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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비극의 역사… 광주가 남긴 아픈 기억들

입력 : 2020-06-05 02:00:00 수정 : 2020-06-07 16: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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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투데이-민주주의의 봄’ 서울전시 / 5개국 작가·연구자 26팀 참여 / ‘망각기계’ 포함 190여 작품 선봬 / ‘죽창가’ 등 목판화도 대거 전시 / “예술은 과거에 대한 증언이자 / 미래를 투사하는 살아있는 기억”
3층 입구에 들어서면 전투복 차림의 남자 사진과 전시장을 가로질러 반대편에 내걸린 젊은 여자 사진부터 대면하게 된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시위 진압에 나섰던 부대에서 현재 복무 중인 군인과 1980년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렸던 민주광장에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여성이다. 물론 두 사람은 5·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다. 상징적인 공간에 머물고 있는 두 인물을 통해 4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대치 중임을 표현한 권승찬 작가의 작품 ‘거기 3’이다.
권승찬의 ‘거기 3’. 전시장을 가로질러 군인 사진과 젊은 여성 사진을 마주보게 설치했다. 사진 속 두 인물은 5·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다. 40년이 흘렀어도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대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노순택 작가의 ‘망각기계’는 당시 사망한 이들이 묻힌 광주 옛 묘역의 영정사진들을 작가가 2006∼2020년 15년에 걸쳐 시간 간격을 두고 촬영한 작품이다. 유리액자에 넣은 영정사진들이 비바람에 바래고 훼손되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노 작가는 “망가져가는 사진들이 ‘나 이렇게 죽어갔어’라고 말하는 듯하다”면서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잊혀지고 또 기억되는지 관객에게 되묻는다.

노순택의 ‘망각기계’. 작가는 5·18민주화운동 사망자들이 묻힌 광주 옛 묘역의 영정사진들을 15년 동안 시간적 간격을 두고 촬영했다. 비바람에 바래고 훼손된 영정사진들을 통해, 역사적 비극을 기념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잊혀지고 또 기억되는지를 관객에게 묻는다.

지난 3일 개막, 7월 5일까지 아트선재센터(2, 3층)와 나무아트갤러리 두 곳에서 열리는 ‘MaytoDay(메이투데이)-서울전시-민주주의의 봄’에는 5개국 작가 및 연구자 26팀이 참여해 19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기획자 우테 메타 바우어(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가 광주비엔날레(대표 김선정)와 함께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이번 전시는 제목이 말해주듯 5월(May)의 일상성(day)을 이야기하고 그 시점을 현재(today)로 되돌려 보고자 한다.

‘메이투데이’는 서울과 타이베이(대만), 쾰른(독일),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에서 5월부터 6월에 걸쳐 동시에 열고자 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탓에 각각 현지 일정을 조정하여 개최하고 있다.

바우어는 지난 20년간 수차례 광주를 방문하며 광주가 남긴 기억들과 지금도 유효한 민주주의 정신에 주목했다. 그녀는 “멈춰 있지 않고 항상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면서 “예술은 과거에 대한 증언이자 새로운 미래를 향해 투사하는 살아 있는 기억”이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강연균의 ‘하늘과 땅 사이 1’. 작가의 5·18 연작 중 초기작품. 잔혹한 군사압제하의 공포와 번민, 슬픔으로 고통받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강연균의 작품 ‘하늘과 땅 사이 1’은 잔혹한 군사압제로 인한 공포와 번민, 슬픔으로 고통받는 인간상을 뒤틀린 시신과 육체를 통해 보여준다.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그려낸 파블로 피카소의 명작에 빗대어 ‘한국의 게르니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창성의 보도사진은 박제된 역사의 순간들을 불러와 현재의 시점에서 민주주의를 복기한다.

1980년 광주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취재 자료들과 5·18에 개입한 당시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를 최초로 폭로한 미국 기자 팀 셔록의 아카이브 문서들은 챙겨볼 만하다.

‘오월의 소리’(조진호), ‘광주민중항쟁도’(김진수), ‘죽창가’(이상호), ‘포장마차에서’(정희승) 등 민주화운동을 여실히 기록하고 증언해온 목판화 작품들도 대거 선보인다.

가상의 영화 간판과 포스터, 배너로 구성된 박태규의 ‘광주탈출’도 눈길을 끈다. 헌병대 식당에서 일어났던 고문으로부터 도망치는 하급 사병에 관한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제작된 적이 없는 영화를 홍보하는 작품이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작품들은 무겁고 아픈 광주민주화운동의 옷을 벗고 재현과 가상의 예술적 여유를 가미하지만 결코 5·18의 정신과 진정성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픔을 마주하는 관객들의 부담을 덜어주어 작품 속 몰입을 돕는다. 지나간 상처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그 묵직함에 짓눌리기보다는 ‘밝은’ 분위기(2층)로 무게를 덜어내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기를, 이제는 통곡과 한숨을 한쪽에 치워 놓고도 그날을 기억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이것이 관람객의 눈과 마음을 붙잡는 이유다.

기존의 5·18 관련 작품들이 대개 ‘사건’에 초점을 맞춘 반면 영상, 판화, 설치미술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적 확장’을 중심에 내세웠다. 1980년 5월의 그날을 직접 겪었거나 기억하고 있는 중장년층 관람객들에게는 폭넓은 공감대를, 영화나 책 등 간접적으로 접했던 젊은 세대에게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건네며 고른 지지를 얻어낸다.

5·18을 전부 담아내려 과욕을 부리지 않은 점도 비결이다. 선동이나 비장감 등으로 관람객을 긴장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5·18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미술(문화) 콘텐츠인지를 일깨우면서, 앞으로 더 많은 5·18 작품들이 나올 것임을 예고하기도 한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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