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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인의 메모하는 습관… 기억, 어떻게 몸을 작동시키나

입력 : 2020-07-04 03:00:00 수정 : 2020-07-03 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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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아사 / 김경원 / 현암사 / 1만6000원 

기억하는 몸 / 이토 아사 / 김경원 / 현암사 / 1만6000원 

 

신체와 장애의 문제를 깊이 연구해온 저자 일본인 이토 아사는 장애인 11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를 토대로 신체장애와 기억의 연관성을 추적한다. 한 사람이 하나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저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한 사람의 몸이 마치 여러 개로 중첩된 듯 기능하는 독특한 현상을 발견해내고 이를 ‘하이브리드 신체’ 혹은 ‘몸의 복수화’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사람의 새겨진 기억이 어떻게 신체를 작동시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책에 따르면 후천적 장애인의 몸에는 종종 ‘장애를 입기 전 몸의 기억’과 ‘현재의 몸’이 겹쳐지면서, 상식으로 생각하면 불가사의해 보이는 갖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성인이 되면서 시력을 완전히 잃은 시각장애인 레나씨는 말하면서 언제나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단지 필기구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금 전에 글씨를 썼던 곳으로 되돌아가 강조하기 위해 동그라미를 치거나 밑줄도 긋는다. 이전에 써놓은 글자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메모행위가 영상처럼 기록되어 머릿속에 이미지로 저장되었음을 의미한다. 레나씨는 손의 운동 기억을 단지 재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종이를 ‘보고’ 있는 것이다.

후천적 장애인에게만 몸의 복수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 장애인에게서도 하이브리드 신체의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분척추증이 있는 간바라 겐타씨는 상반신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감각이 없는 하반신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위아래로 전혀 다른 유형을 지닌 두 개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다. 때때로 그에게는 상반신에서 경험한 기억이 하반신으로 옮겨지는 일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 통증의 경험이 그러한데, 간바라 겐타씨의 발은 생리적으로 통증을 느낄 수 없지만, 피가 나는 것을 보면 마치 아픈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는 것이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 중에는 독서를 좋아해서 책을 통해 비장애인의 관점이나 감각을 몸에 익히는 사람도 있다. 생리적으로는 장애가 있을지언정 문화적으로는 비장애인의 몸을 획득한 셈이다. 또한 비장애인 중심인 세계에 이물감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서 자기만의 몸을 만들어가며 공존시키는 수많은 사람도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간 신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놀랍고 경이로운 몸에 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박태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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