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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역사-6월1~7일] '반달리즘'에 시달리는 반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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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31 22:13:04 수정 : 2020-05-31 22: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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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누명으로 삶을 망치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만이 아니라 민족도 억울한 누명을 쓸 수 있다. 455년 6월2일 로마를 침공한 반달족의 경우가 그렇다.

침공을 한 그들은 당시의 관행대로 약탈도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씌워진 ‘반달리즘’이라는 악명은 억울한 것이다. ‘반달리즘’은 값진 문화재 같은 것들을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야만적으로 파괴한다는 뜻으로 더 통하고 있어서다. 반달족은 문화재를 약탈해 북아프리카의 자기네 나라로 가져갔을 뿐 파괴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것은 로마가 전성기 때 북아프리카의 값진 문화재들을 약탈해 로마로 가져온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로마를 침공해 약탈한 것도 반달족이 처음은 아니다. 로마는 기원전 390년 갈리아의 세노세스 족에게 약탈을 당했으나 당시의 로마는 제국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뒤 410년에는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에게 침략과 약탈을 당했으나 게르만계인 서고트족은 로마 제국 내에 거주하며 로마와 공존하던 관계였다.

반달족도 서고트족처럼 훈족에게 쫓겨 스페인을 거쳐 아프리카에 정착한 게르만족이었다. 그들이 로마를 침략했던 당시에 ‘반달리즘’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아니다. 그로부터 한참 뒤인 프랑스 혁명으로 군중들이 가톨릭 건축물과 예술품을 파괴하자 블루아의 앙리 그레구아 주교가 반달족의 로마 침략에 비유해 ‘반달리즘’이라고 비난했던 것이다.

반달족에게 더욱 억울한 것은 반달족과 관련된 그림들이다. 19세기에 러시아의 화가 칼 파블로비치 브률로프가 그린 작품을 보면 얼핏 남아프리카 원주민을 연상시키듯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피부도 검은 반달족이 하얀 피부의 로마 여인들을 유린하고 있다.

그러나 게르만계인 반달족은 지중해의 로마인들보다 더 피부가 흰 편이었다. 그 화가는 반달족이 아프리카에 정착한 내력을 모른 채 오직 ‘아프리카인’이라는 것만 알았던 것 같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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