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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우리는 일상의 폭력에 얼마나 민감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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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7-10 22:08:52 수정 : 2020-07-10 22: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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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운동선수의 극단적 선택 / 누군가는 분노 누군가는 방관 / 폭력에 대한 구경꾼의 행위가 / 한사람의 인생 파괴할 수 있어

내 개인운동을 도와주는 체육관의 트레이너는 스트레치를 시킬 때 그 세기의 정도를 수치로 물어본다. “지금 다리에 느낌이 오세요? 1부터 5까지 중에 5가 최고라면 몇인가요?” 그러면 나는 “3이에요” 하는 식으로 답한다. 물론 너무 힘들 때엔 5라고 엄살을 부릴 때도 있다. 작년부터 나는 이 방식을 대학원생 논문지도에 활용하고 있다. 제자와 말로 하는 의사소통이 조금 어려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잘 해오고 있어. 하지만 너만의 논지가 부족해. 중간부분을 전면 수정해야겠어”라는 피드백을 두 명의 학생에게 해준 적 있었다. 똑같은 말을 듣고도 A학생은 지금까지 잘 해오고 있다는 말에 낙관하여 어이없게도 다음번에 전혀 달라지지 않은 글을 가지고 왔다. 반면 B학생은 전면 수정하라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눈물을 글썽이더니 얼마 동안 잠적해버렸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 미술사

말을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이는 A에게 “네 글은 읽을 가치도 없으니 쓰레기통에 던져버려”라고 심하게 말해볼까. 툭 하면 다 포기해버리고 싶다는 B에게는 “그 따위 나약해빠진 정신력으로 뭘 할 수 있겠어” 하고 신랄하게 지적하면 개선이 될까.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폭력적인 말은 한두 번에서 그치지 않고 점점 수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폭력적인 스승이 되지 않으려고 나름 대안을 낸 것이 바로 단어 선택이 필요 없는 숫자 피드백이다. “오늘 네 글의 완성도는 5점 만점에 1점이야. 하지만 중간부분을 수정한다면 얼마든지 3점이 될 수 있겠네.” 숫자에는 감정이 담길 일 없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에 전달력 차원에서는 효력이 있다. 간혹 제자들로부터 팩트(fact) 폭력이 더 잔인하다는 농담 섞인 불만을 듣기는 하지만 말이다.

미술가들은 1960년대부터 폭력에 대항하고, 폭력적인 ‘보기’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을 이용한 행위예술을 선보였다. 예를 들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1974년에 나폴리의 한 작업실에서 자기 몸을 날것의 재료로 내어주면서 “나한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72가지 물건들이 탁자 위에 있습니다”라고 하며 관객들에게 무엇이든 해보도록 유도했다. 탁자 위에는 총, 톱, 도끼, 포크, 채찍, 페인트, 칼, 성냥, 물, 사슬, 바늘, 가위, 황 등 위험한 것들로 가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브라모비치가 입었던 옷은 면도날로 갈기갈기 그어진 채 모두 몸에서 떨어져 나갔고, 머리카락은 잘리고, 채색되고, 이마에는 가시관이 씌워졌다. 누군가는 장전된 총구를 그녀의 머리에 대고 누르기도 했다. 여섯 시간 후 그녀를 걱정한 몇몇 관객들이 이 퍼포먼스를 중단시켜 끝이 났다. 이 작품은 누군가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을 지켜보고, 실제로 폭력에 가담하기까지 하는 관객에 대해 고발한 것이다. 아무 책임감 없이 방관하는 자세로 사는 구경꾼의 행위가 누군가에게 심각한 공포를 줄 수 있으며 심지어 그 사람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느 젊은 운동선수의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죽음, 그리고 아동을 등장시키는 무분별한 웹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법적 처벌 건 등으로 요즘에 폭력이 화두에 올라 있다. 누군가는 엄청 분노하고 누군가는 무덤덤하게 들어 넘긴다. 폭력은 신체에 가해지는 직접적인 고통뿐 아니라, 성적인 수치심과 정신적인 모멸감을 유발하는 행위, 언어 협박 등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이미지로 보여주며 배포하는 것까지 폭력에 속한다.

폭력이 진정 문제가 되는 이유는 폭력이 평범한 개인의 일상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고, 그 일상 속의 폭력이 침묵 속에 묻힌 채 지나가버리거나 혹은 너무나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폭력에 대해서 책임감 있는 구경꾼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또 습관대로 수치화해본다. 폭력에 대해 의식이 있는 민감한 사람인지 생각 없이 사는 무딘 사람인지 스스로 점수를 매겨본다면 나는 과연 5점 최고점 중에 몇 점이 나올까.

 

이주은 건국대 교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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