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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아이 비명’… 사전예방 위해 ‘부모교육’ 필요”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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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7-06 06:00:00 수정 : 2020-07-05 21: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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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 / “천안 ‘가방 감금’ 사건 등 잇따라 / 느슨한 법과 제도 범죄자 양산 / 부모는 학대를 훈육으로 잘못 생각 / ‘쉼터’ 70여곳… 장기보호시설 늘려야”
“8살 아이를 때려죽인 계모가 구치소에서 아이 친부한테 이런 편지를 보낸 거예요. ‘변호사가 5년 안에 나갈 수 있다더라, 그동안 공인중개사 공부해서 나가면 자격증을 따겠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지난 3일 인터뷰에서 아동학대의 심각성과 부모 대상 아동학대 예방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3일 경남 창원의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대아협) 사무실에서 만난 공혜정 대아협 대표는 2013년 ‘울산 계모 사건’을 떠올리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울산 사건은 공 대표가 처음으로 아동학대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들게 된 계기이자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살인죄가 인정된 첫 사례다.

 

울산 사건의 아이는 “친구들과 소풍을 가고 싶다”고 말한 날 갈비뼈 16개가 부러졌고, 그 뼈에 폐가 찔려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는 3년 동안 학대당하며 허벅지 뼈가 두 동강 나고, 계모가 퍼부은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공 대표는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그(계모)가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었던 건 당시만 해도 학대로 아이가 죽더라도 살인죄가 아닌 학대치사죄가 적용돼 대부분 5년 미만의 징역형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그 편지를 보고 우리나라 법과 제도가 이렇게 뻔뻔한 범죄자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울산 사건 전까지 공 대표는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워킹맘’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해본 경험도 전혀 없었다. 그는 “저 역시 아동학대를 언론을 통해서만 접하면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 하고 넘어가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면서 “울산 사건으로 숨진 피해 아동의 친모가 지인이라 언론에도 나오지 않은 학대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본 이후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울산 사건 이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는 등 법이 바뀌고 아동학대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최근 충남 천안에서 동거남의 9살 아이를 여행용 가방 안에 가둬 숨지게 한 40대 여성이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 역시 이러한 변화의 결과다. 하지만 여전히 아동학대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분노한 시민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시작된 공 대표의 활동이 현재의 대아협까지 이어지게 된 이유다.

공 대표는 반복되는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사전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과 제도는 이미 학대가 일어난 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해결방법은 부모 교육이다. 많은 부모가 폭력이나 폭언이 아닌 올바른 훈육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학대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한 가해자들이 또다시 자식을 학대하는 ‘학대의 대물림’이 일어나는 이유 역시 자신이 당한 학대를 훈육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라는 게 공 대표의 생각이다. 대아협은 무료 강의와 유튜브 등을 통해 부모들을 대상으로 아동학대 예방 교육에 나서고 있다.

 

공 대표는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해 보호할 경우 신속히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아동복지법의 ‘원가정 보호 원칙’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그는 “천안 사건처럼 애초에 아동과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분리되더라도 대부분 한 달 이내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이 사이에 어떻게 아이들의 상처가 치유되고 부모의 행동이 바뀌겠냐”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전국에 70여개 있는 쉼터 역시 대부분 단기 쉼터”라며 “학대 피해 아동이 집중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장기보호시설 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아협은 지난 3월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25)씨 등을 아동복지법 위반(성 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공 대표는 “박사방 사건이 터지고 기사를 보다 경찰이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됐다”면서 “당시 밝혀진 미성년 피해자만 16명인데 해당 혐의가 적용되지 않은 건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대아협 고발 이후 조씨에게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공 대표는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민법 915조 부모 징계권을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아동학대에 대한 감수성이 과거에 비해 높아진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지금은 아동학대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지만 울산 사건이 있었던 2013년만 해도 아동학대를 이 정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며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겠지만 10명, 100명이 외치면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1000명이 나서면 함께 동조하게 되는 것처럼 대아협 회원들과 많은 사람이 아동학대 문제 해결로 가는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창원=글·사진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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