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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 안녕… 콘서트·전시 방구석에 들어왔다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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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7-04 16:00:00 수정 : 2023-12-10 15: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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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시대 ‘슬기로운’ 랜선 문화생활 / 온라인 유료공연 포문 연 K팝 / 티케팅 전쟁 없고 비용 3만원대 저렴 / 편안한 공간에서 가수와 실시간 소통 / BTS 콘서트 75만명 접속 250억 대박 / 미술·박물관도 온라인 개관 / VR 활용 전시실 간 듯 예술품 생생 / 큐레이터, SNS로 작품 실시간 해설 / 현대미술관 서예전 영상 7만회 조회 / ‘포스트 코로나’에도 계속된다 / 영상 뚝뚝 끊기고 화질 등 한계 있지만 문화생활 문턱 낮추는 순기능 확인돼 / 4차산업혁명 맞아 기술 진화 가속 전망

#1. 아이돌그룹 ‘엔시티’(NCT)의 팬 윤민형(30·가명)씨는 얼마전 친구 두 명과 함께 스마트TV로 유료 온라인 콘서트 ‘NCT 127-비욘드 디 오리진’(Beyond the Origin)을 즐겼다. 티켓값은 3만3000원. 인당 1만1000원씩 내고 셋은 윤씨 집 안방에서 콘서트를 즐겼다. 129개국에서 10만4000명이 시청한 공연이다. 거의 20년 가까이 아이돌 ‘덕질’(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에 파고드는 일)을 해온 윤씨가 이렇게 자리 걱정 없이 콘서트를 본 건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한 티켓팅 전쟁을 하느라 티켓 오픈 시간에 맞춰 PC방을 전전했다. 예매에 성공하고 나서도 혹시 더 좋은 자리가 나오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새벽 ‘취켓팅’(취소표+티켓팅)에 나서 무수히 컴퓨터 자판의 ‘F5’ 키를 눌렀다. 친구들과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연석 예매는 꿈도 못 꿨다. 윤씨는 “친구들과 함께 떠들면서 볼 수 있어 좋았다”면서 “보통 콘서트를 서울에서 많이 하니까 지방에 사는 팬들은 콘서트에 한 번 올 때마다 티켓값뿐 아니라 교통비에 숙박비로 몇십만원씩 든다. 앞으로도 온라인 공연을 구매해 볼 생각이 있다”고 했다.

 

#2. 한 달에 한 번꼴로 미술관을 찾았던 기수리(27)씨는 최근 하루에도 여러 번 전시를 관람한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볼 수 있는 ‘온라인 전시’가 여럿 있어서다. 지난 1일에는 평소 좋아하던 서양화가 이승조 작가의 ‘도열하는 기둥’ 전시를 스마트폰으로 감상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이정윤 학예연구사(큐레이터)가 직접 작품을 설명하면서 방송을 진행했다. 이 방송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씨는 방송 시작 전부터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대기했다. 평일 낮 시간이었는데도 동시 접속자는 3000명을 넘었다. 기씨는 지난 4월에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국제 동시대 미술 기획전 ‘수평의 축’ 전시 설명 영상을 SNS를 통해 챙겨봤다. 기씨는 “작품의 질감이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워 아쉽긴 하지만 집에서도 큐레이터의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고, SNS로 직접 질문을 할 수도 있어 장점도 많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문화생활에도 어김없이 변화가 찾아왔다. 무대 아래 스탠딩석에 빽빽이 선 관객이 서로 밀고 밀치며 함성 지르는 모습은 사라졌다. 무대 위에 빼곡히 붙어 연주하던 오케스트라 공연도 달라졌다. 보면대를 개인별로 비치하고, 악기 편성을 최소화하면서 연주자들 사이에도 거리두기가 이뤄진다. 몇 달 동안 멈춰있던 대면 공연을 조심스럽게 재개하더라도 관객을 소규모로 받아 거리두기를 시행한다. 브라운관 속 공연도 바뀌었다. 관중 없이 진행하거나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더라도 원을 그려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마스크 착용과 발열 체크, 손 소독 등 방역에 철저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필수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던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온라인 예약을 받아 한 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지 않게 했다.

 

가장 큰 변화는 특별한 장소를 가야지만 즐길 수 있던 문화생활이 ‘방구석’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3일 디지털 콘텐츠 전송업체 라임라이트 네트웍스에 따르면 10개국 응답자 44%가 온라인 콘서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온라인 콘서트 등을 포함한 영상 시청 시간이 크게 늘었다.

 

조사 결과 18세 이상 한국인들은 하루 평균 3시간26분을 온라인 영상 시청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전인 6개월 전보다 3.5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해당 조사는 지난 4월29일부터 5월14일까지 10개국(한국·미국·프랑스·인도·일본 등)에서 18세 이상 5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그룹 슈퍼주니어의 유로 온라인 콘서트.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멤버 최시원이 거인으로 변신해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장면을 연출했다.

◆집에서 저렴하게 즐기는 K팝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오프라인 공연과 해외 투어가 불가능해진 K팝 무대는 온라인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지난달 14일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유료 온라인 콘서트 ‘방방콘(방에서 즐기는 방탄소년단 콘서트 더 라이브)’가 대표적이다. BTS는 올해 서울을 시작으로 해외 투어를 예정했지만 코로나19로 일정이 전면 중단되면서 온라인 공연으로 방향을 틀었다. 방방콘의 최고 동시 접속자 수는 약 75만6600명. 유료 온라인 콘서트로는 최대 수치다. 해당 공연의 티켓 가격은 평균 3만4000원(일반 3만9000원·팬클럽 2만9000원)으로, 대략 25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 4월부터 ‘비욘드 라이브’ 시리즈를 통해 온라인 유료 공연에 앞장섰다. 슈퍼엠을 시작으로 웨이션브이, NCT DREAM, NCT 127,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SM 소속 가수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매년 해외에서 열었던 CJ ENM의 ‘케이콘’(KCON)도 온라인으로 대체돼 ‘케이콘택트 2020 서머’란 이름으로 열렸다. 지난달 20일부터 26일까지 가수 있지(ITZY), 청하, 강다니엘 등 총 33팀이 이 공연을 통해 전세계 K팝 팬들을 만났다. 콘서트 라이브 무대와 그 외 멤버별 직캠(직접 찍은 영상), 비하인드 영상 등을 30일간 볼 수 있는 이용권을 2만4000원에 판매했다. 그 밖에도 여자(아이들), 아스트로, 몬스타엑스 등 많은 아이돌그룹이 속속 온라인 공연에 뛰어들었다.

 

온라인 유료 공연의 장점은 오프라인 콘서트(10만원 내외)에 비해 저렴한 가격(3만원 내외)으로 어디서나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카페에서는 소리를 지를 수 없어 집에서 방방콘을 봤다’는 취업준비생 임지민(27·가명)씨는 “시간이 많이 들기도 하고 아무래도 가격이 부담스럽기도 해서 지난 BTS (오프라인) 콘서트를 가지 못했다”면서 “온라인 콘서트는 제약 없이 집에서 바로 친한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으면서도 가수와 실시간 소통도 가능한 데다 땀방울 하나까지 다 보여서 생생함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문 닫을 걱정 없는 온라인 미술관·박물관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개관과 휴관을 반복하고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도 온라인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첫 신규 전시인 덕수궁관 ‘미술관에 書(서): 한국 근현대 서예’를 개관 이래 최초로 지난 3월 온라인 개막했다. 미술관을 찾지 않고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관람객들은 평소에 쉽게 할 수 없던 큐레이터와 실시간 소통에 열광했다. 전시에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의 설명이 곁들여진 유튜브 생중계는 1만4000여명이 시청했고, 조회수는 이날 기준 7만7000회가 넘었다.

 

지난 1일 이정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이승조: 도열하는 기둥’ 전시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현재 휴관 중인 서울역사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 돈의문박물관마을, 남산골한옥마을 등 문화시설도 온라인을 통해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다. 온라인 전시관에서 가상현실(VR) 전시를 만날 수 있고 교육 프로그램과 체험도 영상으로 진행한다. 한국도자재단은 기획전 ‘근대도자, 산업과 예술의 길에 서다’를 온라인 방식으로 전시 중이다. VR로 구현해 실제 전시실에 있는 것처럼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미술계 관계자는 “이전까지 미술계에서 온라인 공간을 주로 아카이브(디지털기록물보관소) 용도로 활용해왔다면 코로나19를 계기로 기획 단계부터 온라인 플랫폼 활용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개막을 하지 못해 전시를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아쉬움이 컸는데 온라인으로라도 전시할 수 있게 돼 양쪽 모두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한계 있지만…코로나 이후에도 계속될 ‘방구석 문화생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공연이나 전시 관람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대학원생 이유진(25)씨는 “아무래도 온라인 전시를 보면 현장만큼의 감흥이 오지는 않는다”면서 “걸어 다니면서 보고 싶은 작품을 선택해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기도 하고, SNS 라이브를 통한 전시 설명도 화질이 떨어지거나 댓글이 집중을 방해한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윤씨는 “사전에 당첨된 팬들이 무대 뒤 스크린에 나오는 등 나름대로 소통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콘서트장에서 직접 느끼는 정도는 따라갈 수 없다”며 “아무래도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못하다 보니 중간중간 영상이 끊긴다든가 몰입이 떨어질 때가 있다”고 했다.

 

gettyimagesbank 제공

전문가들은 대체로 ‘방구석 문화생활’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인간은 누구나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욕구가 있고, 음악이나 미술 작품을 보며 평안함과 안정감을 얻게 된다”며 “온라인 콘서트나 전시 관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코로나 블루(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를 해소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록 직접 경험했던 과거와 달리 효능감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어질수록 경험하지 못한 진화나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대중문화지 ‘롤링 스톤’은 “BTS는 온라인 유료 공연의 잠재력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렸다”면서 “BTS의 온라인 콘서트 40번이면 역대 가장 큰 수익을 낸 가수 에드 시런의 투어 총수입(약 9400억원)을 넘을 수 있는 데다 비용은 훨씬 적게 든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현상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온라인 기반으로 많은 것들이 재편되는 시기에 코로나19 확산이 맞물리면서 그 변화가 가속화된 측면이 있다”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문화생활뿐 아니라 인터넷을 매개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는 전 분야에서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직접 찾아가 체험하고, 비싼 요금을 내고 관람하는 일이 절대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다소 현장감이 떨어지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접근성이 높은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늘어나고 있다”며 “앞으로는 원격으로도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기술 등이 더 많이 개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이종민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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