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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사대주의자 송시열과 같이 / 굴욕적인 '만절필동' 널리 알려 / 현 정권의 중국 편애 따라간 그 / 마지막이 아쉽지만 잘 가시라

우리가 송시열을 하찮게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사대주의다. 그는 뼛속까지 사대주의자였다. 조선의 고관으로 백성 위에 군림하여 온갖 호사를 누렸지만 일평생 충성스러운 명나라 신하의 모습을 보여준다.

충북 괴산 화양동 계곡에 있는 만동묘(萬東廟)가 그의 정신세계를 극명하게 상징한다. 만동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명나라 황제를 위한 사당이다. 병자호란 이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당시 권력층은 명나라를 부모의 나라로 칭송하며 극진히 받들어 모셨다. 충에서 한발 더 나아가 효의 경지에 이르렀다.

김동률 서강대교수 매체경영

만동묘는 그런 송시열이 후학에게 당부해 건립됐다. ‘만동’은 ‘만천동류(萬川東流)’에서 따온 말이다. ‘모든 강들이 동쪽으로 흘러 결국은 황해로 들어가는 이치와 같이 명나라에 대한 조선의 사대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송시열은 명나라에 대한 극진함에서 조금만 어긋나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혹독하게 처리했다. 심지어 명이 멸망한 후에도 “조선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심지어 백성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명) 황제의 은총을 입은 것이다”라고 스스로 적었다. 백성의 안위는 송시열의 관심 밖이었다. 나라를 보전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청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을 희대의 간신으로 몰아붙였다. 만동묘까지 세워 명을 모신 그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였다.

만동묘는 그제 퇴임한 문희상 전 국회의장과 함께 떠올려진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정치인이 아니다. 보통 한국인에게 낯설었던 “만동”이란 말은 그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의장재임 시절 방미 시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에게 친필 휘호를 쓴 족자가 ‘만절필동(萬折必東)’, 약자로 만동이다. 그는 ‘황하가 만 번을 꺾어도 결국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만절필동을 인용하면서 “협상 과정에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가 구축되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해석이 더없이 화려하다.

그런데 문 의장은 왜 하필이면 ‘만절필동’을 선택했을까. 한국인인 그가 왜 우리나라 한강이나 대동강은 두고 뜬금없이 중국의 황하를 예로 들었을까. 한국인인 그가 왜 한글이 아닌 한자로 쓴 휘호를 미국 유력정치인에게 선물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에 앞서 노영민 현 청와대 비서실장도 주중대사 취임에 앞서 시진핑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방명록에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고 적었다. ‘만천동류’이건 ‘만절필동’이건 모두가 중국에 대한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다는 뜻이다. 더할 수 없이 굴욕적인 이 같은 행태도 흐지부지 잊혀졌다. 그러면서 나는 현 정권 인사들의 지독한 중국 사랑에 대해 가끔씩 궁금해진다. 지소미아, 방위비 논란 등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면서 코로나19에서 보듯이 중국의 야만에 대해서는 모두가 애써 외면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가 아는 ‘만동’의 문희상은 그래도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정치인이다. ‘겉은 장비 속은 조조’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그는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의회주의자로 평가된다. 타협과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았던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막판에 보여준 몇몇 행보는 그를 좋아하고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배신감과 실망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아들을 자신의 지역구에 공천하려던 ‘아빠 찬스’는 줄도 없고 백도 없는 보통 한국인들을 분노케 했다. 지나친 친중 행보도 오랫동안 그를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을 돌아서게 했다.

훌륭한 의회주의자로 평가받았던 정치인 문희상은 이제 야인으로 돌아갔다. 그는 퇴임 기자회견에서도 전직 대통령 사면을 거론하는 등 소신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였다. 야인으로 돌아가 정원에 꽃을 가꾸며 텃밭에 채소를 키우는 낙을 추구하겠다고 퇴임 후의 소박한 희망을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을 보며 박수를 칠 지지자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아빠 찬스, 중국 편애가 이제 너무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시대는 갔다. 그래도 너절한 수많은 정치인들 가운데 희망을 가지고 그를 좋아하고 지지했던 사람이 아쉬운 작별 인사를 보낸다. 굿바이! 문희상

 

김동률 서강대교수 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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