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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방은 왜 ‘내려가지’ 않고 ‘올라가야’ 할까?

입력 : 2020-05-16 03:00:00 수정 : 2020-05-15 21: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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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머물 공간을 선택할 때 / 무의식적으로 나름의 기제 작동 / 어떤 의미론 물리적 ‘거리두기’는 / 인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
발터 슈미트/문항심/1만5000원

공간의 심리학/발터 슈미트/문항심/1만5000원

 

“사장님이 지금 당장 올라오랍니다!”

회사에 몸담은 이들이면 누구나 사장 비서실에서 걸려온 이런 전화를 받으면 긴장하기 마련이다. 특히 실적이 좋지 않은 영업사원이라면 이 호출에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진 느낌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궁금증 하나! “사장님 방은 왜 ‘내려가지’ 않고 ‘올라가야’ 할까?”

‘공간의 심리학’은 그 답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과 동물은 계열과 서열이 가장 높은 ‘알파’ 개체를 마주할 때는 위로 올려다본다. 겁쟁이 또는 서열이 낮은 개체는 고개를 숙이거나 납작 엎드림으로써 상위 개체에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다. 진화심리학자 하랄트 오일러 교수는 “특정 그룹에 속한 남자가 그룹 구성원들에게 지시를 내릴 때 구성원들보다 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조직 심리학자인 와르크 펠페도 “상위층 사람은 남들이 자기 머리 꼭대기에서 놀게 놔두지 않는다. 남들보다 자신이 더 눈에 띄고 더 크게 보이고 우월하기를 원한다”고 설명한다. 맨 위에 있는 자는 모두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고, 그러므로 상대를 통제할 수 있다. 나폴레옹이나 웰링턴 장군이 군대를 지휘하던 언덕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한 건물 위아래 구분이 명확해진 것은 150여년 전 엘리베이터가 생겨나면서부터다. 그래서 많은 부하 직원이 상사의 방으로 올라가게 된 책임은 엘리베이터 발명가 엘랴사 오티스(1811∼1861)에게 따져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작가 발터 슈미트가 쓴 이 책은 일상에서 누구나 궁금해할 수 있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공간 심리학의 비밀에 관해 재밌게 다루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이 머물 공간을 선택할 때는 그가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나름의 기제가 작동한다. 식당에서 벽을 등지는 자리는 시야가 180도로 제한돼 뒤쪽을 볼 수 없는 인간에게 뒤편의 위험을 보완해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입사 면접을 보는 경우는 다르다. 낯선 환경에서 면접관들과 마주해야 하는 지원자는 당장 도망쳐 버리고 싶은 욕구를 느끼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다. 그나마 출구가 가깝다면 조금이라도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입사 지원자가 문 쪽에 자리한 면접관을 지나 사무실 제일 안쪽에 앉아 면접을 보는 일이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리적 ‘거리 두기’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와중에서 적당한 거리두기는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됐다. 사진은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로 혼잡한 지하철역사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잠자리도 안전 최우선의 원칙에 따라 위치가 결정된다. 독일 연구팀이 138명의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속 가상 침실을 꾸미게 한 뒤 관찰했더니 대부분이 침대를 침실 문이 잘 보이는 위치에 놓았고 침실 문과 침대는 대각선을 이루도록 배치했다는 것이다. 이는 침입에 대비하려는 심리가 작용해서다. 자녀의 침대를 함께 배치하도록 했을 때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다. 대부분 자신의 침대를 문 가까이 배치하고 자녀의 침대는 출입문에서 가장 먼 벽 쪽에 문과 대각선이 되는 곳에 두었다.

식당이나 비행기 좌석을 예약할 때는 대체로 창가 자리가 선호된다. 회사의 고위급일수록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사무실을 배정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창밖 풍경은 사물을 인식하는 범위를 넓혀주고 긴장을 풀어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인간의 감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생활 리듬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공간 심리에선 남녀 간에도 차이가 있다. 등산객을 보면 대개는 남성이 앞서고 여성은 몇 걸음 뒤처져 따라간다. 남성의 걸음걸이가 좀 더 빠른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진화심리학자는 남성이 목표지향적으로 걷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남성은 목표 지점에 일찍 도착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여성에게는 목적지로 나아가는 과정이 곧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남녀의 이 같은 차이는 쇼핑할 때 잘 드러난다.

인간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허락 없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물리적 ‘거리 두기’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신체에서 45~50㎝까지가 ‘밀접영역’, 50㎝∼1.2m까지가 ‘사적 영역’, 1.2∼3m 사이가 ‘사회적 영역’, 더 먼 거리인 3.5m 정도의 구간은 ‘공적 영역’으로 구분한다. 사회적 영역에서부터는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고, 사적 영역은 호감도를 가늠할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친한 사이라도 자칫 밀접영역에 함부로 침범했다가는 신고당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담장과 성을 쌓고 울타리를 치며 국경에 선을 긋는 일,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그으며 남들도 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적당한 거리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인간에게 ‘거리 두기’는 ‘더불어 살기’를 가능하게 해주는 필수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박태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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