쇼크에 온실가스 저감 과제 / BP·로열더치셸, 자산 수십조씩 손실처리 / 저탄소 기업 전환 구체전략은 제시 안 해 / 지구 온도상승 2도 목표 땐 3600억弗 발생 / ‘기후악당’ 한국의 상황도 심각 / 유럽보다 한발 늦게 ‘그린 뉴딜’ 시작 / 석탄화력발전소 좌초자산 최대 1조원 / 한전, 적자인데도 印尼 석탄발전소 강행 / '시대착오적 발상… 국제사회 흐름 역행” / 이산화탄소 배출량 OECD 7위 / 에너지 소비량 日·英보다 많아 /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최하위

때는 18××년.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도로를 누비던 그때, 당신은 말을 몇 마리 사서 ‘마차 사업’을 시작한다. 사업은 호황을 누렸고, 당신은 더 많은 말 농장을 인수한다. 그런데 어느 날 자동차가 등장하더니 머잖아 마차를 밀어내고 말았다. 없어서 못 팔던 말은 이제 사료값만 축내는 애물단지가 됐다. 이런 애물단지를 요즘 환경·경제 분야에서는 ‘좌초자산’이라고 부른다. 여전히 쓸 수는 있지만, 더는 경제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지난달 29일 글로벌 석유업체인 로열더치셸은 올 2분기에 최대 220억달러(26조4000억원)를 손실 처리(자산상각)한다고 밝혔다. 그보다 2주 앞서서는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최대 175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손실로 처리하기로 했다.

직접적인 이유는 저유가 추세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충격이지만, 코로나 상황이 진정된다 하더라도 석유 메이저의 전망은 밝지 않다. 온실가스 저감이 인류의 과제로 던져진 마당에 석유 사업으로 큰 돈을 벌겠다고 하는 건 자동차 등장 후에도 여전히 마차 사업에 기대를 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BP와 셸은 위기의식 속에 지난 2월과 4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최근 석유 공룡기업의 잇따른 자산상각을 두고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두 기업이 여태껏 저탄소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며 “석유 업계가 아직 뽑아 올리지 않은 화석연료 대부분이 영원히 땅에 묻힌 채 좌초자산이 돼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석유 업체가 투자한 유전에 경제적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단 뜻이다.

2015년 국제사회는 파리기후협정에서 이번 세기 말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2도를 넘지 않아야 하고, 가급적 1.5도 이하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합의했다.

국제사회가 이 목표를 달성한다고 가정했을 때 석유와 가스, 석탄 업계에서 발생할 좌초자산 규모는 얼마나 될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도 목표에서 3600억달러, 1.5도 목표에서는 8900억달러의 좌초자산이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학자들이 제시한 지구의 탄소허용 총량과 글로벌 에너지 기업이 보유한 매장 자원의 탄소량을 근거로 계산한 값이다. 이뿐 아니라 가망 없는 기업에 돈을 빌려줄 투자자는 별로 없기 때문에 기존 에너지 기업의 자본비용(자본 조달에 드는 비용)은 오르고, 기업가치는 하락할 것이다.

이미 이런 조짐은 보인다. 노르웨이의 한 컨설팅 그룹은 코로나19가 부분적으로만 영향을 미친 지난 1분기 셰일 기업의 자산상각 규모가 380억달러에 이른다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의 ‘셰일 혁명’을 이끈 체사피크에너지는 지난달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유럽보다 한발 늦게 ‘그린 뉴딜’을 국가 비전으로 올린 한국의 좌초자산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금융 싱크탱크 ‘카본 트래커 이니셔티브’는 지난해 좌초자산 위험이 가장 높은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갈수록 수익성이 떨어지는 석탄화력발전을 보조금으로 뒷받침하며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경쟁력을 깎아내린다는 이유에서다. 한국 좌초자산 규모는 1060억달러로 예상돼 2위 인도(760억달러)와도 큰 격차를 보였다. 앞서 에너지경제연구원도 석탄화력발전소의 좌초자산이 5600억원에서 1조원 이상 발생할 것이란 보고서를 펴냈다.

정작 산업계는 아직 이런 경고에 무디다. 최근 한국전력의 인도네시아 석탄발전소 투자 결정이 단적인 예다. 이 사업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두 번이나 적자 사업으로 평가됐는데, 지난달 말 한전은 끝내 발전소 건설을 강행하기로 했다.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등 한국 공적금융기관이 돈을 대고, 두산중공업이 발전소를 짓는다.

환경단체들은 “국제사회 흐름에 역행한다”고 비판했고,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도 “공적금융기관의 석탄화력발전소 해외건설 금융지원은 한국이 기후악당으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라며 “OECD 국가 중 공적금융기관이 해외석탄사업을 지원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인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한전은 인도네시아 전력공사와 25년간 정해진 요금에 전력판매계약을 맺어 손실이 발생할 리 없고, 환경영향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는 논리로 계획을 접지 않았다.

◆경제대국 이룬 한국 기후위기 대응 ‘꼴찌’

 

‘세계 6위 수출국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경제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환경 부문으로 무대를 옮기면 여전히 낙제생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고,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다. 국민 한 사람당 배출량으로 따지면 4위로 순위가 올라간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적인 에너지 과소비국이기도 하다. 한국의 2017년 에너지 소비량은 OECD 평균보다 40% 많다. 일본보다는 69%, 영국에 비하면 115%나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세계 4위 석탄수입국이자 3위의 석탄화력 해외 투자국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OECD 최하위다.

종합하면 반세기 만에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건 탄소배출에 별 걸림돌이 없었던 시대라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린 뉴딜’은 온실가스 감축을 최우선에 두고 저탄소로 경제산업구조를 개편하는 작업이다. 유럽은 ‘2050년 탄소 순배출량(배출량-흡수량) 제로’를 목표로 내걸고 10년간 1조유로(약 1356조원)를 투입하는 ‘유럽 그린딜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1000억유로는 가장 취약한 계층·지역·산업을 지원하는 ‘공정전환체계’에 쓰인다.

 

기후변화 부정론자가 대통령인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주 등 주정부 차원에서 탈탄소 정책이 추진 중이다. 지난해 그린뉴딜 결의안도 하원을 통과했는데,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은 넘지 못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은 그린뉴딜을 공약으로 걸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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