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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노 아빠들, UN아동권리협약으로 형사처벌 가능하다?…"사실 아님" [FACT IN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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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03 23:00:00 수정 : 2020-05-03 21: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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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대상]  

 

“양육비 미지급한 ‘코피노’ 아빠들, UN아동권리협약 근거로 형사처벌 가능하다.”

 

현재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코피노(Kopino, 한국인 아빠를 둔 필리핀 2세)’ 아빠들을 현행법으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코피노에게 양육비를 미지급한 한국인 남성 5명을 입건해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다. 그러나 수사가 실제 형사처벌로 이어질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양육비 미지급이 아동학대에 해당한다고 명시하지 않아서다.

 

조수진 변호사(법무법인 위민)는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조 변호사는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우리나라가 1991년도에 비준한 UN아동권리협약 27조는 아동에게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을 아동학대로 본다”며 “국제법도 준거법이 되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못 할 바 없다”고 말했다.

 

3일 세계일보가 조 변호사 발언을 검증한 결과 이는 ‘전혀 사실 아님’으로 판정됐다. UN아동권리협약과 같은 국제조약은 국내법에 준하는 효력을 가지긴 하나 형사처벌 근거로 쓰일 수 없다. 양육비를 미지급하는 코피노 아빠들을 형사처벌하려면 이를 범죄로 규정하는 국내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검증과정]

 

◆ 지금까지 왜 처벌 안 됐나?

 

코피노 문제는 수년전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사업이나 유학 등의 사유로 필리핀에 장기 체류하는 동안 현지 여성과 만나 아이를 가진 뒤 잠적하는 한국인 남성들의 사례가 국내에 알려지면서다.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코피노 규모는 약 4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간 코피노 엄마들은 국내 법무법인 도움을 받아 코피노 아빠들에 양육비 청구 등 민사 소송을 제기해왔다. 한국은 형법에서 양육비 문제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지급이행명령을 받아도 재산은닉이나 위장전입 등 수단으로 회피하는 경우가 많아 코피노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필리핀 여성들의 이번 형사고소도 처벌이 불투명하다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아동복지법에는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명시하는 조항이 없다. 아동복지법 제3조에서 아동학대를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내용을 넓게 해석하면 된다는 관측이 있지만 형사재판에선 법을 확대 해석할 수 없어 무리다.

 

◆ “국제조약만으론 형사처벌 못 한다”

 

조 변호사 주장은 아동복지법 대신 우리나라가 1991년에 비준한 UN아동권리협약을 준거법으로 삼자는 것이다.

 

아동권리협약은 18세 미만 아동의 모든 권리를 담은 국제조약으로 1989년 UN에서 채택됐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196개국이 비준했다. 조 변호사는 이중 제27조 제4항의 “당사국은 국내외에 거주하는 부모 또는 기타 아동에 대하여 재정적으로 책임 있는 자로부터 아동양육비의 회부를 확보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을 근거로 들었다. 헌법 제6조에 따라 국제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는 이유에서다.

 

세계일보 취재 결과 현실적으로 이 협약을 국내 상황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 국제법률국 조약과 과장은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범죄처벌 관련해선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국내법 조항이 마련돼야 실질적인 처벌이 가능하다”며 “국제조약 조항은 처벌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죄형법정주의란 법에 명시된 범죄만 범죄로 인정한다는 원칙인데, 국제법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육비 관련 소송을 주로 맡는 정훈태 변호사(법률사무소 승소)도 28일 “아동권리협약은 처벌 근거가 아닌 지침의 성격이 커서 직접적으로 형벌 근거가 될 수 없다”며 “양육비 미지급을 형사처벌하려면 결국 이를 명확히 범죄로 규정하도록 아동복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다만 법을 개정할 때에는 아동권리협약을 근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기존 판례서도 국제조약만으로 형사처벌한 전례 없어

 

실제로 양육비 미지급 건이 아니더라도 아동권리협약만을 근거로 형사처벌한 판례는 없다. 법원 판결에서 아동권리협약은 같은 내용의 국내법이 있을 때 이를 보충하는 차원에서 적용된다.

 

지난해 8월 열린 ‘법원의 국제인권기준 적용 심포지엄’에서 사법정책연구원 이혜영 연구위원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17건의 법원 판결에서 아동권리협약이 적용됐다. 이중 아동권리협약 조항을 단독으로 판결에 적용한 사례는 없었다.

 

예를 들어 지난 2013년 11월, 상습 학대 끝에 자녀를 숨지게 한 부모에게 각각 징역 6년형과 8년형을 선고한 서울서부지방법원 판결에서도 아동복지법 제4조와 아동권리협약 제19조가 함께 적용됐다.

 

아동복지법 제4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의 안전·건강 및 복지 증진을 위하여 아동과 그 보호자 및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아동권리협약 제19조 역시 “당사국은 아동을 모든 신체적·정신적 폭력, 상해나 학대 등 혹사나 착취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입법적·행정적·사회적 및 교육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두 조항이 공통적으로 아동 보호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명시한 것이다.

 

[검증결과]

 

“아동권리협약 근거로 양육비 미지급한 코피노 아빠들을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아동권리협약이 양육비를 보호자의 의무로 규정하고 국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은 맞지만, 국내법이 아닌 국제법이라 직접적인 형사처벌 근거가 되지 않는다. 같은 내용의 국내법이 있을 때 보충 차원에서만 적용 가능하다.

 

원칙적으로 형사처벌은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엄격하게 법을 해석한다. 결국 코피노 아빠들을 양육비 미지급 사유로 형사처벌하려면 아동복지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박혜원 인턴기자 won015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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