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4대 보험·정년 보장’ 기존 틀 밖으로… ‘자유노동’ 껴안다 [탐사기획 - 노동4.0 별 ‘일’ 없습니까]

관련이슈 탐사기획 - 노동4.0 별 '일' 없습니까

입력 : 2020-06-05 06:00:00 수정 : 2020-08-05 16:26:5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파편화된 노동 시장서 믿을 건 자신뿐” / “‘충성’의 개념보다 프로젝트 기반 일 찾아” / “비정기적 수입 프리랜서의 최대 걸림돌” / “무소속 ‘플랫폼 노동자’ 4대 보험도 제한”

 

‘4대 보험과 정년을 보장받는 안정적인 일자리.’ 지금까지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일자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더는 이런 틀에 노동을 가둬둘 수 없다고 말한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의 진화는 인간을 새로운 노동의 형태로 밀어내고 있다. 또 전통적인 고용 계약구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자발적으로 혹은 비자발적으로 회사 밖 ‘자유노동자’가 된 사람들로부터 ‘행복한 노동 4.0’을 위한 과제를 들어봤다.

 

■유성우 PDF 출판 작가

5년 전까지 그는 9000개가 넘는 숱한 인터넷 언론사 기자 중 한 명이었다. 어느 날 서비스 거래 마켓에 올린 PDF 책이 ‘대박’을 쳤고, 자연스레 퇴사로 이어졌다. ‘PDF 출판 스타’로 통하는 유성우(필명·35) 작가는 그렇게 정규직 사원에서 프리랜서가 됐다.

“철저한 계획을 갖고 프리랜서가 된 건 아니에요. 정보기술(IT) 계열 잡지사에 다녔는데, 여기서 네이버 포스트를 운영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쪽 시장에서는 이렇게 해야 먹히는구나’ 이런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제 나름대로 노하우를 PDF 10장으로 정리해 크몽에다 3만원에 올렸어요. 그런데 잘 팔리는 거예요. 나중에 60페이지를 더 써서 7만원에 팔았죠.”

월급의 2∼3배에 달하는 금액이 들어오자 자신감이 붙었다. PDF 출판에 집중하고 싶어 사직서를 냈다. PDF 출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 그의 주수입원은 온오프라인 강의다. PDF 출판이 그랬듯 이 역시 강의에 특화된 플랫폼(탈잉, 클래스101)을 이용한다.

PDF 책을 보고 연락 오는 기업의 마케팅 업무도 한다. 업체의 포스트를 관리해주는 일이다. 처음에는 최씨가 도맡아 했지만 지금은 주제만 잡고, 실제 내용을 작성해 사진을 찾아 올리는 일은 또 다른 프리랜서 2∼3명이 한다. 외주화하는 게 더 비용절감이 될 만큼 그의 ‘몸값’이 올랐단 의미다. 동업자들은 아르바이트 포털에서 구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아는 거라곤 계좌번호와 이름뿐, 얼굴도 모른다. 이런 방식으로 직장다닐 때보다 월 300만∼400만원은 더 번다. 지난 2월에는 강의가 또 한 번 히트를 쳐서 2500만원을 벌었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불안하다’고 했다. 생존을 위해 꾸준히 ‘다음 먹거리’를 찾아야 하고, 노후 준비는 시작도 못했다.

“요즘 같은 때 프리랜서는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일거리가 완전히 끊길 수도 있어요. 코로나19 같은 이슈가 아니어도 늘 불안하죠. 노후 준비도 못했어요. 노란우산(소상공인 퇴직금 제도)에 들어야 되는데, 학자금대출 같은 빚을 얼마 전에야 다 갚아서 이제부터 시작하려고요.”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 제안이 들어온다면 어떨까. “저는 자유롭게 자기주도적으로 일하는 게 맞아서 다시 정규직 일자리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아요. 대학 때 읽은 책에서 ‘미래에는 큰 기업과 브랜딩이 강한 개인만 남는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다 회사 것이더라고요. 프리랜서를 하고 싶다면 나만의 포트폴리오가 있는가 생각해봐야 해요.” 파편화된 노동 시장에서 믿을 건 자기 자신뿐이더란 얘기다.

 

■최광 컴포스타 대표

최광(41) 컴포스타 대표의 출근길은 요일별로 달라진다. 월요일에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동대문 B2B 플랫폼 업체로, 화요일에는 격주로 강남구에 있는 명품 커머스 기업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솔루션 기업으로 향한다. 수요일에는 강남의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강남 삼성역에 있는 공유오피스로 출근한다.

 

지난해 6월 그는 직장 생활을 접고 1인 홍보회사를 차렸다. 그의 고객인 스타트업에 요일별로 찾아가 취재하고 홍보 보도자료를 쓰는 게 주업무다.

“큰 기업은 내부에 홍보팀을 따로 두잖아요? 규모가 좀 더 작거나 외국계인 경우는 대행사를 쓰고요. 그런데 스타트업 중에는 대행사 쓰기도 부담스러운 곳이 많아요. 그래서 회사 다닐 때 친하게 지낸 스타트업 대표에게 ‘나를 쪼개서 쓰라’라고 했어요. 스타트업들이 저를 요일별로 나눠서 쓰면 부담이 없지 않을까 싶어 제안한 건데 세 곳에서 좋다는 반응이 나와 이 일을 시작하게 됐죠.”

 

독특한 방식으로 ‘틈새시장’을 연 것이다. 직장인이었을 때의 이력도 평범하지 않다. 그가 몸담았던 회사를 읊어보면 경제신문사 두 군데를 거쳐 소셜네트워크회사, 게임회사, 인터넷 매체, 비영리기관, 또다시 경제신문사와 회계법인 등 8곳에 이른다. 잦은 이직은 경력에 마이너스가 아닐까.

 

“기업도, 사람도 ‘이 직장에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개념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작은 기업일수록 더 그렇고요. 요즘엔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고 완성시켜줄 사람’을 찾아요. 적임자를 뽑아서 그에게 권한과 책임을 준 뒤 그 일이 끝나면 다시 헤어지고…. 점점 더 프로젝트 기반이 되고 있어요.”

 

4차 산업혁명은 스타트업이라는 ‘바퀴’로 굴러간다.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며 노동환경의 변화를 목격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정규직처럼 탄탄한 안전망에 있는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 봤다.

 

“로봇의 공격은 생각보다 더 강력할 거예요. 로봇에는 팔 달린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자동화 프로그램도 다 포함돼요. 몇 년 전부터 보험회사 등에서 RPA(로봇 프로세스 자동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걸 도입하면 생산성이 30∼40%씩 올라간대요. 그 말은 30∼40%의 인력을 줄일 수 있단 뜻이죠.”

 

기술발전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그리고 최 대표 같은 1인 기업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회 안전망이라고 했다.

 

“생존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당장 오늘내일 먹고사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굉장히 제한적이잖아요. 발전적인 것들을 시도하려면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이 돼야 합니다.”

 

■박은선 웹툰작가

“인세가 한 번에 들어오는 달에는 600만∼700만원도 들어오지만, 휴재 기간에는 수입이 0원으로 떨어져요. 연봉으로 치면 한 2000만원 될 것 같네요. 지금은 지난 작품 유료 수익 말고는 정기적인 수입은 없는 상태예요. 프리랜서는 항상 이렇기 때문에 불안정해요. 주 단위 이상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하기도 부담스럽고요.”

 

웹툰작가 박은선(가명·31)씨는 프리랜서를 ‘선택’한 적이 없다. 만화를 전공했고, 전공을 살려 일하다 보니 프리랜서가 됐다.

 

“만화 쪽은 정규직이 아예 없어요. 책 작업할 때도 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 대부분 프리랜서잖아요. 선택권이 없었죠.”

 

웹툰작가는 초등학생 희망직업으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기 직업이지만, 그 안에는 녹록지 않은 현실이 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끼니를 제대로 챙길 새도 없이 5∼6일 동안 쉼 없이 일해야 겨우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 연재 웹툰을 마감할 수 있다. 혹시라도 마감에 늦으면 그 주의 고료를 받지 못한다. 한 달 수입의 25%가 깎이는 셈이다.

“연재하면서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과로나 스트레스로 병을 얻은 작가가 많아요. 저 역시 장기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되고요. 독자들의 요구 때문에 업무량(연재 컷수)을 줄일 수 없다면, 사측(네이버·다음 웹툰 등의 플랫폼)에서 어시스턴트나 프로그램 사용비 등을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돈을 많이 버는 작가와 아닌 작가의 수입 차가 대단히 큰데 현재는 작업 프로그램, 작업도구, 홍보까지 작가에 전임하고 있죠.”

 

만화·웹툰업계에서는 고료제가 드물고, 계약 후 연재를 시작해도 한두 달 뒤 정산받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무급으로 작업을 하며 몇 달을 견뎌야 한다.

 

박 작가는 지난 2월 연재를 끝내고 수입이 완전히 끊긴 상태다. 이전 작업의 유료 수익이 들어오지만, 월 50만원이 안 된다. 매장 아르바이트도 알아봤지만,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얼마 전 들어온 외주 제안은 거절했다. 몇 년 전부터 크몽, 숨고 등 서비스 거래 마켓이 활성화하면서 일러스트 작업 단가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일이 됐다는 말이다.

 

전직도 생각해봤고, 생계유지가 가능하다면 정규직 일자리도 갖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일을 관두고 싶지는 않고 그러자면 결국 불안정한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건강보험료 내는 것도 부담돼요. 하지만 세금을 더 내도 좋으니 고용보험 같은 울타리가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버티는 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드네요.”

 

■송종현 배달원

수원 권선구에 사는 송종현(46)씨는 12년간 다니던 택시회사를 그만두고 지난달부터 음식 배달을 시작했다.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10년을 고생하다 팔을 다쳐 힘을 못 쓰게 되면서 잡았던 운전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손님이 뚝 끊긴 데다 기존 사납금제가 기사들한테 부담을 더 지우는 쪽으로 개정될 것이란 소식에 사표를 던졌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학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땅히 할 일이 없는 거예요. 택시로는 생활이 안 될 것 같고. 그래서 그만뒀어요. 막상 관두고 보니 취직할 만한 데가 없더라고요. 오토바이는 탈 줄 알고 ‘건당 먹는다’고 하니까 시작한 거죠.”

 

그렇게 30년 만에 오토바이를 몰게 됐다. 이 일로 한 달에 약 250만원 정도 번다. 택시로 벌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송씨는 택시회사에 남아 있었다면 소득이 줄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회사에) 돈을 갖다 줘야 한다는 부담이 없잖아요. 그건 좋더라고요. 내가 하는 대로 내 수입이 되니까. 코로나19 여파인지 몰라도 콜도 꾸준히 뜨고 하니까. 택시 운전할 때는 손님들이 100원, 200원 더 나왔다고 왜 돌아가느냐 하는 소리 듣는 것도 엄청 스트레스거든요. 이건 그런 것도 없고.”

 

송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 12시간을 일한다. 매일 30건 정도 배달을 나간다. 배달비는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건당 3500원인데, 등록한 배달대행업체에서 수수료 550원을 떼가면 나머지는 송씨 몫이 된다. 자신 명의로 적립된 돈은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다. 매월 정해진 월급날 자체가 없다.

 

송씨 입장에선 월급날이 없다는 게 편할 수도 있지만, 많은 것을 잃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어딘가 고용된 게 아니어서 현행법상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4대 보험 가입도 제한된다. 장비도 사비로 마련해야 한다. 설령 다쳐서 일을 그만두더라도 실업급여 신청하는 것조차 버겁다. 플랫폼 노동자의 비애다.

 

“(4대 보험 안 되는 게)아쉽죠. 그래도 택시를 계속해서는 먹고살 수가 없었어요. 4대 보험은 나중의 일이고, 당장 살아야 하니까요.”

 

송씨는 배달대행업체 사무실에 ‘등록’만 돼 있을 뿐이다. 현재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다. 그에게 재직증명서를 떼 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얼마 전 좌회전을 하다 중심을 잃고 쓰러져 양팔을 다쳤지만, ‘가벼운 부상’이라며 산업재해보상도 신청하지 않았다. 그나마 산재는 그에게 보장된 몇 안 되는 사회안전망이긴 하지만, 그보다 하루라도 더 일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 상황이라도 더 오래 하고 싶어요. 정년퇴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원동기) 면허가 취소되기 전까지는 하는 거죠.”

 

■“취미도 ‘일’이 되는 시대… 고용보험 등 복지체계 바꿔야”

 

200년 전 영국의 일부 노동자들은 산업혁명이 초래할 실업의 위험을 우려해 기계를 파괴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산업혁명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노동자의 임금은 함께 올라갔다.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받는 시대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는 다시 실업의 위험을 걱정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 걱정은 기우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200년 전 러다이트처럼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파괴하고 다닐 순 없다. 노동과 일자리, 고용의 정의부터 달라져야 하는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엔지니어 출신으로 카이스트(KAIST)에서 미래학을 가르치며 수많은 스타트업 기업가를 길러낸 이광형 교수와 경제 관련 민간연구소를 이끌며 기본소득 등 미래의 노동을 고민하는 이원재 LAB2050 대표를 만나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달 25일과 27일 각각 진행됐으며, 편의상 질문과 답변에 부연설명을 추가하는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도대체 일자리는 얼마나 줄어들까요.

이광형 교수

“많이 줄어들겠죠. 얼마나 줄어든다고 딱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지금 있는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사라질 거예요. 물론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도 있겠지만, 총량으로 보면 줄어들 것으로 보여요.”(이광형 교수)

 

“지금 생산하는 것들, 예를 들어 노트북, 책상, 안경, 식당에서 먹은 점심 등을 만들어내기 위한 활동을 노동(또는 일)으로 본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노동은 크게 줄겠죠. 다만 일이 없어져도 일자리는 있을 수 있어요. 극단적으로 국가가 다 고용하면 일자리는 느는 거니까요. 결국 일자리는 사회가 결정하는 문제인 거죠.”(이원재 대표)

 

―유튜버, 플랫폼 노동 같은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생기잖아요.

 

“생겨나죠. 지금도 이미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기도 했고요. 과거에는 취미였거나 단순한 놀이였던 것들이 돈이 되는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그걸 담는 그릇인 제도가 산업혁명 시대에 만들어진 거예요. 결국 노동(일자리)으로 여기지 않은 ‘일’이 늘어나는 거죠. 제조업의 경우도 달라졌어요. 기술이 빨라지는 속도, 자동화 속도가 노동투입 비율로 보면 줄어들고 있는 거죠. 현대자동차만 해도 이 상태로 20, 30년 지나면 노동자가 거의 없는 회사가 될 수 있어요. 이미 신규채용을 본격적으로 안 한 지 10년 정도 됐을 걸요.”(이 대표)

 

실제로 현대차 직원 수는 1999년 3만7752명에서 2000년 4만9023명으로 급증했다. 직원 수 증가 폭은 2000년대 들어서며 크게 줄었다. 1999∼2000년, 1년 만에 1만2000명 가까운 직원이 늘어났지만, 이후 2019년까지 20년간 늘어난 직원 수는 2만여명 수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자동화, 일자리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사람들이 온라인, 비대면으로 가는 데 대한 심리적 저항이 있었는데 그게 무너지는 계기가 됐죠. 식당에 생기는 키오스크만 봐도 예전에는 거부감 때문에 이용 안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더 안전하다는 인식이 드니깐, 이용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의 진행속도가 더 빨라지게 될 것 같아요.”(이 교수)

이원재 대표

“코로나19가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중요한 변곡점이 된 것 같아요. 기술혁신으로 인한 노동의 변화를 기존의 복지체계로 막으면서 미친 듯이 특이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거죠. 그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덜컹’ 멈춰선 거예요. 이 위기를 사회와 제도를 돌아보고 제도를 정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해요.”(이 대표)

 

‘특이점’(또는 기술적 특이점)이란 인공지능을 앞세운 기술의 진화가 모든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 지능의 출현 시점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을 뛰어넘는 AI의 출현 정도로 해석된다. 구글의 엔지니어링 이사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를 통해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특이점 이후 시대에는 이론적으로 모든 영역의 일자리가 AI나 로봇으로 대체 가능하다.

 

―다시 일자리 얘기로 돌아가면, 당장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데 지켜볼 수밖에 없을까요.

 

“빨리 적응을 해야죠. 어떤 직업은 융통성 있게 근무시간도 조절하고. 지금 제도로는 미래에 적응하기 힘들어요. 특히 정규직만 보호하는 구조라 거기에 못 들어간 사람들은 더 빠르게 바깥으로 밀려나죠. 현 정부가 일자리 보호 정책을 쓰지만, 이율배반적으로 일자리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요. 제도를 사회 흐름에 맞게 고치지 않은 결과예요.”(이 교수)

 

―일자리 감소를 기술 탓으로 돌리는 시각이 있는데요.

 

“기술이란 건 그냥 사물이죠. 그걸 활용하는 게 인간이고요. 우리 사회에는 효율성과 인간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있는데, 효율성 관점에선 4차 산업혁명 쪽으로 빠르게 가야 하고, 인간성 관점에선 다 같이 복지를 하고 일자리를 창출해야죠. 하지만 이 둘이 정적인 게 아니에요. 기술이 발전하면 제도도 변해야 하고, 제도가 변하면 거기에 맞춰 기술도 변해야 합니다. 두 축이 적절히 보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산업 발전뿐 아니라 인간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변해야 할 때죠.”(이 교수)

 

―노동의 개념도 달라져야 하지 않나요.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난 일자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죠. 유튜버도 과거에는 취미로 하는 개인방송이었고, 게임도 이제는 직업이 됐으니까요. 앞으로 이런 변화가 더 빠르게 일어날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을 고용보험의 틀 안에 넣으려고 하지만,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때마다 계속 추가하고, 개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결국 그 틀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 사람, 불행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구조예요. 전체 복지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죠.(이 대표)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요.

 

“과거에는 부가가치의 분배가 일자리였는데,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갈수록 그럴 수 없는 구조가 됐어요. 그래서 선분배의 개념이 나왔다고 봐요. 일하고 안 하고, 돈을 잘 벌고 못 벌고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상태의 출발점을 올리자는 거죠.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상태(분배)가 주어진 상황에서 시작하면 전체적으로 격차는 줄고, 그만큼 생활 수준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이 대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노동자를 위해 사회가 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해요. 하지만 전 국민에게 현금을 주는 기본소득보다는 고용보험을 확대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안전망이라는 게 범위와 수준, 두 가지로 볼 수 있어요. 이게 풍선과 비슷해서 수준을 높이면 범위가 좁아지고, 범위를 넓히면 수준이 낮아져요.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면, 기존의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죠.”(이 교수)

 

특별기획취재팀=안용성·윤지로·배민영 기자 kornyap@segye.com

 

■이광형 교수는…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했다. 리옹제1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카이스트 전산학 교수로 교편을 잡았다.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교학부총장을 역임하며 넥슨 김정주 창업자 등 스타트업 창업가의 멘토 역할을 했다. 국내 최초로 미래학을 제도권 학문으로 자리매김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는 카이스트 초빙석좌교수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원재 대표는…

연세대학교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했다. 국내 언론사를 거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이후 희망제작소 소장과 여시재 기획이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민간 경제연구소인 LAB2050 대표를 맡아 노동의 미래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펴고 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