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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멸 위기의 인류, 불복종 역량 회복하라”

입력 : 2020-07-11 02:00:00 수정 : 2020-07-10 18: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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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복종은 양심·신념에 따르는 긍정 행위 / 감히 ‘아니오’라고 할 수 있기에 인류 진보 / 권력에 지배당한 인간, 저항 능력 잃어버려 / 프롬, 냉전시대 核경쟁 폭주 인류에 경고 / “인간의 역사, 복종 행위로 종말 고할 수도” / 사회 모순·부당한 정책·세계 부조리 앞에 /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물음 던져
에리히 프롬/김승진/마농지/1만1000원

불복종에 관하여/에리히 프롬/김승진/마농지/1만1000원

 

홍콩 사태가 심상치 않다. 홍콩 항쟁이 촉발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그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일부터는 중국의 홍콩 치안 직접 개입을 가능케 하는 홍콩국가안전유지법(홍콩보안법)이 시행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돌고 있다. 홍콩보안법은 외국 세력과 결탁,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리즘 행위 등을 금지·처벌하고, 홍콩 내에 이를 집행할 기관을 설치하는 내용을 담았다. 조슈아 웡 전 홍콩 데모시스토당 비서장 등 민주화 인사들이 체포될 것이란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으나 시위가 위축되지 않고 산발적으로 계속돼 외신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조슈아 윙은 “한국의 민주화를 보며 홍콩의 승리를 상상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시민의 체제 불복종은 자신의 주권이 침해당했다고 여길 때 선택하는 적극적인 저항의 방법의 하나다. 홍콩 사태를 보며 최근 출간된 에리히 프롬(1900∼1980)의 ‘불복종에 관하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역사는 불복종의 행위로 시작되었으며 복종의 행위로 종말을 고하게 될지 모른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누구나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일상의 불합리 앞에서, 사회의 모순 앞에서, 국가의 부당한 정책 앞에서, 세계의 부조리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늘 고민한다. 이런 이들에게 책은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혹 권위와 권력의 목소리를 내면화한 채, 스스로 사고하고 저항하는 능력을 상실한 채 근본적 문제를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불복종에 관하여’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 에리히 프롬의 철학적 에세이 4편을 엮은 책이다. 프롬이 1960년대에 집필한 글들로, 20세기 인간의 위기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기초해 ‘불복종’과 ‘자유’ ‘휴머니즘 ‘등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명료한 문장에 담긴 사유가 지금에도 여전히 도발적이며 문제적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사회철학자인 저자 에리히 프롬은 “불복종할 수 있으려면 혼자가 되고 오류를 저지를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용기를 낼 수 있는 역량은 온전히 성숙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느끼고 사고할 능력을 획득해야만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마농지 제공

책에서 프롬은 보편 양심, 보편 이성에 기반한 긍정적 행위로서 불복종을 개념화한다. 그것은 “반항꾼의 이유 없는 반항”과는 다르다. 분노와 억울함에서 비롯되는 반항적 불복종은 순응적 복종만큼이나 맹목적이다. 그가 말하는 불복종은 양심과 신념에 복종하고 자신의 의지를 긍정하는 행위다. 불복종의 행위를 통해 진화해온 인간은 마찬가지로 외부의 권력과 내면화된 권위에 지배당하는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허무할 정도 쉽게 복종으로 기울까. 프롬에 따르면 권력에 복종할 때 우리는 안전하다고, 숭배하는 권력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낀다. 불복종의 역량을 잃은 ‘조직인(組織人)’은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잘못된 길을 걷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유대인 학살를 지휘했던 나치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은 이런 조직인의 상징이다. 남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인간을 숫자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는 관료의 상징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의 상징이다. 우리는 아이히만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직인은 불복종의 역량을 잃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사실 지금의 우리가 그렇다고 프롬은 지적한다.

불복종할 수 있으려면 감히 알고자 하고 모든 것을 의심하는 정신, 독립된 인격의 성숙, 오류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는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불복종의 역량은 자유의 조건이며, 또한 자유가 불복종의 조건이기도 하다.

지나온 인류 역사에서 군주, 성직자, 봉건 영주, 산업계 거물, 부모들은 대부분 복종은 미덕이며 불복종은 악덕이라고 가르쳐 왔다. 히브리와 그리스 신화를 보면 인간의 역사는 불복종 행위로 시작됐다. 아담과 하와,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그 사례다. 인간은 명령에 불복종했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고 불복종은 인류의 역사를 열고 발전을 견인해온 문명의 토대다. 양심과 신념으로 권력자에게 감히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영적 발달이 가능했다. 새로운 사고와 변화를 틀어막으려는 권위에 저항한 것이다. 그것은 무엇에 맞서기만 하는 반항이 아니라 ‘삶에 대한 사랑’에 기초한, 그 무엇을 향한 긍정적 행위다.

지난 냉전 시대의 핵무기 경쟁을 목도한 프롬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채 인류의 절멸을 향해 내달리고 있음에도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동시대인들에게 “인간의 역사는 복종의 행위로 종말을 고하게 될지 모른다”고 역설했다. 작금의 현대인도 마찬가지다. 기후 위기라는 또 다른 절멸의 버튼을 올려놓았고, 그와 연결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새로운 사유와 행동 양식을 만들어가야 하는 지금, 불복종의 역량을 회복하라는 프롬의 목소리는 그만큼 절박하다.

“어떤 사람이 오로지 복종만 할 수 있고 불복종은 할 수 없다면 그는 노예다. 오로지 불복종만 할 수 있고 복종은 할 수 없다면 그는 반항꾼이다. 혁명가와 반항꾼은 다르다. 역사의 현시점에서 의심하고 비판하고 불복종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의 미래냐 문명의 종말이냐를 가를 모든 것일지 모른다.”

독자에게 일상에서 크고 작은 선택을 놓고 양심의 갈등이 생길 때 긴 안목에서 나와 사회, 국가를 위해 어찌해야 할지를 돌아보게 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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