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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단 3점”, 최고공예품 ‘고려나전’ 귀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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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7-02 09:05:00 수정 : 2020-07-02 07: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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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환수한 고려 ‘나전국화넝쿠무늬합’. 문화재청 제공

고려나전은 1000년 전 이미 명품이었다. “그 기법이 세밀하여 귀하게 여길 만하다.” 1123년 고려를 다녀간 송나라 사신 서긍의 평가다. 일본인들도 불교 경전을 넣는 상자 등 나전 공예품에 매료됐다.

 

중국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자신의 책 ‘고려도경’에서 고려나전에 대해 “세밀하여 귀하게 여길 만하다”고 평가한 부분. 문화재청 제공

명성은 지금도 여전하다. 서긍이 주목했던 세밀함에다 독보적인 희소성을 더해 더욱 귀한 몸이 됐다. 고려나전은 전 세계에 20여 점만이 전하며 우리나라에 단 2점에 불과했다. 희소성이라면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을 고려불화도 160여 점은 된다.

 

고려나전 한 점이 환수됐다. 2일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나전합)을 일본 개인 소장자에게서 구입해 들여왔다”며 “후대에 수리된 흔적이 적어 제작 당시의 원형을 많이 유지하고 있어 가치를 더한다”고 밝혔다. “손끝으로 집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작게 오려진 나전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배치돼 격조높은 아름다움을 가진 수작”이라는 평가와 “나전합이 추가되어 우리나라는 (고려나전) 총 3점을 소장하게 되었다”는 설명은 환수된 나전합이 고려나전하면 떠올리게 되는 희소성과 세밀함을 오롯이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전 유물은 전 세계에 20여 점…독보적인 희소성 

 

알려진 고려나전은 파편으로 전하는 것까지 포함해도 전 세계에 20여 점에 불과하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영국박물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동양미술관 등 세계 주요 박물관이 소장처다. 종주국인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나전 대모 칠 국화넝쿨무늬 불자(拂子·선종의 승려가 번뇌와 어리석음을 물리치는 표지로 지닌 물건)’,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회가 구입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나전경함’(불경 보관을 위해 만든 함, 보물 1975호)을 갖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나전 대모 칠 국화넝쿨무늬 불자’.
‘나전 대모 칠 국화넝쿨무늬 불자’의 세부.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고려의 나전경함. 

환수된 나전합처럼 큰 합 속에 들어가는 작은 합의 형태를 띤 것은 온전하게 전하는 게 세 점밖에 없다고 한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일본 사찰인 게이슌인에 소장되어 있고 환수된 나전합은 한 일본인이 갖고 있었다. 환수를 주도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김동현 부장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소장품을 팔 리 없고, 게이슌인의 것은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며 “거래가 가능한 유일한 나전합을 환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나전이 이처럼 희귀한 유물이 된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재료 자체가 상대적으로 확보하기 어렵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귀한 것들이라 생산량 자체가 적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은 가능할 듯하다. 고려나전의 주요 재료로 나전합에도 쓰인 대모(玳瑁·바다거북 등껍질)는 수입품으로 민간에서의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바다에서 나는 자개 역시 대량으로 확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란 점 등을 감안하면 당대에도 많이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짐작을 할 수 있다.

 

◆밀리미터 단위로 잘라낸 자개, 상상 초월의 세밀함

 

고려나전은 유례를 찾기 힘든 세밀함으로 이름이 높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나전경함이다. 높이 22.6㎝, 폭 41.9×20㎝ 크기의 나전경함 표면은 모란당초문, 연주문 등으로 덮여 있다. 이런 장식을 구성하는 자개가 무려 2만5000개 이상이다.  

 

고려나전은 문양 대부분을 ‘줄음질’로 만들었다. 자개를 꽃, 나뭇잎, 거북 등껍질 무늬 등 원하는 모양으로 오려내어 촘촘하게 붙이는 것이다. 문양의 크기는 대체로 1㎝를 넘지 않고, 작은 것은 2∼3㎜에 불과하다. 이만한 크기로 자르고 갈아내기 위해 필요한 인내심이 어느 정도일 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고려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비가 발달한 오늘날에도 구현하기 힘든 수준의 기술임은 말할 것도 없다. 

 

세밀함의 측면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이 넝쿨, 경계 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금속선이다. 일본 다이마사 소장의 ‘자개대모국화덩굴무늬염주합’은 덩굴무늬 줄기와 꽃의 윤곽, 무늬의 경계 등을 은, 동 등의 금속선으로 표현했는데 굵기가 0.4㎜를 넘지 않는다. 환수된 나전합은 외곽선, 넝쿨을 표현하기 위해 구리, 주석납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려나전에 구현된 고도의 기술은 장인 각자의 뛰어난 역량이 기본이겠으나 나전 생산의 전문화, 분업·협업화를 이룬 시스템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자개일을 전문으로 하는 ‘나전장’, 옻칠을 하는 ‘칠장’, 자개 가는 일을 맡은 ‘마장’, 금속세공을 담당한 ‘은장’·‘백동장’ 등이 각각 있었고, 이들이 한 공방에서 함께 일했다. 1272년에는 나전경함의 제작을 전담하는 ‘전함조성도감’을 설치해 두기도 했다. 지금까지 전하는 나전경함 대부분이 규모, 모양이 흡사한 것은 여기서 근무했던 장인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생산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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