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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로 다시 태어난 문화재… “볼만은 한데 남는 게 없다”

입력 : 2020-06-02 10:00:00 수정 : 2020-06-01 19: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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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디지털실감영상관’ 개관 / 가상·증강현실, 미디어파사드 등 활용 / 문화재 관람·체험 실감나게 제공 주목 / 삼장법사·손오공 일행 이야기 등 형상화 / 경천사 십층석탑 미디어파사드 ‘백미’ / 北 고구려 벽화고분도 영상으로 되살려 / 문화재 정체성 전달 효과 회의적 시각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운 볼거리를 갖게 된 건 분명하다. 수백 년의 시간을 보낸 문화재는 첨단기술과 결합해 화려한 외양을 뽐내게 됐고, 직접 볼 수 없는 북한의 벽화고분은 언제든 갈 수 있는 전시실에 구현됐다. 지난달 20일 공개된 ‘디지털실감영상관’ 설치로 가능해진 일이다. 문화재 활용의 최신 경향이자 중앙박물관의 가장 뚜렷한 변화인 실감영상관은 정부의 ‘콘텐츠산업 3대혁신전략’의 산물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미디어파사드 등을 적극 활용한다. 첨단기술을 접목한 문화재 활용이 없지 않았으나 한국의 대표박물관에 대규모로 설치된 것은 처음이어서 관심이 크다.

 

공개 후 2주 정도 지난 실감영상관은 문화재 관람, 체험의 새로운 방식을 제공하며 관람객들의 이목을 잡는 데는 성과를 거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채운 콘텐츠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실감영상관이 활용의 핵심인 문화재의 의미, 정체성 등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가라는 지점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실감영상1관에서는 재해석된 금강산도 등을 폭 60m, 높이 5m의 대형스크린으로 감상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첨단기술과 조우한 문화재, 실감형 콘텐츠

실감영상관은 1·2·3관과 경천사 십층석탑의 미디어파사드로 구성된다. 1관에서는 취향에 따라 내용물을 재구성할 수 있는 ‘디지털 책가도’를 체험할 수 있고 스토리를 얹어 변형한 금강산도, 의궤, 시왕도, 요지연도 등을 폭 60m, 높이 5m의 스크린으로 감상할 수 있다. 2관은 게임기법을 더한 태평성시도를 초고해상도의 화질로 보여준다.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박물관의 수장고, 보존과학실을 VR로 즐길 수도 있다. 3관은 북한, 중국 지역에 있어 접하기 어려운 고구려 벽화고분을 영상으로 되살렸다.

중앙박물관은 경천사 십층석탑 미디어파사드 ‘하늘 빛 탑’을 ‘백미’로 꼽는다. 박물관이 야간 개장하는 매주 수·토요일 오후 8시에 펼쳐지는 미디어파사드는 석탑에 새겨진 문양을 기초로 경전을 구하러 가는 삼장법사, 손오공 일행의 이야기, 부처의 순행, 열반 등을 형상화했다. 12분간 화려한 영상이 펼쳐지는 동안 석탑은 그저 무생물의 오래된 유물이 아니라 생명을 얻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콘텐츠인 데다 굉장히 화려하기도 해 관람객들의 관심은 커 보인다. 1관에서는 20분 넘게 이어지는 대형스크린의 영상에 집중하는 관람객들을 목격하는 게 어렵지 않고, 사전예약을 해야 하는 2관은 2, 3일치의 예약이 꽉 차 있기도 했다.

다른 국립박물관도 비슷한 콘텐츠를 선보였다. 국립청주박물관은 장인과 그들의 창작품을 소개하는 디지털 대장간을, 국립광주박물관은 신안선(전남 신안의 바닷속에서 발견된 무역선)을 소재로 한 가상현실 체험관을 지난달 20일, 21일 각각 공개했고 국립경주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도 실감형 콘텐츠 제작을 준비 중이다. 중앙박물관은 웅장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세상을 묘사한 가로 8m의 대작 ‘강산무진도’ 등으로 실감영상관을 채울 새로운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경천사 십층석탑에 새겨진 문양을 기초로 화려한 미디어파사드를 제작했다. 삼장법사 일행이 경전을 구하러 가는 여정, 부처의 세계 등이 화려한 영상으로 제시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석탑 미디어파사드 주객전도된 듯”

정조의 화성행차 장면을 담은 의궤를 소재로 한 1관의 영상에는 행렬 속 인물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이 있다. 실감 콘텐츠를 제작한 중앙박물관,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관계자들은 이 인물이 관람객을 향해 손을 흔들게 하는 것으로 표현할지, 아니면 엄숙하게 걷는 것으로 둘지를 두고 고민했다. 비중이 큰 인물이 아니고 부각되는 것도 잠깐일 뿐이지만 의궤 본연의 의미에 맞는 표현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문화재를 소재로 한 실감형 콘텐츠 제작에서 가장 중요시하고 어려운 부분이 이런 것이다. 첨단기술과 결합하며 일정하게 형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상상력을 가미해도 대상 문화재의 본래 의미와 미감, 정체성 등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 그것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변형되어야 하는 것이다. 중박 장은정 학예연구관은 “본래 의미, 정체성을 다치지 않으면서 관람객들에게 보다 쉽고 편하게 문화재를 보여주는 창, 혹은 그것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는 게 실감 콘텐츠의 역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콘진원 유윤옥 팀장은 “대중의 취향, 산업으로의 발전을 강조하는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문화재 기반의 실감 콘텐츠는 역사성, 의미 등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런 점을 기준으로 할 때 중박의 실감 콘텐츠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을까.

한 박물관 관계자는 “5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박한 평가를 내놨다. 그는 중박이 백미로 꼽은 경천사 십층석탑의 미디어파사드를 거론하며 “석탑을 오브제로 해 멋진 영상을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화려한 불꽃쇼를 본 것 같다는 느낌 말고는 남는 게 별로 없었다”며 “박물관이 제공해야 할 ‘실감’이라는 건 어떤 것일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석탑이 중심이고, 영상은 보조역할을 해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듯하다”, “석탑의 내용을 잘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등의 비슷한 의견도 있었다. 다른 박물관 관계자는 “1관의 스크린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묘사가 일률적이고 생동감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영화 같은 대중매체나 게임에서 착안한 듯한 표현방식이 쓰인 것을 두고 문화재와 첨단기술에 각각 특화된 중박과 콘진원 관계자들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박물관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문화재를 알릴 수 있는 방식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호기심을 유발해 관람객들을 실제 유물로 이끌고, 장비를 옮겨가며 여러 곳에서 구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박물관들이 각각의 성격에 맞는 새로운 콘텐츠를 어떻게 내놓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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